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redi 4 février 2009

시장, 통제 불가능한 대중을 낳다 - 문화일보 / 2009-01-30

시장, 통제 불가능한 대중을 낳다
추방과 탈주 / 고병권 지음 / 그린비

최근 용산 재개발지구 철거민 사망사건은 갈등을 조정하는 우리 사회의 기능이 사실상 부재함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의 양상, 단순히 양극화로 설명될 수 없는 일상화된 구조조정과 영속화된 삶의 불안이라는 우리 저변의 단면 그리고 그들을 주변으로 배제하려는 중심의 의지를 섬뜩하게 드러낸다. ‘연구공간 수유+너머’대표인 저자는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를 ‘추방’과 ‘탈주’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과거 자본과 노동이라는 단순한 틀은 지금 한국사회를 설명하는 데 유효하지 못하다.

저자에 따르면,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는 신자유주의의 전면화라는 점에서 정권 교체와 상관 없이 일관된 길을 걸어왔다. 그것은 이제 영속적인 현재진행형이다.

신자유주의의 논리는 ‘국익’과 ‘전체’를 위한 ‘일부’의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희생이 불가피한 ‘일부’는 셀 수 없이 많아졌고 결과적으로 ‘전체’에 포함되지 못하는 ‘일부’가 한국사회 대다수 ‘대중’의 형상이 되었다. 비정규직 노동자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대표적이다. 이 같은 권력과 자본의 중심에 의한 대중의 추방현상을 저자는 ‘주변화(marginalization)’라고 부른다.

주변, 한계, 이익, 공백이라는 의미를 갖는 ‘마진(margin)’은 우리 사회 대중의 중층적 의미를 나타내기도 한다. ‘마진’은 권력과 부의 영역에서 부차화된 곧 ‘주변’의 대중을 나타내며, 대중의 삶이 처한 상황 곧 ‘한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권력과 자본은 ‘주변화’를 통해 마진, 곧 ‘이익’을 챙긴다. 주변을 생산하고 관리하고 활용한다. 비정규직은 그 대표적 사례다.

한편으로 ‘주변’은 예외적 공간, 치외법권 지대 같은 성격을 갖는다. 국가에 의해 추방된 대중은 권력으로부터, 법으로부터 탈주하려 한다. 저자는 이 같은 대중의 탈주현상을 ‘주변화’에 대비해서 ‘소수화(minoritization)’라고 부른다. 주변인으로서의 대중이 지배적 척도에 의해 인정 받기를 꿈꾼다면, 소수자로서의 대중은 척도로부터 탈주한다. 그런데 최근 국가의 추방이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소수자 대중을 양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권력에 통제의 편익을 제공했던 ‘주변’으로의 추방은 새로운 통제 불가능성을 낳고 있다.

예컨대 비정규직은 노동조합이 없기 때문에 그들의 임금과 권익을 빼앗기는 쉽지만 동시에 그들의 저항에 대한 통제수단도 없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보장된 직장생활을 하지 못하지만 거꾸로 합법적인 이주노동자들처럼 작업장 이동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의 이동성에 대한 권력의 통제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권력은 대중의 삶을 불안정하게 만듦으로써 공포와 불안을 통한 지배를 할 수 있었지만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지각 불가능한 지대로 탈주하는 대중에 대한 통제 불가능의 문제가 새롭게 생겨났다는 것이다. ‘추방’이 지난 10년간 한국사회에서 일어난 일들을 말해준다면, ‘탈주’는 앞으로 일어날 일의 전조라고 저자는 경고한다.

저자는 스피노자의 말을 인용해 “공포를 통한 통치가 실패한 곳에서 공포를 잃은 대중에 대한 공포가 시작됐다”고 말한다.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