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ndi 10 novembre 2008

명성황후 국상 재현된다. - 남양주투데이 / 2008-11-4

명성황후 국상 재현된다.
홍유릉문화제 통해 재현...옛날사진展 등 볼거리도 풍성
2008년 11월 05일 (수) 04:31:41 한철수 편집위원 guji2311@hanmail.net

금곡동 주민자치위원회와 남양주홍유릉문화제집행위원회에서는 오는 9일 홍유릉 주차장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금곡동의 역사, 시공, 세대를 초월한 '남양주홍유릉문화제'를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다.

이번 남양주홍유릉문화제는 ‘청소년들에게 역사교육의 장’금곡동 주민에게는 ‘지역문화의 정체성’을 찾고 ‘역사성과 독특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지역문화 행사’, ‘문화적 경제적 가치’를 높이고자 기획했다고 관계자는 말한다.

“ 몇 번의 기획과 노력 끝에 이번 축제를 준비했다. 이번 홍유릉축제 만큼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가을날 은행잎이 떨어지고 수목들이 마지막 옷을 갈아입는 계절에 금곡동주민들의 축제가 아닌 남양주와 인근 도시가 알아주는 축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집행위관계자는 말한다.

이번 행사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오전 9시부터 홍유릉산책로를 걷고, 일본의 낭인들 앞에서 당당히 외친 "나는 조선의 국모다."의 명성황후의 국장을 재현하고 , 오후 6시부터 제3회 남양주크낙새가요제를 연다.

"명성황후를 통한 역사의식, 금곡동 옛 사진 전시를 중심으로 한 볼거리, 연 만들기 등을 통한 체험 등 우리의 다섯 가지 느낌을 충족하기에 충분한 프로그램으로 한적한 11월 중순을 맞이하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아직 돌려 주지않고 있는 일본속의 한국 역사를 되돌리계기를 만드는 충분한 프로그램이라 생각한다."고 집행위원장은 말한다.

-“명성황후 국상”의 재현이 하이라이트

명성황후는 여흥 민 씨로 사가의 이름은 자영(玆暎)이었고, 1851년 음 9월 여주 근동면(近東面) 섬락리(蟾樂里) 사저(현. 여주군 여주읍 능현리 250-1)에서 민치록(閔致祿)의 재취부인 한산 이 씨의 딸로 태어났다. 1남 3녀의 형제가 있었으나 모두 죽고 그녀만 남았다.

1866년(고종 3) 3월, 16세 때 부대부인 민씨(府大夫人 閔氏)의 추천으로 왕비가 되었다. 고종의 사랑을 그다지 받지 못했고, 1871년 자신이 낳은 첫 번째 왕자를 5일 만에 잃는 등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었다. 대원군과의 불화 등 질곡의 삶을 살다가 1895년 10월 8일 옥호루에서 일제의 미후라 등 48명의 낭인에 의해 잔인하게 시해되었다.

명성황후는 일인에 의해 시해당한 후 청량리 홍릉에 홀로이 묻혀 있다가 1919년 1월 21일 고종황제 승하 후 이곳 홍릉으로 옮기어 합장하게 된다.

시해 후 2년2개월이 지난 1887년 11월 21일 발인한 명성황후 국장의 모습이 담긴 “명성황후국장도감의궤”가 일본의 국내성 서고에 있다. 많은 국내 학자와 시민단체가 환수를 요구하고 있지만 일본은 요지부동인 가운데 명성황후의 국장행렬은 잊혀져가는 비운의 역사를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문화재 전문가는 말한다.

금곡동 자치위와 홍유릉 집행위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명성황후 국상”을 재현하며, 관내 청소년들과 시민들에게 역사적 교훈을 남겨줄 것으로 기대하며 남양주홍유릉축제를 준비하고 있다.

이번 명성황후 국상 재현행사에는 총 인원 500여명으로 취타대50명, 국장행렬150명, 참가시민300명으로 편도로 진행되고 남양주시청까지 1시간여 행군을 계획하고 있으며, 군관민을 포함한 200명의 지역주민이 참여할 예정이다.

-남양주시민과 함께 하는 “크낙새 노래 자랑”

시민참여행사로 시화전, 옛사진전시전, 페이스페인팅, 연만들기, 민속놀이 등의 대중적인 프로그램과 한께 남양주에 거주하는 서울패밀리와 금곡동 직장인밴드‘두드림’의 공연도 한껏 흥을 돋을 준비를 마쳤다.

이번 축제에는 남양주연예예술인협회(회장 임용석)가 제3회 크낙새노래자랑이 식후행사로 끼 많은 지역주민을 유혹하고 있으며, 예선은 8일 오후 4시이며, 본선은 9일 오후 6시부터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