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ndi 4 mai 2009

[임춘웅 칼럼]정(情)의 두 얼굴 / 내일신문 / 2009-04-27

정(情)의 두 얼굴
임춘웅 (본지 객원 논설위원)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서울이 과연 국제도시가 됐음을 실감하게 된다. 외국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인사동은 물론 어디를 가도 외국사람들을 흔히 대하게 된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도 영어 일본어 뿐만 아니라 베트남어 아랍어까지 들을 수 있다. 어디 서울뿐이겠는가. 부산에서도 주로 일본사람들이긴 하겠지만 외국인이 아니면 장사가 안된다는 보도를 보고 있다.
좋은 현상이다. 한국인은 유독 순혈주의를 숭상(?)해왔고 단일민족임을 자랑하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좋은 게 아니다. 자세히 보면 우리가 순혈인 것도 아니고 단일민족도 아니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서로 섞여 사는 게 더 좋은 것이다. 단일하게 살 수 있는 세상도 아니다. 섞여야 사고가 다양해지고 민족적 편협성에서도 탈피할 수 있다.
서울을 잠깐 둘러보는 관광객 뿐 아니라 비즈니스로 서울에 장기체류하는 사람, 한국에 아예 귀화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귀화하는 사람은 물론이겠지만 한국을 좋아한다는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좋아하는 이유 중 태반은 한국인들의 따뜻한 정(情)이 좋아서, 정이 넘치는 한국사회가 좋아서 한국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한국을 좋아하는 이유는 정

오래 전에 들었던 얘기라 얼마나 정확한지는 알 수 없으나 일본에 자주 들르거나 일본에 장기 체류하는 외국인들의 90%는 일본을 좋아하게 된다고 한다. 일본인들의 친절, 질서 정연한 사회, 깔끔한 식문화 등이 일본을 좋아하게 하는 요인들로 꼽힌다.
그런데 한국을 좀 안다는 외국인들을 조사해봤더니 반은 한국을 무척 좋아했고 반은 반대로 대단히 비판적이었다고 한다. 일본은 온타작을 하고 있고 한국은 반타작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저런 일로 한국사람의 접대를 받아본 사람은 누구나 그 후대에 놀라고, 한국인의 인심을 거론한다. 어떤 미국인은 밤늦게까지 회사에서 야근을 하고 피곤한 몸으로 자정이 다됐는데도 지인의 상가에 들러 조문을 하고 돌아가는 한국인들을 보며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른다고 말한다.
한국인들이 정이 많은 국민이라는 것은 어김없는 사실이고 그것을 우리 스스로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한다.학계의 최상진 교수는 정은 한국인의 가장 한국인다운 문화적 심성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한국사회에서 정이 없는 사람은 사회적 고립을 자초하게 된다고 말한다. 정에 대한 매우 적절한 설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국을 좋아하지 않는 반의 외국인들은 다른 반이 그토록 매료되는 한국인의 정, 바로 그 정으로 뒤얽힌 한국사회가 싫다는 것이다.
왜 한국사람이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 자기에게 그토록 친절한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오히려 불편해하고 부담스럽게 느낀다. 지금 시골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는 어느 캐나다 사람은 동네 사람들이 수시로 찾아와 자기 시간을 가질 수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었다. 전화도 없이 불쑥 찾아오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이다.
그러다 다소 소홀히 대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면 다음날에는 마을에 어김없이 나쁜 소문이 돈다는 것이다. 외국인이라고 이런저런 편의도 봐주고 자주 반찬도 갖다주곤 했는데 은혜도 모르고 버릇없이 군다는 소문이라고 한다. 그들에게는 한국인의 정이라는 것이 지극히 난해하고 복잡해서 이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모르는 것이다.(실은 한국인도 잘 모르지만)
정이란 감성이다. 이성의 반대편에 있다. 최근에는 서양학계에서도 동양적 감성의 중요성에 대해 주목하게 됐고 감성이 실제로 주요 의사결정에 적지아니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물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감성의 영역에 속하는 정이란 본질적으로 이성적인 것이 아니다.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이해하기도 어렵다. 정이란 다분히 전근대적인 요소인 것이다.
정이란 함께 사는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일종의 정신적 유대감이다. 때문에 접촉이 없었거나 생소한 사람에게는 상대적으로 배타적이 된다. 그래서 한국인은 아는 사람에게는 지나치게 친절하고 모르는 사람한테는 지나치게 불친절하다.

한국을 싫어하는 이유도 정

정의 문화는 부패와도 연관이 있다. 요즘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 주변 인물들에 대한 이런 저런 거래가 수사대상이 돼 있는데 서양식의 로비나 뇌물성이라기보다는 오랫동안 잘 알고 지내던 사람들끼리 이리 얽히고 저리 얽힌 한국적 관계가 부패로 확대된 게 아닌가 여겨진다.
인정주의적 정은 상호간 잘잘못을 따지는 것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사회에 폭넓게 자리잡고 있는 정실주의라는 것도 우리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고 있는 정의 부산물인지도 모른다. 정을 보다 합리화하고 이성화할 묘안은 없는 것일까. 다같이 생각해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