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redi 15 avril 2009

‘사랑과 전쟁’ 의 효용가치 / 헤럴드경제 / 2009-04-02

[서병기의 대중문화비평]‘사랑과 전쟁’ 의 효용가치

KBS ‘부부클리닉-사랑과 전쟁’이 오는 20일부터 단행되는 봄철 개편에서 폐지된다. 무려 9년 6개월을 끌고온 이 장수 드라마는 대한민국 성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봤을 것이다.

1990년대 이전만 해도 부부 간 문제는 덮어두는 게 미덕이었다. 99년 10월 첫방송을 내보낸 ‘사랑과 전쟁’은 ‘부부 간 트러블’을 공론화했다는 점에서 여성단체에서도 진보성을 인정하며 매주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다.

지금이야 부부 솔루션류의 심리극과 불륜 드라마가 속속 생겨나 신선도와 차별성이 떨어졌지만, 2000년대 초중반까지도 불륜 드라마의 소재은행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부부관계와 싸움, 외도, 이혼, 재혼, 혼전동거, 육아, 고부관계 등 부부 문제를 다루는 여타 프로그램이 ‘사랑과 전쟁’에서 소재와 아이디어를 따올 정도였다.

남편의 못 말리는 바람기에 늘 당하기만 하던 아내가 복수를 하는 198화 ‘조강지처들의 반란’, 202화 ‘카사노바의 최후’, 206화 ‘이혼게임’과 181화 ‘깡패아내’는 달라진 아내상을 반영한 에피소드다.

아 내의 갖은 노력에도 남편이 잠자리를 회피하자 결국 아내의 외도로 이어지는 184화 ‘미안해 여보’편, 아내와의 잠자리가 무서운 남자가 교통사고를 핑계로 부부의 의무를 저버리고 바람을 피우는 218화 ‘고개 숙인 남과 여’, 혼전동거를 하다 결국 그 남자와 헤어지고 다른 남자와 결혼했으나 옛 남자의 협박으로 과거가 알려지면서 이혼하는 196화 ‘동거남녀’와 164화 ‘아내의 두얼굴’, 외도를 들킨 남자가 오히려 그 여자를 사랑한다며 이혼을 요구하는 213화 ‘이혼전쟁’ 등 부부 관계의 디테일은 실로 다양하다.

간혹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폭행하고, 형수와 시동생의 하룻밤 등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에피소드가 나와 ‘막장 드라마’의 원조라는 말도 듣지만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많았다. 에피소드가 70%쯤은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어 리얼리티가 높다는 강점이 있다.

‘사랑과 전쟁’이 방송되는 동안 부부관계도 크게 변화했다. 이 변화상을 적절하게 담아냈다. 남녀 간 위치가 많이 바뀌고 성형중독, 트렌스젠더, 게임중독 문제 등과 같이 달라진 사회상을 적절히 반영하기도 했다.

‘사랑과 전쟁’은 요즘도 시청자로부터 매주 소재가 100여건씩 제보가 들어오는 등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제작진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드라마의 틀을 리모델링하고 있었다.

그 럼에도 ‘사랑의 전쟁’을 폐지하기로 한 것은 3~4개월 전부터 광고가 잘 붙지 않기 때문이다. 9년 동안 두자릿수 시청률을 유지하며 KBS에 벌어준 광고수익만도 수백억원대에 이르는 이 드라마가 불과 몇개월 동안 광고 판매가 부진하다고 해서 경영상의 논리를 적용해 폐지한다는 데는 일말의 아쉬움이 남는다.

제작비가 일반 단막극에 비해 절반 수준인 5000만원 정도로 60분짜리 드라마 한 편을 뚝딱 완성할 정도로 저비용 고효율 드라마인 점을 감안하면 그동안 드러났던 부정적인 측면을 바로잡아 질적 전환을 이뤄 살려 나가는 것도 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사랑과 전쟁’에 소개되는 부부 갈등의 에피소드를 보면서 “저런 부부도 있구나. 나 정도는 참고 살아야 되겠다”며 위안을 삼을 때도 있었다. 이 정도의 효용가치는 있는 드라마였다.

서병기 대중문화전문기자/wp@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