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udi 29 janvier 2009

반민특위, 친일파 재산몰수 첫 확인 - 한겨레 / 2009-01-09

이기용 토지대장 흔적 발견
“실제 집행까진 단정 어려워”

1940년대 말 실질적 성과 없이 와해된 것으로 알려진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당시에 친일파의 땅을 실제로 몰수했던 기록이 처음 발견됐다.

9일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역사종합정보센터의 누리집 문헌자료를 보면, 1949년 5월13일치 <자유신문>에는 “추상같은 전 인민의 심판의 칼날은 12일 드디어 자작 이기용에게 최초로 내리게 되었다”며 ‘징역 2년6개월과 부동산 절반 이상 몰수’의 판결 내용이 기사로 실렸다. 몰수 대상인 부동산은 ‘양주군(현 양주시) 장흥면 부곡리 6○○ 번지 부근 전답 8122평이다.

실제 <한겨레>가 경기 양주시에서 이 지역 일대의 토지대장을 떼보니, 이 부동산에 대해 ‘반민법에 의거 국유재산’으로 명기돼 있었으며, 소유권자도 ‘이기용’에서 ‘국’(國)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는 반민특위가 무력하게 종결됐다는 기존의 역사 평가와 달리 초기에는 실제 재산 몰수까지 집행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에 대해 ‘친일 반민족 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쪽은 “토지대장 기록만으로 실제 법 집행이 이뤄졌다고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흥미로운 발견으로 보이며, 친일재산조사위에서도 올해 반민특위의 재산 몰수 성과에 대한 본격 조사를 벌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반민특위의 조직과 활동>(2003)이란 연구서를 낸 허종 충남대 교수는 “반민특위에 의한 실제 몰수 집행이 있었는지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며 “반민특위가 와해됐다고 봐 연구자들이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해방 직후에 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받아 1949년 1월5일 구성된 반민특위는 화신백화점 박흥식 사장을 시작으로 육당 최남선, 춘원 이광수 등 친일파를 줄줄이 체포해 초기에는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과 친일파의 방해 활동으로 반민특위는 이후 와해의 길을 걸었다. 1949년 6월4일 반민특위가 서울시경 사찰과장 최운하 등을 체포하자 이틀 뒤 50여명의 경찰관이 특위 사무실을 습격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