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ndi 23 février 2009

[야!한국사회] 미네르바, 흉악범, 엑스파일 / 한겨레 / 2009-02-12

흉악범죄자 얼굴 공개 논쟁이 뜨겁다. 그 이전에 일부 언론의 ‘미네르바’ 실명 보도가 있었고, 그 와중에 ‘떡값 검사’의 실명을 공개한 노회찬 전 의원에게 유죄 판결이 선고되었다. ‘엑스파일’을 보도한 이상호 기자 역시 2006년 항소심 재판에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유죄가 인정되었고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미네르바 실명 보도, 흉악범 얼굴 공개, ‘엑스파일’ 실명 공개, 이 사건들은 동일한 문제의 다른 측면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공적 인물’의 실명 보도, 알권리 등 쟁점의 기본 구조가 유사하고, 문제의 근본은 언론의 자유와 책임에 놓여 있다.

‘엑스파일’ 보도 사건에서 항소심 법원은 “실명을 공개함으로써 당사자의 인격권을 더욱 크게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판단은 언론의 자유와 의무, 국민의 알 권리를 ‘크게’ 간과한 것이다. 독수독과(毒樹毒果·위법수집 증거 배제)의 원칙이나 통신비밀보호법이 언론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제한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엑스파일의 대화 당사자들이 누구인지는 단순한 호기심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불법선거를 도모하고, 권력자의 떡값을 준비하는 ‘힘센’ 사람들이 어떠한 지위를 이용하여 그러한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시민들은 정확히 알아야 한다. 공적 인물에 대한 정당한 관심사를 보도한 것이었고, 법은 그 정당성을 인정해야 한다.

연쇄살인 사건 용의자 강씨의 경우도 무죄추정의 원칙이 언론 보도를 제한하는 절대적 기준이 될 수는 없다. 공공의 이익이 크다면 공개할 수 있다는 원칙에도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공공의 이익이 존재하지 않는다. 경각심 고취를 통한 범죄 예방이 얼굴 공개로 달성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피해자 가족의 분노는 백번 공감한다. 그러나 피해자 인권은 재판 절차 참여권이나 양형에 관한 의견 진술 제도 등을 통해서 제도적으로 보완되어야 할 문제다. 분노를 치유하기 위한 공개 주장은 언론에 형벌권을 주자는 것과 마찬가지다. 여죄 수사를 목적으로 공개하자고 한다면, 그건 무죄추정의 원칙 문제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언론과의 관계에서는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지만, 수사기관에 대해서는 예외를 허용할 수 없는 원칙이다.

<조선일보>가 ‘미네르바’의 실명을 보도한 이후 많은 언론들이 뒤를 이었다. 실명에 이어 학력, 성적, 집 평수와 여동생의 근황까지 보도했다. 범죄 성립 여부가 법리적 논쟁의 대상이 되는 미네르바의 실명 공개는 무죄추정의 원칙과 관련되는 문제다. ‘제한적 공인이론’을 적용하더라도, 그가 공인이 되었다는 것과 실명을 공개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그는 ‘익명의 공인’, ‘미네르바’여야 한다.

‘신정아 사건’과 고인이 된 ‘최진실 사채설’ 보도도 같은 맥락이다. 이 사건들 모두는 단순히 얼굴이나 실명 공개의 문제가 아니다. ‘엑스파일’ 보도에는 자본·언론·검찰 권력의 문제가 놓여 있었고, ‘최진실 사채설’ 보도는 결과적으로 사이버모욕죄 신설 논란을 이끌었다. 미네르바 실명 보도는 ‘익명의 그늘에 숨어’라는 표현의 자유 제한 논리가 깔려 있다. 일부 언론의 얼굴 공개는 간접적으로는 국가인권위원회를 겨냥하고, 결과적으로는 사형 집행으로 나가고 있다.

얼굴 공개 논쟁은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 언론의 상업적 전략을 넘어서는 정치적 전략이 있는지도 물어야 한다. 언론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지지하지만, 자유로 포장된 남용을 걸러내는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엑스파일’ 사건의 유무죄 판단은 법원에 있지만, 나머지는 우리의 사회적 합의에 달려 있다. 책임 있는 자유를 언론에 선물할 때이다.

정정훈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