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redi 15 avril 2009

신데렐라 스토리가 여전히 인기를 끄는 이유 / 미디어오늘 / 2009-04-02

[이택광의 문화읽기]

최근 연속극에서 두드러지는 경향은 서로 경제적 차이가 월등한 집안 배경을 가진 연인들이 만나서 갈등하는 이야기이다. 인기리에 방영됐던 <엄마가 뿔났다>나 최근 방영되고 있는 <흔들리지마> 같은 경우도 이에 속한다. 부유한 집안의 남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이 만나서 사랑한다는 이런 설정은 대체로 ‘신데렐라 신드롬'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국 사회에서 결코 발설할 수 없는 실재의 차원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부르주아 사회에서 핵심적인 것은 자본의 규모가 곧 신분의 문제로 전환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자본은 단순한 ‘돈'이 아니라 일종의 상징이다. 부르주아는 문화적인 구별 짓기를 통해 이런 자본의 상징성을 더욱 공고하게 만든다. 말하자면, 명품에 대한 집착은 이런 구별 짓기의 일환인데, 왜냐하면 구매를 통해 명품을 소유하는 것과 그 명품의 심미성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이른바 우리가 명품이라고 부르는 ‘물건'은 대체로 이런 신비한 심미성의 차원을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것은 산업의 심미화 또는 예술화라는 자본주의 고유의 속성 때문에 그렇다.

속물근성으로 나타나는 다른 세계를 향한 갈망

< 엄마가 뿔났다>에 등장하는 두 가족의 모습은 한국 사회의 근대화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지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건 기본적으로 중간계급의 세계관과 부르주아의 세계관이 서로 분열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과연 이 사실은 한국 사회의 현실과 무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무릇 모든 현상은 본질의 체현이자. 동시에 모든 형식은 내용의 논리이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한낱 텔레비전 연속극에 불과한 <엄마가 뿔났다>가 한국 사회의 본질을 폭로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 본질은 도대체 무얼까? 기본적으로 이건 김수현이라는 작가의 입장을 드러내는 것이자 동시에 김수현이라는 개인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의 진실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보수주의자 김수현의 입장을 좀 더 섬세하게 확인할 수 있지만, 이 사실은 김수현이라는 중간계급 가치의 옹호자가 어떻게 근대화를 바라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은 단순하게 방송작가 김수현이라는 개인의 범주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정작 중요한 건 김수현이 표방하고 있는 세계관이다. 다시 말해서 김수현이 옹호하고 있는 세계, 이것은 은아(장미희분)가 보여주는 그 미국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속물적 세계와 다른 세계이다. 물론 이 세계는 초월적인 것도 아니고, 세속적인 것도 아니다. 이 세계는 과거로부터 왔지만 미래를 강제하는 어떤 것이다.

부풀려진 환상에 내포된 진실

은 아의 가족은 아침을 커피와 빵, 그리고 소시지로 해결한다. 실제로 이건 한국 사회에서 상류문화에 속하지만 정작 미국에서 이런 식습관은 노동계급의 문화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대중문화가 한국에서 상류계급의 문화로 통용되는 건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런 사실은 단순한 왜곡을 보여준다기보다 어떤 문화의 본질을 증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본질은 바로 문화가 가치 전도의 문제이며 궁극적으로 계급이라고 불리는 사회적 모순의 구조를 전혀 다른 차원으로 재현한다는 의미이다.

좀 어려운 말이지만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이런 것이다. 결국 드라마에서 나타나는 은아와 그의 가족은 한국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계급모순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걸 어떤 의미로 해석하든지 중요한 건 이런 소재가 한국 사회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는 사실이다. <흔들리지마>에서도 문제는 결국 신분차이이다. 신분을 초월한 사랑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 이 드라마는 역설하고 있다. 이건 현대판 한국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어떤 드라마든, 비극적 사랑을 선보이고 싶진 않다. 그러나 정작 비극을 드러냈을 때 필요한 건 그 비극의 핍진성이다. 텔레비전 드라마에 불과하지만, <엄마가 뿔났다>나 <흔들리지마>는 궁극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불가능한 것에 대한 시도가 무얼 의미하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건 말할 것도 없이 근대화의 불균형성이고 새로운 분배구조를 위한 하나의 문화적 대안을 탐구해볼만한 근거를 제공한다고 하겠다.

대중문화는 하나의 환상을 의미하지만, 이게 환상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분의 진실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택광 문화평론가 경희대 교수 ( media@media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