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ndi 5 janvier 2009

[특파원칼럼] "한국은 과연 통일을 원하는가?" / 조선일보 / 2008-12-19

이하원·워싱턴 특파원 May2@chosun.com

현재 미 국무부에서 한반도 정책을 총괄하는 동아태 차관보는 크리스토퍼 힐(Hill)이지만, 4년 전 그 자리에는 제임스 켈리(Kelly) 가 있었다.

미국의 초대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를 역임한 그는 대북(對北) 온건파로, 지금의 힐 차관보 못지않게 남북한의 주목을 받은 인물이다. 다변(多辯)의 힐 차관보와는 달리 다소 어눌한 켈리 전 차관보는 한국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 적이 별로 없다. 지난해 5월 그를 인터뷰했을 때도 북한과 관련된 발언만을 주로 들을 수 있었다.

그랬던 켈리 전 차관보가 미국의 닉슨 연구소가 발간하는 '내셔널 인터리스트' 최신호에서 한국에 대해 비판적인 분석을 했다.

그는 '지금 당장은 두 개의 한국(Two For Now)'이라는 제목의 기고에서 미국 사회 일각에서 제기하는 북한 붕괴론의 문제점을 비판했다. "북한을 제거하는 것은 희망일 뿐이며, 이를 급속히 추진하는 것은 위험하고 비용이 많이 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러면서 '한반도 현상유지'의 중요한 논거(論據)로 삼은 것은 한국사회의 북한에 대한 태도였다. 그는 "한국의 비약적인 경제적 성공은 역설적으로 한국 국민들이 분단의 현상유지를 편안하게 여기며 살도록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또, 한국인들은 추상적으로는 통일을 선호하지만 경제적 궁핍과 북한 주민들을 흡수해야 하는 잠재적인 비용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 결과가 "북한에 대한 엄청난 무관심과, 한국 정부의 정치적 성향에 관계없이 북한과의 긴장을 회피하고 심지어 '보호용' 자금을 주는 경향을 낳았다"는 것이다.

한반도 정책을 4년간 담당했던 켈리 전 차관보의 분석은 분단국가인 한국이 미국에 어떻게 비치는지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 정부 관계자와 한반도 전문가들은 한국 내에서 북한 인권에 대해서 말하면 "또 그 이야기냐"며 지겨워하는 상황을 잘 알고 있다. 이들은 보수주의 정권이 들어선 후에도, 북한의 '협박'에 굴복해서 집권당 대표까지 나서서 민간단체의 대북 삐라(전단) 살포를 가로막는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탈북자들이 한국 대통령보다 미국 대통령을 만나는 것이 훨씬 더 쉽다"며 조소(嘲笑)하는 한반도 전문가들도 있다.

워싱턴 포스트가 최근 국제면 톱기사와 사설을 통해 북한의 강제수용소를 탈출한 신동혁씨를 보도하면서 한국의 대북 무관심을 지적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 신문은 "신씨가 살고 있는 한국에서 단지 500명만이 그의 책을 샀다는 사실은 끔찍하다(horrifying)" 고 비꼬았다.

문제는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과 언론의 이 같은 분석이 낯뜨겁게 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의 대북 무관심과 한국이 북한의 위협에 잇달아 굴복하는 현실은 미국의 대(對)한반도 정책 형성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미 국무부, 국방부의 정책 결정 담당자들이 한반도 정책을 논의할 때 켈리 전 차관보처럼 당분간은 한반도 통일이 아니라 현상유지를 해야 한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이 제기되면서 북한 문제는 내일 처리해도 될 문제에서 '오늘의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가 전체적으로 북한에 대한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워싱턴에서 한국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기는 어려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