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ndi 16 février 2009

[최선웅의 지도이야기] 고지도 - 조선일보 / 2009-02

역사적 위치 파악· 문화적 복원자료· 회화적 예술가치 지닌 존재

우리가 살고 있는 지표의 상황은 시대의 변천에 따라 각종 개발로 인해 날이 갈수록 옛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한적했던 시골 마을이 어느 샌가 주택단지로 바뀌고, 골짜기가 메워지고 산허리가 잘리면서 도로가 뚫리고, 황량했던 벌판에 대단위 공장지대가 들어서고 있어 개발이 이미 끝난 곳에서는 예전의 토지형태를 떠올리기란 아예 불가능하다.

지금의 장소가 옛날에는 어떠한 곳이었으며, 무엇이 있던 곳인가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수단과 방법이 있겠으나 가장 손쉬운 방법은 당시의 지도를 보는 것이다. 옛 지도에는 제작 당시의 시대적 정보가 응축되어 있어 그 시대의 역사나 지리를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자취까지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지도는 그 시점의 역사라고도 한다.

▲ 국립중앙박물관 지도실 바닥에 깔려 있는 고지도. 이 지도는 18세기에 제작된 동국대전도를 실제 크기의 2.3배로 확대하여 타일로 인쇄한 것으로, 관람객들에게 고지도를 직접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

지리학자 형기주(邢基柱·1933-) 선생은 논문 ‘古地圖(고지도)에 관한 硏究資料(연구자료)’에서 ‘고지도는 과거 인류들의 지리적 시야나 지리관을 측정할 수 있는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역대의 지도는 지리학사의 체계를 세우는 데 있어서 필요불가결의 실증적 자료이다. 뿐만 아니라 고지도 상에 시현된 자연 및 인문경관을 현실과 비교함으로써 역사 지리적 과제인 경관 복원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으며, 또한 지도제작 상의 테크니컬 프로세스를 검토함으로써 근대적 지도가 제작되기까지의 체계 있는 과정을 엮을 수 있다’고 고지도를 지리학사와 밀접하게 연관지으며 학문적 필연성을 강조하였다.

또 조선시대 지도 연구의 권위자인 양보경(楊普景) 성신여대 교수는 기고문 ‘전통지리학-연구와 전망’에서 ‘고지도는 역사시대의 공간 형상을 전해주는 귀중한 시각자료이다. 고지도를 통해서 우리는 국토와 지역의 옛 모습을 생생하게 살릴 수 있으며, 제작 당시의 과학기술 수준과 회화적 분위기, 나아가 우리 문화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또한 지방에 대한 국가의 행정, 군사적 능력을 알 수 있다. 고지도는 한국학 연구의 기본 자료로서 그리고 영토의 의식과 국경문제의 직접적 증거로서, 또 옛 지명, 산천, 도로, 행정구역, 역사적 위치의 파악과 문화적 복원의 자료로서 그 의의가 매우 크다. 더욱이 화원(畵員)들이 대부분 지도제작을 담당하여 회화적인 예술품으로서도 귀중한 가치와 의의를 지니고 있다’고 고지도의 의의와 그 존재가치의 소중함을 피력하였다.

고지도라 하면 그저 옛날 지도, 또는 오래된 지도라 할 수 있겠으나 명확하게 이것이라고 정의내리기가 어줍다. 지도학용어사전에 따르면 고지도(old map, archaic map, antique map)는 ‘근대적 측량 및 인쇄술 보급 이전에 제작된 지도의 총칭’이라 되어 있으며 ‘유럽에서는 1900년 또는 19세기 중기 이전의 수제(手製) 또는 목판·동판본의 지도를 가리킨다’고 시기와 제작기법에 따른 기준으로 정의하고 있다. 넓은 의미로 본다면 고지도는 현재 사용되고 있는 지도 이전의 모든 지도를 포괄할 수 있겠지만, 시대적으로나 지도제작의 기술적인 면을 기준으로 정함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그 기준은 오랜 역사의 시간 속에서 본다면 계속 달라지기 마련이다.


