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udi 20 novembre 2008

의미 있는 실험 <독일 프랑스 공동 역사 교과서> - 오마이뉴스 / 2008-11-13

갈등과 반목의 역사가 화해를 했다?
의미 있는 실험 <독일 프랑스 공동 역사 교과서>
출처 : 갈등과 반목의 역사가 화해를 했다? - 오마이뉴스


'가까이 붙어있느니 싸울일만 늘어나더라'는 말이 있다. '이웃사촌' 이라는 좋은 표현도 있다지만, 때로는 가까이있는 이웃이 멀리있는 원수보다 더 못할 때도 있다. 지역이나 민족, 국가의 경우, 지리적으로 근접해있다는 사실 자체가 오히려 영토·역사·분쟁 등, 온갖 이해관계의 충돌을 야기시켜 갈등의 빌미가 되기도 한다.

구태여 멀리 찾을 것도 없이 한·중·일 동북아시아의 역사가 그렇고, 작게는 최근 반세기간의 남북관계나 영·호남간의 지역관계가 그러하다. 하지만 기나긴 갈등과 반목의 역사 가운데 서로에 대한 막연한 증오심과 편견을 키워오는 동안, 정작 서로의 입장이나 가치관에 대하여 진정으로 이해하려는 역지사지의 노력은 부족한 것이 사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라는 명분은 겉보기에 그럴 듯 하지만, 힘의 논리와 각종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국제사회에서 이런 이상이 통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하지만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이런 이상을 현실에 가깝게 구현해낸 사례중 하나가 바로 독일과 프랑스의 공동 역사교과서 출간이다.

'파격'이란 말로도 부족한 놀라운 결정

2003년 유럽에서는 2차대전 이후 현대사를 다룬 <독일-프랑스 공동 역사교과서>가 제작되었고 최근에 그 한글판이 국내에서도 출간(휴머니스트)되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얽히고 설킨 복잡한 유럽사 가운데서도 독일과 프랑스는 역사적으로 대표적인 앙숙중 하나다.

비교적 굵직한 사건만 찾아봐도 18~19세기 나폴레옹의 독일 침략과 1871년 보불전쟁, 20세기 제 1·2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독일과 프랑스는 세계사의 판도를 뒤바꾼 투쟁의 양극에 매번 놓여있던 숙적이었다. 마지막 전쟁이던 2차 대전이후 벌써 반세기가 넘었지만, 지금도 양국간 뿌리깊은 국민 감정이 서로 우호적이라고는 절대 볼수없는 나라들이다.

이런 양국이 지난 2003년 '엘리제 평화조약' 40주년을 맞이하여 서로의 역사에 대한 무지에서 시작한 선입견을 극복하자는 명분하에, 같은 내용의 역사교과서를 도입할 것을 결의하게 된다. 사실 이것은 '파격'이라는 말도 부족할만큼 놀라운 결정이었다.

민족과 국가가 다른 두 집단에서 '공동의 역사'란 것은 왜 어려울까? 역사는 곧 그 나라를 대표하는 전통이자, 미래에도 남겨질 문화적 자존심의 반영이다. 아무리 객관성을 추구한다 한들, 결국 저마다의 입장과 가치관에 따라 방향이 달라질 수밖에 없으며, 당연히 승자 혹은 자문화 중심주의로 치우칠 수밖에 없다. 또한 후세의 역사인식에도 절대적 영향을 미치게 될 이러한 교육 자료를 놓고, 그다지 사이좋은 이웃도 아니고 수백 년간 으르렁거리고 싸우던 '철천지 원수'들간 공동의 역사교과서를 만든다는 것은, 언뜻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여기서 공동 역사교과서를 관통하는 공감대는 역시 '평화와 반성'이라는 테마다. 각자의 입장에만 치우친 일방적 갈등을 지양하고 서로를 이해해야한다는 메시지는, 그간 지배자들의 논리에 의하여 수많은 민중들의 억울한 희생을 요구해야했던 지나간 시대에 대한 자성에서 시작된다. 국익이니 민족주의라는 거창한 명분은, 결국은 지배층과 그에 결합한 지식층에 의하여 대중을 선동하고 갈등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편협하게 악용되는 경우가 빈번했다. 전쟁과 이념적 갈등이 일어나는 곳마다 항상 희생을 가장 먼저 감수해야했던 것은 역시 이름없는 선의의 민중들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평화와 화해는 결국 상대방의 존재에 대한 인정과 존중에서 시작된다. 독·프 공동교과서는 가급적 상대방 국가의 인식을 고려하여 이념적 요소는 최대한 배제하고 사실 위주의 신중한 균형감각을 유지하는데 치중한다. 양국의 민감한 현대사를 서술하는데 있어서 인상적인 부분은, 구태여 시각 차이를 억지로 봉합하거나 회피하려들지 않고, 각자 입장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각종 기록과 문헌, 사진, 도표들을 활용하여 최대한 객관적인 사실을 제시하되, 판단은 교사와 학생들에게 맡기는 식이다.

