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udi 20 novembre 2008

[Why] "日 국익에 反하더라도 독도는 일본땅 아니다" - 조선일보 / 2008-11-14

일본과 독도 분쟁이 일어나면 한국 기자들이 반드시 찾는 노학자가 나이토 세이추(內藤正中·79) 시마네(島根)대 명예교수다. 그가 최근 66쪽짜리 '다케시마=독도 문제 입문'이란 소책자를 냈다. 일본 외무성이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일본 측 주장을 항목별로 반박한 내용이다. 나이토 교수는 일본의 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명문 교토대를 졸업했다. 왜 이런 엘리트가 조국의 국익(國益)과 대립하면서 한국 편을 들까? 그는 3년 전 시마네현에서 도쿄 인근 가나가와(神奈川)현 노인 홈으로 이사했다. 함께 온 아내는 세상을 등지고 지금은 혼자다.

―부친이 1990년 작고한 나이토 슌포(雋輔) 전 오카야마(岡山)대 명예교수(동양사)시지요. 한국과 개인적인 인연이 있습니까?

" 아버지가 조선의 불교사를 연구했어요. 아들도 한국 불상(佛像) 연구를 하고 있지요. 아들은 게이오(慶應)대 법학부에 들어갔는데 재미없다고 미술사로 전공을 바꿨어요. 지금은 박물관의 학예연구원을 합니다. 아들은 한국어를 읽고 씁니다."

―선생도 대학 전공은 경제사였는데 재일한국인 인권운동에도 관여를 하셨습니다.

"대학 3학년 때 경제사를 공부하다 메이지유신 당시 자유민권 운동에 흥미를 느꼈어요. 그 후 일본 경제사에서 재일한국인의 역사적 역할을 발견했지요. 일본의 철도, 댐, 대부분 재일한국인이 만들었다는 그런 반성에서 출발했습니다."

―독도 연구를 시작한 계기는?

" 시마네현의 향토사, 특히 경제사를 연구하다가 시마네대를 정년 퇴임하고 돗토리(鳥取)단기대로 옮겼습니다. 돗토리현은 강원도와 교류가 있었지요. 돗토리현립박물관에 다케시마 자료가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자료를 토대로 2000년 '다케시마(울릉도)를 둘러싼 일조(日朝)관계사'를 펴냈지요. 가와카미 겐조(川上健三)가 이전에 일부를 사용한 적은 있지만 돗토리 자료를 전면적으로 사용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같은 자료로 연구했지만 가와카미는 1966년 출간한 '다케시마의 역사지리학적 연구'에서 한국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부정했습니다. 일본의 영유권 주장과 본격적으로 대립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2005년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조례로 제정했을 때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이때부터 마음을 먹었지요."

―시마네현과는 어떤 인연이?

"아버지 고향이 시마네현 서부에 있는 하마다(浜田)란 곳이었지요."

―애당초 반대하겠다는 자세로 연구를 시작한 것인가요?

"그런 것은 아니었지요. 선입관도 없었고. 자료를 연구하니 일본이 이야기하는 것이 이상하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일본 입장에선 물론 독도 영유권을 일본이 확보하는 것이 국익입니다. 선생의 연구가 일본과 고향의 이익에 반한다는 생각은 없었나요?

"있었지만 국익과 부딪힌다 해도 진실은 명백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학자의 사명감이 더 컸지요."

―일본 내부의 반발은?

"우익의 공격을 각오했지요. 다행히 다케시마 문제가 커진 2005년(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한 해), 이곳으로 이사했어요. 주소와 전화번호는 시마네현에 그대로 두고. 명예교수를 박탈하라는 위협만 대학이 받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올해 일본 정부로부터 훈장(중수장·中綬章)을 받으시더군요.

"나도 놀랐어요."(웃음)

―왜 준 것일까요?

"문부과학성 관료가 모르고 준 것 같아요."

―만약 알았다면?

"고민하겠지요. 덴노(天皇)가 훈장을 주는 것이니까. 덴노는 (다케시마 문제에 대해) 어떤 생각일까요? 아무도 확인하지 않았지만 알고 싶습니다. 황거(皇居·훈장을 여기서 수여)엔 안 갈 생각입니다."

―독도 현안과 관련해 일본이 가장 잘못하는 부분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진실에 기초하지 않은 주장을 하는 데서 시작된 것입니다. 이것이 치명적인 결함이지요. 외무성 관료는 공부를 안 하니까 전혀 알지 못하고."

―독도 현안을 한국은 역사 문제로 보는 반면 일본은 영토 문제로 보려고 합니다.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이지요.

"국제법상 영토 문제를 이야기할 때는 역사 문제를 전제로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일본의 국제법 학자들의 경우 역사에 대한 인식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케시마 문제도) 국제법상 절차만 따지는 것이지요."

―한국 학자의 연구를 평가하시면?

" 역사적 사실에 중립적으로 연구하는 분도 있고 불충분한 분도 있지요. 사실적 기초가 불충분한 연구를 한국의 입장이라고 일본에 소개하면 틀린 부분이 많으니까 일본 학자들이 '한국 이야기가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인들이 일본 정부의 주장을 접하면 감정적 반응을 보이듯 일본인들도 그런 한국 주장을 접하면 감정적으로 반응합니다."

―한국 정부의 대응 자세는?

"일본 정부처럼 홈페이지 같은 곳에 자세한 견해를 밝히면 좋을 텐데 제가 아는 한 구체적인 견해가 나오지 않았어요."

―선생은 독도는 일본 영토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고 독도는 한국 영토라고 주장한 적도 없으시지요?

" 다케시마가 일본 땅이 아니란 것은 증명했지만 다케시마가 한국 땅이란 것도 증명하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지요. 가장 중요한 부분이 1900년 대한제국의 칙령 41조에 나온 '石島'란 이름이 현재 다케시마라는 것을 확실히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당시 한국 정부는 칙령 41조에서 울릉도를 울도로 고치고 죽도(竹島)와 석도(石島)를 합쳐 울도군을 설치했다). 이것을 증명하면 우리들도 '독도가 한국 영토'라는 것을 순순히 인정하게 되겠지요. 현재는 당시 울릉도에 전라도 출신자들이 많았으니까 전라도 방언으로 돌(石)을 '독'이라고 발음했기 때문에, 한자로 '石島'라고 하면서 '독도'라고 말하지 않았나, 이 말이 '獨島'로 변한 것이라고 추정하는 정도이지요."

―한국에선 일본이 언젠가 무력으로 독도를 빼앗을 수 있다는 가정을 하고 있습니다.

"1905 년 일본이 무리하게 다케시마를 빼앗은 것은 일본해(동해)에서 러시아 발틱함대와의 일전을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섬에 감시대를 설치해 군함이 오가는 것을 정찰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이런 필요성이 일본에 또 생길 것인가의 문제이겠지요. 1949년 미국이 대일(對日)강화조약 제6차 초안에서 한국 영토로 인정받은 다케시마를 일본 영토로 변경 기술한 것도 다케시마에 레이더 기지를 설치한다는 안전 보장의 이유였습니다. 일본은 이런 경우 꼭 행동에 나섰습니다."

―일본이 다시 러시아와 군사적으로 대립하는 상황이 된다면 일본은 100년 전처럼 또 무리한 다케시마 점령을 시도할까요?

"지금 다케시마 위에 레이더 기지를 설치할 필요성이 있을까요? 없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