mercredi 30 janvier 2008

고구려는 정말 제국이었나 - 한겨레21

토착 지배자들을 인정하는 간접지배, 문화권역도 넓지 않아

▣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 · 한국학

자기 분열이라 할까? 우리는 통상 근·현대의 한국을 ‘제국주의의 희생자’로 생각하고 일제든 미제든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해온 제국주의 국가들을 논할 때에 비판적 시각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특히 한국 기업들의 세계적 팽창이 본격화된 최근에 들어- 역사 속의 자국에 대해서는 ‘제국’이라는 말을 쓰기를 즐기고, 또 그 말을 사용할 때 이렇다 할 만한 비판적 의식을 보이지 않는다. 예컨대 약 5년 전에 한국방송이 15~25%의 시청률을 줄곧 유지한 <제국의 아침>이라는 대하드라마를 내보냈다. 이 드라마가 다룬 고려 초기는 과연 ‘제국’이었던가?
길림성 일대, 부여 왕국도 존재

한때 수도를 황도(皇都)라 부르고 독자적 연호 사용을 시도한 점에서는 그러한 면모도 있었지만 태조 왕건과 그 후계자들이 후당, 후주 등 중국의 여러 왕조에 사신을 보내 책봉을 받는 등 전통적 조공 외교를 계속 펼쳤다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다. 물론 11세기 고려의 경우에는 요나라에 조공해 책봉을 받는 한편, 탐라국이나 여진족에게 스스로 조공을 요구하는 등 일종의 소제국적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말하자면 동아시아의 위계질서에서 고려는 요나라나 그 뒤의 금나라, 원나라와 같은 ‘정상’의 위치를 점하지 못했다 해도 주변 약자들을 간접적으로 지배하는 등 ‘중간 강자’의 입장을 견지했다. 그런데 이 사실에 대해서 우리가 꼭 뿌듯함을 느껴야 하는가? 탐라국과 여진이 ‘고려제국’에 조공을 바친 것이 우리에게 그렇게까지 자랑스럽다면, 한반도의 삼국이 일찍부터 중국의 여러 왕조에 조공을 해왔다는 것을 대단히 자랑스러워하는 중화 민족주의자들에게 뭐라고 문책을 할 수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