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ndi 16 février 2009

영웅 중심, 일화 중심 역사쓰기 함정 피하자 - 오마이뉴스 / 2009-02-05

역사를 살필 때 경계해야 할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몇몇 영웅이나 천재가 역사를 이끈다는 생각이고, 또 하나는 몇몇 일화나 사건과, 역사 그 자체를 같은 걸로 여기는 태도다. 하지만 우리는 먼 옛날 역사일수록 이런 생각과 태도로 대한다. 특히 고대사를 대하는 태도가 이렇다. 동양, 서양을 가리지 않고, 보통 사람들이 바라보는 고대사는, 몇몇 영웅과 신기한 힘, 기적, 그 밖의 우연으로만 채워져 있다.

유럽은 그래도 역사학자들이 힘쓴 덕분에, 고대와 중세를 신화와 마법 세계가 아니라, 지금과 똑같은 사람들이 사는 시대로 되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아시아, 특히 한중일 삼국은 어떤가? 역사학자들만 읽는 전문 서적이나 잡지면 모를까, 이른바 ‘대중을 위한’ 역사책 대부분은 영웅과 신화, 일화로만 채워져 있다.

‘이야기 중국사’류의 책은, 양귀비만 없었다면 당 현종은 계속 나라를 잘 다스렸을 거라고 가르친다. 이런 시각에는, 국가의 패망이나 심각한 사회문제는 이미 '태평성대'부터 그 씨앗을 품고 있다는 상식이 빠져 있다. 한국 역사를 다룬 책도 그렇다. 아직도 민중, 문화, 소외자 등 ‘영웅’이 아닌 사람들을 다루는 책은 드물다. 그리고 사람이 아닌 구조 자체를 다루는 한국 역사책은 더 드물다. 전문 서적은 있겠지만 대중을 위한 책에는 그런 게 거의 없다.

우리는 고대의 여러 사건을 빈약한 근거와 손쉬운 단순논리로 재단해왔다. 그 중 하나가 ‘한고조’ 유방과 ‘초패왕’ 항우의 대결이다. 왜 유방은 항우를 꺾을 수 있었을까? 유방이 아랫사람들을 더 잘 이끌어서, 유방이 더 마음을 다스릴 줄 알아서, 또는 항우가 힘만 믿고 교만해서, 이런 식으로 두 사람의 됨됨이를 가지고 이야기하면 쉬울 것이다. 하지만 이런 흔한 인물 비교는 결과에 짜맞춘 억지가 아닐까?

역사는 몇몇 영웅이 이끄는 게 아니다. 물론 지도자, 영웅이나 좀 더 뛰어난 수재가 사건의 흐름을 바꾸어놓기도 한다. 하지만 역사를 길게 보면, 결국 흐름을 바꾸는 힘은 그들에게서 나오지 않는다. 환경과 사회 구조, 보통 사람들의 행동이 모여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낳는 게 역사다. 역사를 바로 보려면 이 모든 요소를 분석해야 한다.

유방이 이긴 것은 많은 제후들이 항우가 아니라 유방의 편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건 항우의 명분에 문제가 있어서다. 춘추 전국 시대 초나라는, 유럽 근대사의 러시아를 떠올리게 한다. ‘완전한 유럽은 아닌’ 러시아가 남쪽으로 내려오려고 할 때마다 유럽 나라들이 프랑스,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뭉쳐서 막아냈다.

