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udi 29 janvier 2009

‘한국사회 불평등 핵심고리를 천착하라’ - 한겨레 / 2009-01-12

[2009 문화현장] 이곳을 주목하라
비판사회학회 ‘불평등연구회’

“사회 전반에 걸쳐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최근 목격하는 것은 경제적 불평등의 결정력이 압도적으로 강해졌다는 것 아닌가요?”(김영미 중앙대 사회학과 박사후 연구원)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게 경제적 요인만이 아니잖아요? 오히려 불평등 구조를 재생산하는 사람들의 의식과 행위 양식에 주목해야 합니다.”(박경숙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지난 8일 저녁 서울 중앙대 교수연구동 401호. 이름마저 범상치 않은 ‘불평등연구회’의 신년 모임이 한창이다. 2008년 회계 보고와 새해 인사를 겸해 마련된 자리였지만, 양극화 문제를 두고 시작된 회원들의 대화는 어느새 치열한 논쟁으로 발전했다.

“88만원 세대론은 부풀려진 담론”
신년 모임 어느새 열띤 논쟁으로

2007년 출범 20여명 매달 정례 발표
양극화 다양한 접근·비교연구 시도

한준 연세대 교수가 말을 이었다. “최근 불평등의 심화는 금융화와 함께 자본주의 본연의 경제적 속성이 한층 적나라하게 드러난 결과로 봐야 한다”는 게 논지였다. 그러자 박경숙 교수가 다시 반론을 폈다. “이혼 가정이나 고령층에서 나타나는 빈곤을 경제적 요인만으로 설명할 수 있나요?” 이성균 울산대 교수는 “자산·소득 불평등을 확대재생산하는 교육 시스템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고, 김성훈 이화여대 교수는 “공공성·시민성의 부재가 왜곡된 시장주의를 불러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며 박 교수를 거들었다. 양보 없는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가운데 좌장 격인 신광영 중앙대 교수가 나섰다.

“신자유주의화가 진행되면서 경제적 불평등의 구조적 규정력이 강화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혼 여성과 노인층 빈곤은 경제적 현상이되, 각각 가족해체와 노동시장의 변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으니까요. 복지·사회 등 불평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의 특성을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본다면, 우리 사회 불평등 구조의 속성이 밝혀질 수 있지 않을까요?”

불평등연구회는 2007년 10월 한국비판사회학회 산하에 만들어진 연구모임이다. 외환위기 이후 심화된 양극화 문제를 소득·일자리·교육·의료 등 다양한 차원에서 접근해 보자는 취지로 사회학자와 복지 전문가, 의료인, 대학원생 등 20여 명이 모였다. 매달 정례 발표회를 열어 분야별 쟁점을 토론하고, 동아시아 국가와의 비교연구도 병행한다. 9일에는 일본 불평등학회 초청으로 신 교수와 김영미 연구원이 후쿠오카를 다녀오기도 했다. 다음달에는 미국 프린스턴대가 주관하는 세계불평등네트워크(GNI) 회의에도 참가한다.

한국 사회의 불평등은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급속히 악화됐다. 소득 불평등의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1992년 0.248에서 1997년 0.262, 2002년 0.284, 2007년 0.312로 치솟았다. 중산층 붕괴와 하향 빈곤화를 보여주는 상대적 빈곤율(소득이 중위소득의 50%에 미치지 못하는 계층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 역시 1997년 7.3%에서 2007년 13%로 배 가까이 상승했다. 비정규직 비율은 50%를 넘어선 지 오래다.

이날 모임에선 세대간 불평등의 심각성을 부각시킨 ‘88만원 세대론’이 도마에 올랐다. “과도하게 부풀려진 담론”이란 의견이 많았다. 노동시장의 ‘인사이더’에 대한 보호장치가 두터워 청년 세대의 신규 진입이 쉽지 않은 유럽과 달리, “외환위기를 계기로 일자리 보호장치가 파괴된 한국의 경우엔 불평등이 모든 세대에 걸쳐 증가하고 있다”(김영미)는 이유에서다. “젊은층이 88만원 세대라면, 고령층은 50만원 세대”(박경숙)라는 지적과 “세대간 갈등을 부추기는 우파 담론에 88만원 세대론이 이용당하고 있다”(한준)는 비판도 이어졌다. 신 교수는 “이른바 ‘아이엠에프 세대’라는 30대와 다른 세대를 비교해 보니, 실업자·비정규직 비율 모두 50·60대에 비해 낮은 편이었다”며 “88만원 세대론은 다분히 유럽적 상황에 기댄 논의”라고 꼬집었다. 우리 사회는 세대간 불평등보다 세대 내부의 양극화가 훨씬 심각하다는 얘기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