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ndi 25 mai 2009

'촛불'은 정치시장에 유입될 것이다" / 프레시안뉴스 / 2009-05-21

[의제27 '시선']<8>답은, 연합정치 운동이다

필자는 지난 달 프레시안 칼럼(4.16)에서 MB정권의 지지도 상승에 기가 눌려 민주개혁진영의 선거전망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시각에 반론을 제기한 바 있다. 그리고 오히려 지금은 "대중들의 불만이 광범위하게 누적"되어 가고 있으며, "대중들이 MB정권의 저강도 심판에는 당장에라도 기꺼이 동참할 의사가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전 문가들이 자주 오류를 범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정치를 움직이는 큰 줄기를 놓치고 현상 변수들만을 조합하여 맥락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정치현상의 이면에 놓여있는 큰 줄기를 놓치지만 않는다면, 설령 순간적으로는 예측이 빗나가더라도 오히려 일시적 오류를 통해 자신의 모형을 보강해 나가기 때문에 거시적으로는 실패하는 확률이 적어지게 된다. 바로 큰 줄기를 잡는 데 있어서 가장 기초가 되는 요소가 역사적 관점에서 정치적 통찰력을 발휘하는 일이다. 오늘은 그와 관련하여 향후 정치정세를 조망해 보고자 한다.

대중은 저만큼 앞서나가고 있다

재보선 결과를 보면서 우리는 촛불의 진화 경로에 대한 여러 가지 암시를 받을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작년 이맘때부터 한국사회에는 촛불을 놓고 일대 토론이 벌어졌었다. 직접민주주의냐 대의민주주의냐의 이중권력 간의 긴장과 질서에 대한 치열한 논쟁들이 그것이었다. 또 최근에는 촛불이 "'자율적 봉기'이냐, '실체 없는 환상'이냐"라는 논쟁도 벌어졌다. 그러나 이런 논쟁들은 여전히 핵심에 근접해 있지 못하다. 대중은 이미 저만큼 앞서 나가고 있는데, 논쟁들은 저만큼 뒤쳐진 곳에서 촛불이 없다고 하기도 하고, 촛불은 거세게 타오르며 또 다른 항쟁을 준비하고 있다고 헛발질을 한다.

나는 촛불을 '역관계의 정치행위'라는 관점에서 보고 싶다. 2008년의 촛불은 시민들의 정치적 요구 표출이 제도정치의 모든 방면에서 봉쇄되어 가는 상황에서, 아직까지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공간으로 남아 있던 '운동'의 공간을 통해 분출되어 나온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 후 촛불시민들은 엄혹한 탄압에 직면하게 되었다. 촛불을 지키려는 시민들의 헌신적 희생에도 불구하고, MB정권의 강력한 초동진압과 원천봉쇄 그리고 구속남발 등 초강경정책을 뚫어내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시민들은 MB정권이 평화적 집회와 가두투쟁을 날숨 하나까지 틀어막는 데 집중하고 있는 상황을 우회하여 자신의 요구 표출을 다시 선거정치의 장 속으로 전격 투입시켰다. 혹여나 보수층이 결집하여 자신들의 거사가 무산될까봐 투표일의 마지막 순간까지 숨을 죽이며 속속 투표장으로 집결하였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촛불에서 최근 재보선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사건의 궤적들은 마치 물줄기가 우회와 후퇴를 반복하면서 전진하듯, 좁은 정치적 공간 속에서 창의적으로 돌파구를 찾아나가는 시민들의 정치역량을 보여준 것이었다.

선거시장으로 유입되고 있는 촛불

필자는 작년 한 신문사 주최의 토론회에서 촛불의 동력이 중장기적으로 정치시장-선거시장에 진입해 들어오게 될 것이며, 이것은 양적 누증과정을 거쳐 어느 시점에 제도정치 전반에 대한 정치개혁의 압력으 로 작용하고 아울러 기성 정당구도를 재편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 바 있다. 촛불의 선거시장 유입은 새로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정치집단들 사이의 정책 경쟁과 공론화를 확장시킬 뿐만 아니라, 정당체제의 재편(realignment)을 둘러싼 경쟁을 촉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MB정권의 시대흐름을 무시한 무리한 권력전략과 그에 따른 반MB심리의 확산은 그 같은 흐름을 예상보다 더 빨리 가속화시키고 있다. 최근 4.29재보선 이후 부쩍 높아진 '연합정치', '반MB전선'과 같은 담론들은 바로 이런 맥락 속에서 그 의미가 훨씬 심오하게 간파되어야 한다.

