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ndredi 22 mai 2009

[시론] 촛불시위와 인터넷, 그 난장의 정치 / 한겨례 / 2008-06-04

한 달여 계속된 촛불시위가 지난 주말을 계기로 반정부 투쟁의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나 15년밖에 못 살았어요"라는 중학생의 구호가 20대와 30대가 외치는 "이명박 아웃"과 "정권 퇴진"으로 바뀌었다. 시위 현장에 가 보았더니 유모차에 탄 갓난아기, 중학생 딸 손을 잡은 엄마와 젊은 아버지, 놀러 나온 듯 즐거운 대학생들까지, 정말로 다양하기 이를 데 없었다. 시위 참가자들은 화가 많이 나서 거리로 나선 듯했지만, 웃고 떠들면서 시위를 즐기고 있는 사람도 많았다. 신문이나 티브이 뉴스가 정부의 대처 방안, 여야 공방, 시위 진압 장면들만 보여줘서 그런지, 놀이와 정치가 어우러진 현장의 모습이 신기로웠다.
청와대와 경찰 그리고 몇몇 언론은 사태 초기 배후세력(심지어 친북세력까지)을 의심하다가, 자발적 시위가 한 달 이상 지속되고, 전국적으로 30만명도 넘는 시민이 촛불시위에 참여하자, 뭔가 잘못되었음을 이제야 깨달은 듯하다. 사태가 악화된 원인을 꼽으면서 많은 분석들이 ‘국민과의 소통 실패’와 인터넷(그리고 몇몇 방송 프로그램)의 괴담 유포를 지적했다. 그래서 나온 대책이 청와대와 내각의 국정홍보기능 강화, 인터넷 사용자에 대한 규제 강화 등등이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적 대응책이 아닐 수 없다.

촛불시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결합된 디지털 미디어 활동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첫째, 탄핵 서명운동을 시작한 다음아고라, 시위 현장을 생중계하는 아프리카와 오마이뉴스, 실시간 글을 쓰고 동영상을 올리고 수백 수천 개씩 댓글이 붙는 블로그들. 여기에 실린 주장과 동영상 그리고 댓글들이 모두 괴담이고 감정의 분출일까. 150만명도 넘는 사람이 서명한 탄핵 사이트 아고라에 가보면 욕지거리, 사실무근, 허황된 주장들이 무수하게 널려 있다. 그러나 인터넷을 이렇게만 보면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하루에도 몇 번씩 사이트에 드나들면서 글을 읽고 쓰고 댓글을 반박하는지를 이해할 수 없다. 기존 저널리즘 소비자와 달리 인터넷에서 누리꾼들은 자신을 표출하고 드러낸다. 이를 표출적 공론장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인터넷은 난장이다. 난장에서 춤추고 노는 사람들에게 말의 내용이나 형식보다는 노는 행위 자체가 중요하다. 여기에서 사실의 정확성·진실성은 글 자체, 댓글 하나를 통해 규명되지 않는다. 무수하게 많은 사람이 욕하고 반박하고 주장하면서 사태의 진실성에 다가간다. 한 신문의 보도, 한 방송의 보도는 전문적 식견을 갖춘 기자에 의해 보장되는 것이지만, 인터넷의 진실은 집단지성과 집단적 참여에 의해 확보된다. 난장에서는 심층보도나 전문지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보를 만들고 퍼뜨리면서 노는 사람들의 놀이터에 가깝다. 이렇게 난장에서 노는 사람들에게 괴담과 유언비어를 유포·선동했다고 구속수사 엄포를 놓으면, 닭장차에 자발적으로 탑승하고 기념사진 찍는 사람들이 줄을 서게 되는 것이다.

셋째, 쇠고기 파동과 촛불시위를 제도정치 수준에서 이명박 정부의 위기라는 틀에서만 보도하는 기존 저널리즘은 제도정치의 수준을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민 분노가 표출하는 생활정치와 욕망의 정치를 이해하기 어렵다. 욕망의 정치 입장에서 보면 정부가 고유가 타개책을 내놓지 못한다고 해서 큰일은 아니다. 하지만 ‘미국인이 먹는 쇠고기나 내가 먹는 쇠고기가 같아야 한다’는 것은 자존심의 문제다. 인터넷에서는 제도정치가 아닌 생활정치와 욕망의 정치가 더 중요하다.

강명구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