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ndi 20 avril 2009

연규홍의 거울 속 역사 ② 엇갈린 평가 속의 선교사들 / 쿠키뉴스 / 2009-04-08

[미션라이프 칼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는 국적이 없지만, 선교사들에게는 국적이 있다. 과연 한국에 온 선교사들은 하나님의 순결한 천사였는가? 아니면 제국주의의 전파자였는가? 한국 교회의 역사는 1876년 외국에 대한 문호개방과 함께 시작한다. 조선은 일본과의 외교적 협약이후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구 국가들과 수호조약을 체결하였다. 1882년 미국과의 ‘조선·미수호조약’은 특히 미국 선교사들의 한국 선교를 본격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조선조 후기 사회에 전파된 천주교와는 달리, 정치적 마찰을 피해 교육과 의교 사업 중심의 간접선교를 펼친 개신교는 한국사회의 개혁과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기독교는 조혼과 축첩제도, 적자와 서자, 양반과 상민 등의 성차별과 신분차별을 철폐하고 조상제사와 미신적 풍속 등 구습을 타파하며, 근대적 시민 윤리에 합당한 도덕적 가치들을 전파하였다. 즉 선교사들은 ‘복음선포’라는 직접적인 선교보다도 교육과 계몽, 의료와 봉사를 통한 간접적 선교방식을 통해 한국 사회에 공신력을 얻었으며, 이것은 한국사회의 발전과 교회 성장이라는 양 측면에 기여하였다. 이것이 한국교회에 복음전파자로서 기여한 선교사들의 긍정적인 측면이다.

반면에 한국교회에 온 선교사들이 서구 열강들의 식민지배의 첨병이라 불리는 부정적 측면이 있다는 지적 역시 배제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선교사들이 서구문화와 한국 전통문화의 차이에 대한 인식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다. 선교사들이 바라본 것처럼 한국의 전통문화가 모두 미개하고 저급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서구문화와는 다른 한국 전통문화의 고유한 독창성과 우수성을 높이 평가한 선교사들도 물론 있었다. 한국인들은 복음을 받아들여야 할 선교의 대상이지만, 동시에 한국 땅에서 복음을 수용하고 실천하는 주체적 존재이다. 이러한 면에서 선교는 전파 주체와 수용 주체의 공동의 신앙적 실천인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서구 선교사들은 자신들의 문화가 한국문화보다 매우 우월하다는 입장에 서있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양대인(洋大人)’ 자세와 이로 말미암은 ‘교폐(敎弊)’ 사건들이었다. 선교사들이 선교의 효과적 확장이란 이유로 정치적 이권에 개입하며 개인적 이득까지 취한 사례들은 선교의 본래 목적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선교사들이 한국교회에 남긴 선교유산은 오늘날 세계 선교를 주도할 만큼 커다란 선교적 열정과 자원을 가진 한국교회에 많은 선교적 과제를 남겨주고 있다. 그 과제중의 하나는 한국교회가 1세기전 받았던 서구 선교의 방법론을 세계의 이웃종교와 그 문화권에 지금도 그대로 적용한다는 것이다. 즉 문화대화적 방법이 아닌, 문화우월주의적인 일방적 선교를 여전히 답습하고 있다. 선교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그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해야 할 대상과 문화를 이해하고 배우는 일부터 먼저 시작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이슬람선교를 비롯한 세계 이웃종교들을 향한 선교를 위해 많은 인적 자원과 선교비를 지원하면서도 정작 그들의 종교문화와 역사를 배우고 이해하는 일에는 지극히 소극적이다.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은 하나님의 지상명령이다. 선교는 어떠한 상황, 어떠한 때라도 계속 되어야 한다. 나의 문제제기는 초기 한국교회의 선교경험을 역사의 거울로 삼아 세계 선교에 불필요한 마찰과 희생을 넘어서면서 복음을 어떻게 ‘기쁜 소식’으로 전파할 것인가를 숙고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유대교, 이슬람교, 불교를 비롯한 세계 이웃종교와 문화를 이해하고 소통하기 위한 ‘종교문화대화연구소’의 설립을 제안하는 바이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내적성숙과 한국신학의 발전을 위한 길이며, 지구화시대 세계선교에 기여하는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연규홍 교수(한신대·교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