마찬가지로 춘추 전국 시대 중원(=정통 중국)의 제후들은, ‘오랑캐’ 초나라가 올라오는 걸 막으려고 '패자'를 중심으로 뭉쳤다. 물론 단순 비교는 무리지만, 초나라가 러시아처럼 독특한 위치를 가진 게 사실이다. 제후들이 유방을 따른 것도, 역사책에서 말하듯이 유방이 ‘인덕’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초나라를 내세운 항우의 움직임이 두려웠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유방도 다르게 생각해 볼 수 있다. 제후들은 유방을 군주로 모셨다기보다는, 항우에 맞설 명분, 상징, 쉽게 말해 ‘얼굴 마담’으로 내세웠다고 말이다. 유방은 신분이 낮았고 지식이나 무력도 뛰어나지 않았다. 사람을 끄는 힘은 있었으나, 사실 후세 사람들이 찬양하듯 인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신이 찾아오자 그는 ‘바짓가랑이’ 소문만 듣고 무시했다. 항우와 싸울 때는 부하들의 말을 무시하다가 큰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백성에게 따뜻한 정치를 베풀었다고 하지만, 이것도 승상 소하를 비롯한 관료층이 한 일이라고 봐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별 볼일 없는 사람이니, 오히려 꼭두각시로는 쓸모가 있었을 것이다. 또 그 친족이나 친구들도 신분과 능력이 별볼일없었다. 군주 옆에서 세력을 이루는 건 힘들었을 것이니 유방에게 별 도움도 못 되었을 것이다. 이런 때는 군주의 심복(장량, 소하)이나 외척(여후 일가), 중앙에 연줄을 가진 지방 제후가 권력을 잡기 쉬워진다.

물론 유방을 꼭두각시였다고 단정하는 건 아직 이르다. 더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중요한 건 유방이 능력이 있었나 없었나가 아니다. 국가나 정부 또는 한 세력의 움직임을, 지도자의 움직임으로 바꿔 보는 오류를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나라의 법을 단 3개로 줄인 ‘약법 3장’이 그렇다. 여기서 우리가 봐야 할 것은 유방 한 사람의 ‘자비로움’이 아니라, 한나라가 지방 제후들에게 던진 훌륭한 ‘거래 조건’이다.

약법 3장은 사실 백성들보다는 제후들이 환영할 만했다. 중앙에서 모든 통치 기준을 정하는 진나라 방식을 없애고, 제후들에게 많은 재량을 주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한나라는 이 점에서 초나라와 달랐다. 초나라가 다른 제후국을 다루는 걸 보면, 강력한 중앙 집권,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정치를 추구했던 것 같다. 제후들에겐 초나라 방식보다 한나라 방식이 더 매력있었을 것이다.

지배층, 기득권층은 냉정하고 계산에 익숙하다. 덕(德)이나 카리스마만으로 그들이 오락가락한다고 생각하는 건 잘못이다. 지배층 뿐 아니라 민중도 그렇다. 언제나 지도자의 말 몇 마디에 움직이는 것 같지만, 오랜 시간을 두고 보면 그들도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결국 문제는, 역사를 몇몇 사람과 사건으로 쉽게 정리하려는 유혹 때문이다. 이건 요즘들어 ‘대중을 위한’ 역사책이 많이 나오면서 더 심해진 것 같다. 이덕일 씨의 책이 그런데, 물론 그의 책은 미덕도 많다. 강단 역사학자들이 지닌 고정관념이 없고, 자주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의 책은 종종, 역사를 재미있는 ‘이야기’로 만드려는 유혹을 이겨내지 못한다. 역사는 기승전결이 깔끔한 이야기가 아니다. 여러 복잡한 요인이 있고, 이렇게 시작하면 이렇게 끝난다고 자신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이덕일 씨의 책을 비롯한 이른바 ‘대중을 위한’ 역사책은, 자주 소설책과 비슷해져버린다. 주인공이 있고, 반동 인물이 있고, 기승전결과 자주 감정에 치우친 서술이 있다. 결국 이들 비제도권 역사가들도 주인공 중심 태도, 영웅 중심 태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의 책을 강단 역사학의 대안으로 볼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 모 대학도서관에 가보니, 고우영 화백의 <초한지>, <십팔사략>등을 역사책으로 분류해놓았다. 고우영 화백의 작품은 예술 작품으로 본다면 뛰어나다. 하지만 역사책으로 보면 비판할 구석도 있다. 일화 중심, 영웅 중심 시각이 그대로 드러난다.

하지만 고우영 씨 자신이 역사를 만화로 그린다기보다는, 역사를 소재삼아 현실 풍자와 인간 고찰을 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화백에게 예를 표하는 뜻에서 잘못된 책 구분을 바꿨으면 한다.

정동원 (jungs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