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ndi 10 novembre 2008

교과서 수정에 사학계 반발 확산 - 내일신문 / 2008-11-4

교과서 수정에 사학계 반발 확산
역사교사들 이어 역사학자들도 다음주 집단행동 … 집필진, 수정권고 거부
2008-11-05 오후 1:01:37 게재

역사학계가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수정권고와 관련, 정부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검인정제도의 취지까지 훼손하며 지나친 간섭을 하고 있다며 서명운동에 나서는 등 강하게 반빌하고 있어 사회적 파장이 클 전망이다.
한국역사연구회, 한국역사교육학회 등에 따르면 다음 주중 ‘전국 역사학자 선언’을 발표할 예정이다. 역사학자 선언에 동참하기로 서명한 학자는 4일 오후 2시 현재 400명을 넘어섰다. 역사학계는 당초 4일까지 서명을 받아 항의성명을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참여자가 꾸준히 늘고 있어 10일까지 참가자를 더 모집하기로 했다.

◆학계 “연구 성과 존중하라” = 한국역사연구회 홈페이지에 공개된 성명서 초안에 따르면 역사학자들은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를 존중하고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며 “현재 정칙적인 목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교과서 수정작업을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역사학자들이 집단행동을 하는 것은 지난 1987년 ‘한국민중사’ 국가보안법 사태 이후 처음이다. 당시 정부가 책을 발간한 출판사 사장을 구속하자 역사학자를 중심으로 700여명이 ‘학문의 자유’를 요구하며 성명서를 발표했었다.
한국역사연구회 도면회 회장(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은 “교과부 스스로 지금까지의 교과서 정책을 전면 부인하는 것”이라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과서를 수정해야 하는 전례를 남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도 회장은 또 “교과부는 학문의 자유, 교육의 중립성을 지켜내야 할 의무가 있다”며 “우리는 이를 지켜내지 못하고 자신들이 만들어낸 정책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에 대해 항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집필진 “검인정 제도 취지 훼손” = 이에 앞서 한국근현대사 집필자들도 교과서 수정권고에 반발하고 나섰다. 한국근현대사집필자협의회는 4일 서울 중구 세실레스토랑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인정의 취지를 훼손하는 교육과학기술부의 수정권고를 거부한다”고 밝히고 대통령과 교과부 장관의 사과를 요구했다. 교과서 논란이 불거진 이후 집필진이 공동으로 입장을 표명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집필진은 이날 “교과부가 발표한 50개 수정권고안 중 절반 이상은 숫자 채우기식의 ‘첨삭지도’ 수준”이라며 “나머지 쟁점이 될 수 있는 부분들도 어디까지나 검인정제도 하에서 다양성의 측면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집필진은 또 “북한과 관련해 교과서가 발행된 시점 이후에 발생한 상황을 서술하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북한정권의 실상과 판이하게 달리 서술된 부분’이라고 지적할 수 있느냐”며 “역사교육을 정권의 입맛에 맞게 길들이려는 시도를 당장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집필자와 학자들뿐 아니라 역사교사들의 반발도 확산되고 있다. 전국 역사교사 1301명도 3일 “정부는 역사학의 전문성과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라”는 내용의 전국 역사교육자 선언을 발표했다. 역사교사들은 이번 역사교육과 관련된 심포지움과 강연회를 열고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수정요구에 항의해 나갈 계획이다.

◆예견됐던 반발 = 역사학계 등에서는 교과서 수정권고에 대한 반발이 예상됐던 일이라는 반응이다.
학계는 먼저 검인정 교과서 제도의 취지를 스스로 훼손하는 것에 대한 충분한 명분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검인정 교과서 제도의 원칙은 ‘자율과 경쟁 속에서 다양한 시각을 가진 저자의 저작권을 인정한다’는 것인데 교과부가 이를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가 된 근현대사 교과서는 1997년 김영삼 정부 때 만들어진 교육과정에 따라 집필한 것이고 검정과정에서 문제가 없다고 판단됐기 때문에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문제시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학계, 집필자, 교사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이와 함께 정부의 일방통행에 대한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가 거의 소속되지 않은 일부 단체의 주장은 수용하면서 학계와는 어떤 대화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앞서 역사학계는 10월 초 “비전문가들이 역사 문제를 결정하지 말고 학계 등 전문가들과 논의해야 한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고, 다음 주 발표되는 역사학자 선언에도 이 내용을 포함할 계획이다. 집필진도 4일 기자회견에서 “교과부는 그동안 단 한 차례도 집필자들의 의견을 들어보거나 역사학계의 대표들과 논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수정권고안을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이밖에도 학계, 집필진, 교사들은 당초 좌편향 논리 자체가 부풀려져 있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한편 교과부는 저자들을 일일이 만나 설득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집필진이 수정거부를 천명한데다 현장 교사는 물론 학계까지 이들을 지지하고 있어 교과서 논란이 정부와 학계 의 충돌로 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