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udi 20 novembre 2008

[여의춘추―문일] 요코이야기,남은 진실 - 쿠키뉴스 / 2008-11-12

"미국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5일 역사왜곡 논란을 불러일으킨 일본계 미국인의 자전적 소설 '요코이야기'를 어학 교재에서 퇴출시키기로 결정했다." (11월6일 연합뉴스)

작년 초 소란스럽게 언론에 보도된 '요코이야기'는 어린 시절을 조선에서 보낸 요코 카와시마 왓킨스가 일제 패망 후 고난의 행진 끝에 일본으로 돌아간 경험담이다.

8·15 직후 조선인들이 일본인 여자를 성폭행하는 것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는 내용이 우리에게 문제가 됐다. 8·15 후에도 일본 경찰이 치안을 장악하고 있었는데 무슨 소리냐, 일본인들의 조선인 학대는 언급하지 않으면서 조선인의 만행만 부각시켰냐는 등 흥분한 반론이 많았다. 그러나 정황이나 논쟁으로 책 내용을 부정하기는 어려웠다.

일부 언론은 책의 다른 부분에서 오류를 찾아내는 방법으로 대응했고, 그 결과 세 가지 의문을 제기했다. (1)요코가 살았던 나남은 대나무가 자랄 수 없는 곳인데 웬 대나무 숲인가 (2)미군은 조선을 폭격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미군 폭격기를 보았다는 건가 (3)인민군은 몇 년 뒤에 창설되는데 웬 인민군을 보았다는 건가. 결국 반론의 정당성을 스스로 확신하는 것으로 소동은 가라앉았다.

우연한 일로 이 같은 승전보에 의문을 품게 됐다. 일본 아오모리 인근의 유명 관광지 핫코다 고원의 산책로에서 어른키 높이로 무성하게 울타리를 두른 조릿대숲을 본 것이다.

저자는 "어머니가 대나무를 그리워하자 아버지가 고향 아오모리에서 노란 대나무를 구해왔다. 10년이 흐르면서 대나무는 숲을 이뤘다. 얇고 길쭉한 대나무밭이다"라고 말했다. 얇고 길쭉한 대나무라면 조릿대다. "북위 42도 땅에 대나무가 자랄 리 없다"고 한 반론은 억측이었다. 아오모리의 조릿대는 과연 노란색이 돌았다. 나남과 위도가 거의 같은 아오모리의 해발 1300m 고지대의 조릿대가 어른키 높이라면 산밑의 조릿대는 11살 소녀의 눈에 숲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1945년 7월에 나남 부근이 폭격당했다는 기록도 보게 됐다. 나남은 일제가 세운 계획도시로 현재는 청진시에 속한다. 다카사키 소지가 쓴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역사비평사 간)에는 "일본제철 청진제철소는 7월 중순부터 공습을 받고 있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미국의 공습이다. 소련의 참전시기는 8월이기 때문이다.

"경보 사이렌이 울리자 '다들 땅 위로 엎드려!' 하고 선생님이 다급하게 외쳤다. 고개를 들고 하늘을 올려보았다. 미국 비행기 3대가 우리 머리 위를 줄지어 날아가는 중이었다"라는 대목은 사실일 것이다.

당시 인민군이 있었느냐는 문제는 조금 애매하다. 작가는 'Korean co-mmunist soldiers'라고 썼고 번역자는 '인민군'이라고 옮겼다. "당시 북한 지역에서 군복 따위를 입고 총을 들 수 있었던 이들은 인민위원회 산하 치안대 정도였다"(성균관대 김일영 교수)고 한다.

11살 소녀가 정규군과 민병을 구별하는 것은 무리다. 진실은 이 부근에 있을 것이다. 저자는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 틀린 말을 한 것이다.

'요코이야기'를 가짜라고 매도할 근거는 없다. 저자는 소녀의 눈으로 현실을 겪고 이해한 것을 썼다. 기억의 착오는 있지만 대체로 사실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이 입증됐다.

미국에서는 요코이야기를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한다. 교재로 채택된 것도 그 때문이다. 가해국가의 국민이라고 해서 역사의 수레바퀴를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피해자라는 중첩된 입장에서 전하는 이야기가 제3국 독자에게 한·일 역사를 오해하게 할 수는 있다. 교재에서 퇴출되는 것은 형평성이란 점에서 적절하다 하겠지만 퇴출과 진실이 별개라는 점은 잊지 말아야 한다.

문일 논설위원 norw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