현대적 측량기술에 의하지 않은 지도

우리나라에 있어서도 고지도를 구분하는 시기는 명확치 않다. 우리나라 지도학사의 큰 줄기를 세운 이찬(李燦·1923-2003) 선생은 <韓國(한국)의 古地圖(고지도)> 서문에서 전통적인 지도제작 기술에 의한 옛 지도로서, 현대적인 측량기술에 의하지 않은 지도를 고지도로 규정하였으나, 일반적으로는 대한제국이 선포된 1897년(고종 34년) 이전에 제작 간행된 지도를 가리키거나, 과학적 측량술이 고안된 이후 우리나라 지도제작의 근대화라 할 수 있는 1876년 개항 시기를 기준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는 우리나라보다 측량술이 일찍 도입되어 1868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의 지도는 고지도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우 리나라의 고지도는 국내든 외국이든 현전하는 것을 놓고 보면 조선시대에 제작된 것뿐이고, 그나마 박물관이나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거나 개인에 의해 비장되어 있다. 다행히 1960년대 이후 학자들에 의해 고지도 연구가 진행되면서 연구논문이 발표되고, 대학교 박물관이나 공공도서관, 정부기관, 출판사 등에서 고지도를 책자로 꾸며 펴내고 있다. 그 가운데 출판사가 펴내 일반에 보급되고 있는 것은 이찬 선생의 <한국의 고지도>가 유일본이다.

이 책은 전국에 흩어져 소장되어 있는 고지도 243점을 모아 천하도(天下圖), 관방지도(關防地圖), 조선전도 및 도별도, 도성도(都城圖), 군현도(郡縣圖), 회화지도, 산도(山圖) 등으로 구분하여 꾸민 것이다. 비록 지도는 축소되었지만 원색으로 재현되어 옛 지도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고, 우리나라의 고지도 역사의 개관과 더불어 매 지도마다 해설이 덧붙어 우리나라 고지도 발달 과정을 이해하는 데 이 책만 한 것이 없다.

이밖의 고지도집으로는 한국도서관학연구회에서 펴낸 <韓國古地圖>, 영남대학교박물관에서 펴낸 <韓國의 옛 地圖>(2책), 서울학연구소에서 펴낸 <서울의 옛 地圖>,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펴낸 <海東地圖>(3책), <朝鮮後期 地方地圖>(6책), <東輿圖>, <朝鮮全圖>(2책) 등이 있고, 부산지리연구소에서 펴낸 <釜山의 古地圖>, 수원시에서 펴낸 <水原의 옛地圖>, 향토문화진흥원에서 펴낸 <全南의 옛地圖> 등이 있으나 시판용으로 제작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에서 입수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판매하는 상품으로서 고지도의 종류를 구분한다면 우선 옛날에 간행된 지도의 실물인 진품(眞品)이다. 그러나 진품은 희귀할 뿐 아니라 설령 있다 해도 엄청난 고가이기 때문에 일반에서 유통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다음은 고지도를 원상태 그대로 인쇄하여 제작한 복각판(復刻板)이다. 용지나 잉크가 다른 것을 빼고는 고지도를 원형에 가까운 상태로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으나 우리나라에서 유통되고 있는 것은 조선 후기에 제작된 <大東與地全圖>나 김정호가 제작한 <首善全圖(수선전도)>가 고작이다. 마지막으로는 한마디로 카피본이다. 고지도를 그대로 대형 프린터기로 복사하거나 스캐닝하여 출력한 것으로, 소량 제작의 이점이 있으나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형태의 유통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고 지도는 그 자체가 지닌 의의나 기능성뿐 아니라 디자인이나 예술적으로도 아름답기 때문에 일본이나 유럽 각국에서는 고지도를 복각하거나 캘린더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어 일반인들도 손쉽게 구입하여 장식용이나 용도에 따라 이용하고 있다. ‘지도는 골동품과 같은 유물이 아니라 과거 세계를 여행하는 일종의 타임머신’이라고 한 오상학 제주대 교수의 말처럼 우리나라에서도 고지도를 복각하여 일반에게 널리 보급하는 것이 문화대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라 여겨진다.


글 최선웅 한국산악회 부회장·매핑코리아 대표
월간산 47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