지금은 희미하지만 정치 및 선거지형의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전조들이 보인다. 이번 4.29재보선에서 30~40대 유권자들의 참여가 전반적으로 증가하고 투표율 하락추세가 역전되고 있는 현상은 그저 범상하게 볼 일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시장의 일방독주와 탈정치, 무당파화가 대세를 이루었던 시대적 국면이 종료해 가고, 다시 '정치적인 것'으로의 복귀가 일어나고 있는 현상은 한국의 정치상황에도 이미 파장을 미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이런 일련의 흐름들은 민주개혁세력들에게 아주 유의미한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지금 한국의 보수세력들은 자신들이 국가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는 세력임을 너무도 짧고 극명하게 실증해 주고 있다. 가치와 비전을 창조할 수 있는 역량이 제로라는 것, 권력정치 말고는 별다른 지적 자산이 없는 집단이라는 것, 인위적 카르텔 장벽을 만들어 기득권을 지키는 데만 능수능란할 뿐 헤게모니적 지배능력이 매우 취약하다는 것, 새로운 보수세대의 리더십 동력이 벌써 고갈되어 버렸다는 것 등은 한국 보수의 미래를 암울하게 한다. 그에 비하면 민주개혁세력들은 확실히 더 많은 가능성을 내장하고 있다. 비록 민주화 1세대와 2세대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2진들이 새로운 동력을 충전하고 있고, 기본적으로는 민주개혁세력들이 보수세력에 비해 훨씬 더 미래사회에 친화적인 가치와 지지세력을 기반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의 위기'

그 럼에도 불구하고 민주개혁세력들의 현주소는 아직은 지리멸렬 그 자체이다. 한국사회가 나날이 공동체 붕괴의 위기를 향해 치닫고 있는 상황인데도 민주개혁세력은 아직 어떤 해결 전망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개혁세력의 위기의 본질은 한국사회 위기의 일부분으로서 '정치의 위기'이다.

한국사회가 처한 위기의 본질은 집단적 삶의 안정성을 담보하는 시민의 헌법적 권리, 즉 '공공성의 위기'이며, 그것의 핵심에는 '정치의 위기'가 놓여 있다. 박명림 교수가 잘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사회양극화에 의한 시민적 삶의 피폐화에 대해 사회적 대응을 어렵게 만들어 온 것은 공동가치나 정신이라고 할 합의나 합의체계가 부재하다는 현실에 기인한다. 그런데 한국 사회가 보유하고 있는 정치 역량은 정치의 존재 이유를 의문시할 정도로 소진되어 가고 있다.

민 주개혁세력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의 핵심도 바로 그 같은 '정치의 내면적 위기'에 다름 아니다. 주지하듯이 지난 시기에 민주개혁세력은 분열과 파편화를 극복하지 못해왔고, 그것은 한국사회에 비정상적으로 왜곡된 정치구도를 생산해 냄으로써 민주세력의 총체적 위기를 야기했다. 지난 시기 이라크파병, 비정규직해법, 한미FTA 등 거의 모든 주요 의제마다에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혹은 진보신당)이 분열하고, 민주당 내에서도 개혁파와 실용파가 분열하고, 나아가 지지 세력까지가 양분되어 왔다. 그런 분열의 와중에서 민주세력의 힘은 분산되고 소진되었으며, 보수 세력은 그런 틈새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민주개혁세력은 공멸하고 말았다.

정치의 생명은 기본적으로 '힘의 균형'에 있다. 정치발전의 수준이 높은 나라일수록 '균형정치(balance politics)'가 잘 작동하게 된다. 힘이 한쪽으로 과도하게 쏠리게 되면 적절한 타이밍에 정권교체가 일어나든지, 아니면 민주적 권력분점이 일어나든지, 또 아니면 정당 간 연합의 재편성이 일어나서 균형을 회복하는 쪽으로 움직이게 된다. 그런데 한국의 정치는 균형이 한 번 깨지자 걷잡을 수 없는 불균형의 심화 재생산이 전개되었다. 특히 민주개혁세력은 양당체제가 도괴되어 0.5세력으로 전락했음에도 또 다시 0.4와 0.1로 분열되고, 0.1이 다시 분열되었던 것이다.

딜레마 구조를 깨뜨리기 위한 '연합정치'

지금 민주개혁세력들의 모습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민주당은 호가호위 구조에 안주하여 좁쌀만한 기득권을 지키는 데 여념이 없다. 그래서 지금 민주당은 고사의 위기에 처해 있으면서도 정치적 개방을 거부하고 쇄국정책을 고수하 고 있는데, 이들이 자력으로 현재의 위기를 극복해 나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진보정치세력이라 할 수 있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낡은 계급, 통일의 이데올로기와 공허한 반신자유주의 타령을 전가의 보도인 양 붙든 채 지적 나태에 빠져 있다. 민주당이 망하면 진보세력이 약진할 것이라는 철부지 같은 몽상을 아직도 수년째 버리지 못하고 있다.