물론 미묘한 차이는 있다. 2차대전 이후 독일의 상황이나 분단 과정, 전후 처리문제, 사회주의에 대한 평가. 동서 냉전, 미국의 서방정책 등에 이르기까지,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독일과 프랑스가 걸었던 역사의 온도차가 곳곳에서 드러난다. 독일판이나 프랑스판 한쪽에만 있고, 다른 편에는 없는 표현들도 간간이 눈에 띤다 한국이나 아시아관련 내용에서는 부실한 내용도 많이 눈에 띤다. 각기 다른 입장을 지닌 역사인식에 대한 완벽한 균형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존재할수 없기 때문이다.

한중일도 공동 교과서가 가능할까?

독일·프랑스 공동교과서의 사례는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 우리는 외국에서의 한국 역사왜곡에 많은 상처를 받았던 경험이 있다. 특히 일본과 중국은 동북아에서 한국과 역사적으로 오랜 앙숙관계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막상 우리의 역사인식이 외국과 어떤 점이 다르고, 왜 다를 수밖에 없는 지는 민족적 감정에 치우쳐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아니, 알필요도 없다고 느끼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벽은 결코 하루아침에 좁혀질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신중해야할 것은 과연 동북아의 역사에 대해서도 독일·프랑스 공동교과서 같은 이런 방식을 그대로 도입할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일제 36년의 아픔을 겪은 우리 나라로서는 2차대전 패전이후 일본인들이 공공연히 '우리도 피해자'라는 인식을 내세우는 걸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더구나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독도 문제나 백두산 문제, 동북공정 등을 놓고 '중국과 일본의 입장을 존중한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다.

이처럼 역사적 사실 유무는 물론이고, 국민 정서만으로도 현저한 격차를 보이거나, 우리 입장에서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부분들이 분명히 많다. 또한 동북아의 역사는 유럽사보다 훨씬더 불균형적인 요소가 많았으며, 특히 현대사의 경우 한중일 모두 제대로 된 과거청산(혹은 정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것이 지금도 영토 분쟁이나 역사인식에서 갈등의 벽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상호간의 신뢰 회복을 어렵게 하는 원인이다.

중요한 것은 결국 갈등 극복과 신뢰 회복을 대한 서로의 기본적인 화해 의지에 달려있다. 독일·프랑스 공동 교과서의 사례에서 배워야 할 것은, 그 서술방식이 아니라 기본 정신이다. 공동교과서가 처음으로 거론될 때만 하더라도 양국 모두 비현실적이고 불가능한 일이라면 자국내에서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았다. 악연의 고리를 끓을수 있는 것은 어느 한쪽의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간의 신뢰와 의지에 달려있다. 그들은 완전하지는 않지만 평화와 화해를 위한 의미있는 첫 발을 내딛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공동교과서 출간은 그 정점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다.

당장은 힘들겠지만, 우리도 한일, 한중간 공동 역사책을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런 시각차를 깨닫게 되는 것이 우리의 역사를 보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될수도 있다. 우리의 역사만큼이나 그들의 역사 역시 제대로 알아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출처 : 갈등과 반목의 역사가 화해를 했다? -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