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udi 29 janvier 2009

[테마진단] 한국 사회의 거울, 미네르바 신드롬 - 매일경제 / 2009-01-08

불안감이 `확신 편향` 부채질
정치답답함이 허상을 우상화


지난 몇 달간 이름과 신분을 숨긴 채 `경제대통령`으로 불리면서 화제의 중심이 되어 왔던 인터넷 경제논객 미네르바가 30대 남성이란다. 개인적 신상도 그가 그간 밝혀 왔던 정보와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다.

미네르바는 일찌감치 몇 가지 굵직한 경제적 사안을 잘 짚어 냈다. 리먼브러더스 부실화나 환율 변동 등을 비교적 정확하게 예측하긴 했다. 그러나 기본적인 경제학 개념이 틀리기도 했고 논리적 근거 없이 내놓은 섬뜩한 예측도 있었다. 어쩌면 전문가들은 갸우뚱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사회 많은 이들은 그의 주장에 강한 신뢰감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의 주의집중력과 기억창고는 그 용량에 한계가 있다. 이런 제한된 심리적 자원으로는 완벽한 정보처리가 어렵기 때문에 때로 오류에 빠지기도 한다. 초기에 적중한 미네르바의 몇 가지 예측은 사람들 머릿속에 일종의 `가용한 정보`로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특히 인간은 여러 가지를 꼼꼼히 비교해서 판단하기보다는 떠올리기 쉬운 가용성에 이끌려 판단하고 사고하는 경향이 있다. 처음의 정확한 예측이 강렬한 인상을 주었기에 이후 주장을 판단하는 데도 이러한 인상이 작용하게 된다.

이러한 인지적 절약성은 쉽고 빠르게 옳은 판단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때론 오류에 빠지게 만든다. 이 때문에 사람들 머릿속에 미네르바는 틀린 예측보다는 정확한 예측을 내놓는 존재로 자리 잡은 이후 사람들은 그를 그대로 신뢰했던 것이다. 더욱이 인간은 믿는 바나 바라는 바를 지지하는 정보는 진위에 상관없이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믿는 반면, 그에 반대되는 것은 눈여겨볼 가치도 없다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바로 `확신 편향` 심리다. 이러한 확신 편향은 불안한 상황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공고하다고 생각했던 미국 경제 위기와 일관성 없는 경제 정책을 내세운 정부에 대한 불신은 미네르바 주장에 대한 사람들의 확신 편향을 부채질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가 이러한 비합리적 사고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함을, 오히려 그러한 편향에 휘둘림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또한 사회가 불안할수록 진실은 밝고 공식적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둡고 비공식적인 곳에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바로 `루머`의 힘이다. 물론 일반대중에게 공식적으로 전달되는 정보량이 적고 그 경로가 한정적이었던 과거에는 루머를 아는 것이 정보적 가치가 있었다. 그러나 다양한 정보가 제공되는 현대사회에서는 그 가치가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상황과 불신이 만연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공식적인 정보보다는 비공식적인 정보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방대한 정보를 시시각각 쏟아내고 그 파급 속도 역시 엄청나게 빠른 인터넷은, 근거가 모호하지만 일견 그럴 듯해 보이는 불확실한 내용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전달시킬 수 있는 환경이다. 결국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불안함은 우리를 인터넷 안에서 배회하게 만들었고 불안한 대중은 미네르바라는 허상을 우상화시켜 갔던 것이다.

그런 네티즌 반응에 힘입어 더 멋진 미네르바가 창출되어 갔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신분이 철저히 위장될 수 있었기에, 사람들은 금융계 경력을 지닌 국외 경험이 있는 50대라고 그의 경력을 포장해 가면서 그를 우상시했다. 그의 지식보다는 그의 포장이 주는 후광으로 인해 그의 주장이 더 큰 신뢰감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는 경제 위기와 정치적 답답함이 빚어낸 인터넷상 여론몰이로 휘청거리는 한국사회의 단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불신과 불안이 팽배한 사회, 공식적인 정부 주장은 못 믿으면서도 익명의 가면 뒤로 내세운 은근한 권위에는 약한 이중적인 모습,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냈던 영웅 미네르바가 지배했던 지난 한철은 이런 우리 사회의 슬픈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왠지 허탈해진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