또 진보적 시민단체세력들은 알맹이 없는 도덕적 오만을 현실정치에 그대로 투영시키는 행태를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현실정치에는 진출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해왔는데, 정치에 대한 대중의 불신과 혐오를 부추기는 것이 주요한 정치 전략이 되고 있다. 요컨대 민주개혁세력들 모두가 각각의 개별적 자구책만으로는 탈출하기 힘든 딜레마 상태에 갇혀있다.

연합정치는 바로 그 같은 딜레마 구조를 깨드리기 위한 중요한 방편이다. 그것은 현재의 경직된 판을 흔들어 현상유지 구조를 깨고, 인적·물적·정치적 자원의 효율적 배치를 통해 쇄신의 동력을 창출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그것은 공동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보다 유연하게 협력하고 경쟁하는 방법을 터득케 함으로써 민주개혁세력의 정치적 역량을 가일층 강화시킬 것이다.

또 한 연합정치는 현재 민주개혁세력이 직면하고 있는 최대의 과제인 '리더십 복원'이라는 과제와 긴밀하게 결합될 수 있다. 리더십 복원은 단순히 어떤 탁월한 개인 지도자의 출현과정이 아니다. 리더십은 절실한 필요와 갈망을 기반으로 세력과 그룹에 의해 창조되는 '시스템'이다. 현 단계에서 리더십 복원의 핵심은 정치지도자 후보군들이 현재는 자기 스스로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잠재력을 적절하게 발휘할 수 있도록 판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치열하고도 생산적인 경쟁과 보상의 원리가 작동하는 내부의 리그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그 리그는 어떤 단일정파들만으로 구성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연합정치운동체'를 제안한다

지방선거에서부터 멋진 연합정치모델을 만들어내야 한다. 밑으로부터 정책협약을 만들어내고 그 기준에 맞는 후보를 만들어 내고 공동으로 선거운동을 기획하는 것을 통해 참여, 토론, 협상, 협력, 경쟁의 정치문화를 창조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전국 및 중앙단위 수준의 리그까지가 만들어지고, 민주세력 내부의 노선과 정책 차이도 그 과정을 통해서 검증해 나간다면, 지금까지의 관념적이고 진영론적인 대립의 폐해를 극복하는 데에도 유익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민주세력 전체를 아우르는 구심점이 발견되고, 새로운 지도자들이 시대적 요구에 대한 자신의 좌표를 훨씬 분명하게 이해하면서 하나 둘씩 솟아오르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다고 연합정치가 단순히 보수진영에 맞서기 위한 진영의 무기만은 아니다. 정치선진화를 위한 중요한 수단이기도 하다. 현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개혁의 목표는 사회적 공동선에 대한 토론과 합의가 가능하도록 정치를 바꾸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권력추구를 위한 극한적 대립이 반복적으로 재생될 수 있는 유인 구조를 바꿔야 한다. 연합정치는 그 같은 정치개혁의 여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첫째, 연합정치는 합의민주주의를 강화하여 토론과 협상의 정치문화를 촉진한다. 둘째, 연합정치는 국회가 외부의 권력개입에 휘둘리지 않고 자율성을 제고할 수 있게 한다. 셋째, 연합정치는 패권적 정당문화를 지양하고 정당의 기능과 역할을 증대시키는 쪽으로 기여한다. 넷째, 연합정치는 대통령과 여당이 한 배를 타고 가는 식의 정국운영을 개선하여 온건다당제식의 대통령과 여당이 각각 자율성을 갖는 관계로 정립이 이루어져 대통령제 본래의 기능인 삼권분립의 의미를 강화시키고 동시에 여야 정쟁구도를 약화시키는 쪽으로 작용할 것이다. 요컨대 연합정치는 민주개혁세력의 내부의제의 차이 극복에 유용한 수단일 뿐만 아니라 정치선진화의 중요한 수단이다.

연합정치는 시민사회에서부터 정권 차원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영역에서 전개되는 극히 보편적인 정치행위이다. 연합정치라는 선진적 정치수단을 정치개혁과 쇄신의 수단으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여지는 매우 많다. 지금부터 연합정치운동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이를 현실적으로 조직하는 연합정치운동체를 만들자.

고원 상지대 학술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