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ndi 14 avril 2008

‘한국의 문(門)’을 찾아서’ ⑤ 돈의문 - 중앙일보

돈의문, 폐허의 역사 위에 허물어지다

숭례문에서 서소문을 지나면 나타나는 대문이 돈의문, 오늘날의 서대문이다. 돈의문은 태조 5년 때 도성의 2차 공사가 끝나면서 다른 성문과 함께 건축됐다. 서울 성곽의 8소문을 통틀어 돈의문만큼 어지럽게 장소가 바뀌고 새로 지어진 문이 없다.
창건 당시 돈의문(서대문)의 위치는 지금의 사직동 부근으로 현재의 위치보다 훨씬 북쪽에 있었다. 그 문이 경희궁 언덕 쪽으로 옮겨진 이유는 풍수상의 이유 때문이었다. 이때 이름이 서전문(西箭門)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세종 때에 다시 문제가 되었다. 세종 4년(1422년) 2월, 대대적인 도성 수리가 있던 시기에 이번에는 지리가들이 문제를 제기했다. 사람들의 통행을 이롭게 하려면 좀 더 남쪽으로 내려간 자리에 문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세종이 받아들여 서전문이 헐리고 돈의문이 새로 지어졌다. 지금으로 치면 서대문 마루턱 즈음이다.
공사가 다망해진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태종이 서전문을 지을 때 왕래의 편리성을 고려해 건축도를 그렸지만, 당대의 세력가인 이숙번이 자신의 고래 등 같은 집 앞으로 큰 길이 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원래의 계획을 수정해 인덕궁 앞길로 서대문 터를 결정해야 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불편을 감수해야 했지만 이숙번이 죽을 때까지 이에 항의해 건의를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숙번이 죽고 세종이 즉위한 뒤에야 이와 같은 오류를 바로 잡을 수 있다. 다행이 재건축을 위해 허물어야 할 부분이 석성((石城)이 아니라 토성이어서 공사 기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새로 완성된 문이 바로 돈의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