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ndi 18 février 2008

[홍세화칼럼] 사회문화적 소양과 줄 세우기 교육 - 한겨레신문

한양의 관문이며 서울의 상징물로서 600년 동안 그 자리에 있던 숭례문은 차라리 불탄 채로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자존심이 불탔다”는 인수위의 반응처럼 국가주의를 발동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반문화적 성격을 말해주기 위해서다. 앙상하게 남은 그 처절한 모습으로 경제동물의 사회에서 말하는 실용주의란 곧 반문화주의임을 증언해야 한다.

한양 도읍지가 있은 뒤에 한강과 북한산이 생긴 게 아니라 한강과 북한산이 있어 한양 도읍지가 생겼다. 다시 말해, 강과 산의 ‘지리’가 있은 뒤에 사람이 살고 숭례문이 세워지고 역사를 피워낸 것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인문-지리’라는 말은 사람 중심의 사고가 낳은 잘못으로 ‘지리-인문’으로 수정되어야 한다. 초등학생들도 고개를 끄덕일 얘기지만 영어몰입교육 주장을 펴는 우리 사회 지배층의 인문적 소양으로는 기대하기 어려운 수준일 듯싶기도 하다. 사람이 있어 한반도가 있는 게 아니라 한반도가 있어 사람이 있음에도 한반도를 파헤쳐 바꾸는 대운하를 발상하고 밀어붙이려는 것도, 우리가 한국어로 말하고 한국어로 생각하기에 한국인임을 헤아리지 못하는 그 수준이나 경지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겠는가.

세계에서 가장 긴 학습노동시간을 가지고 치열한 경쟁과정을 거쳤음에도 나를 포함한 한국사회 구성원의 인문학적 소양은 부박하기 짝이 없다. 사회를 보는 눈뜨기에도 실패하고 있다. 식자층을 포함한 지배층이 사회문화적 소양의 천박함을 스스럼 없이 드러낸다. 문화사회로의 발돋움까지는 말하지 않더라도 허접한 지배세력에 의한 허접한 통치가 이루어지고, 사회구성원들은 전인적 인간으로의 모색은커녕 생각의 주체로서 자아를 상실한 채 조건반사적 경제동물로 살아간다.

이런 결과를 빚은 데는 우리 교육이 인간과 사회에 관한 학문인 인문사회과학을 암기과목으로 축소시킨 점을 빼놓을 수 없다. 가령 “사형제는 폐지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정답은 없다. 다만 사형제 폐지와 존치의 주장 사이에서 각자의 견해가 있고 그 견해를 뒷밭침하는 논리가 있을 뿐이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이런 견해와 논리를 요구하지 않는다. 높은 수준이라고 할 수 없는 찬성/반대의 토론 주제의 예에 지나지 않지만 우리 교육에 담길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에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게 고작이다. “다음 나라들 중에서 사형제가 실질적으로 폐지된 나라는? 1)미국 2) 일본 3) 중국 4) 한국 ….” 생각의 주체를 형성하는 게 아니라 객관적 사실에 대한 암기 여부만 물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