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ndi 10 novembre 2008

국사편찬위원회의 의견 제시는 정당할까요? - SBS뉴스 / 2008-10-21

근 현대사 교과서를 둘러싼 좌편향 시비가 지난주 국사편찬위원회의 검토 결론이 나오면서 일단락 되는 분위기입니다. 물론 교육과학기술부가 국사편찬위의 의견서를 바탕으로 자체적으로 수정 권고안을 내놓는다고 공언한 만큼 또 한번의 파란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상태는 1라운드와 2라운드 사이의 쉬는 시간이라고 보여집니다.

어떻든 국사편찬위라는 역사 교과서의 최고 권위 기관이 제시한 해석은 이 문제에 있어 상당한 무게로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고 또 실제 그런 역할을 했다는게 대체적 시각입니다. 하지만 과연 이번 국편의 결정은 조직의 역할과 역량, 존재 의의를 온전히 담은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에 부정적인 답변을 하게 만드는 요소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국사편찬위는 이번에 교과서의 문제점을 검토하면서 바람직한 교과서 서술 방향을 제시하고자 중도적 성향을 가진 (역사)학계 중진 10명으로 구성된 '한국사교과서심의협의회'를 발족했다고 소개했습니다. 위원들의 인적사항은 비공개 원칙이라며 공개하지 않았지만 취재 결과 정옥자 국편 위원장, 김용곤 국편 편사부장 등 국편측 인사 2명과 함께 한국사학회 회장, 한국역사교육학회 회장과 역사 각 전공 분야의 명망 높은 교수, 학자들이 참여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위원회는 그동안 3차례의 회의를 가져 2차 회의에서는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쟁점사항을 토론'하고, 3차 회의에서는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의 검토 및 서술 방향 제언을 최종 확정'했다고 국편은 밝혔습니다. 국편의 설명만을 놓고 보면 역사학계의 유명 학자들이 이번 국편의 의견서 작성에 힘을 보태고 영향을 미쳤던 것처럼 보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이번 심의위원들 가운데 국편측 인사 2명과 중도 사퇴한 2명, 한국사 문제에 있어서는 보조적 성격이 강하며 인적사항을 파악하기 어려웠던 동양사, 서양사 전공 교수 2명을 제외한 나머지 핵심 위원 4명과 접촉을 시도한 결과 통화를 하지 못한 1명외의 나머지 3명 모두로부터 국편의 주장과 전혀 다른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번 국편의 이른바 제언은 심의위원들의 뜻이나 의견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것입니다. 심의위원 대부분은 " 이미 교육과정 해설서에 기초해 작성됐고 검인정까지 받은 교과서의 서술에 대해 국편이 새로운 기준을 제시할 아무런 법적 권한이 없다는데 동의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과서 수정을 전제로 한 서술 방향 제언은 권한을 넘는 행위이기 때문에 국편이 작성해 제시한 제언 항목들에 대해 어떤 의견도 표명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고 전했습니다. 또 굳이 국편이 서술 방향을 제언할 경우, 심의위원과 무관하게 단독으로 만든 것이라는 점을 명시하라고 요구했다는 설명입니다. 나아가 심의위원들이 의견서에 반드시 첨부해줄 것을 요구한 부분은 '오히려 최근 정부가 행하는 일련의 교과서 관련 조치들이 교과서 검인정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는 내용이었다고 말합니다.

이들 심의위원의 주장을 요약해보면 이번 국편의 '교과서 서술 방향 제언'은 우리 역사학계, 적어도 이번 국편의 교과서 검토에 참여한 핵심 역사학자들의 뜻과는 무관하게 단독으로 이뤄진 행위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교과부의 관련 발표에는 이런 내용을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고 오히려 앞서 기술한 대로 마치 심의위원회가 제언에 깊이 관여한 것처럼 오해할 수 있도록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더군다나 앞서 말한대로 '교과서 검인정 체제의 혼란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우려'를 국편은 명확하게 기술해 의견서에 싣지 않았고 교과부 역시 관련 내용을 덮어 버린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의견만 받아들이고 반대로 뜻에 어긋나는 부분은 은폐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국편의 이번 의견서 제시도 부적절하다고 역사학계는 지적합니다. 국편은 지난 2001년 현재의 근현대사 교과서가 어떤 내용을 담고 어떻게 서술돼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는데, 다시 말해 교육과정 해설을 작성하는데 가장 주도적 역할을 했던 기관입니다. 또 그에 맞춰 각 교과서의 검인정 심사를 할 때도 핵심 역할을 맡았습니다. 심지어 이번 의견서를 사실상 작성한 장득진 국편 편사기획실장은 바로 2001년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의 검정위원 중 한명이었습니다. 뿐만인가요! 2004년 똑같은 문제가 일부 언론과 정치인들에 의해 제기됐을 때 현재 교과서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최종 결론을 내렸던 곳도 국사편찬위원회입니다. 그런데 국편은 마치 교과서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수정 가이드라인을 내놓은 것입니다. 과거 행한 자신들의 처신과 내렸던 판단이 모두 잘못됐다고 공언하고 있는 셈입니다.

백번 양보해서 설사 국편이 다시 한번 교과서의 서술 방향에 대해 핵심적인 사항들을 재정리했다고 치더라도 교과부는 그런 의견을 교과서 저자들에게 그대로 넘겨 검토를 요구하는데 그쳐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자체적으로 수정 문구를 만들겠다는 것은 검정의 허울을 쓰고 국정 체제로 운용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역사학자들은 지적합니다.

역사 교과서의 관점과 서술 방향에 대해 정부가 문제 제기를 하고 수정을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문제는 정해진 법적 테두리 내에서 절차에 맞게 고쳐야 한다는 점이다. 또 역사학계의 학문적 결론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역사학계를 들러리 세우고 법규를 넘어서서 교과서 수정을 강행하는 것은 역사라는 학문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역사학계는 경고합니다.


최종편집 : 2008-10-22 13:30 우상욱 기자 woosu@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