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redi 25 mars 2009

조승희는 그날 '왜' 총을 쏘았나 / 연합뉴스 / 2009-03-11

2007년 4월16일 버지니아 공대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사건은 한국계가 범인이었다는 점에서 한국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겼다.

충격을 받은 많은 한국인은 미국인들에게 조승희 대신 용서를 빌었고 미국에 사는 교포들이 혹시나 이 일로 피해를 보지 않을까 전전긍긍해 했다.

그러나 스페인의 기자 후안 고메스 후라도는 “이 일은 그(조승희)가 한국인이란 사실과 무관한 것이며 따라서 한국사회가 보여준 지나친 피해의식과 ’집단 참회’와 같은 반응은 자칫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며 ’매드무비’(꾸리에 펴냄)를 통해 ’그 날’의 사건 현장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책은 우선 마치 현장에서 모든 것을 지켜본 것처럼 생생히 그날을 묘사한다. 저자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증언과 수천 쪽에 달하는 경찰 조서를 바탕으로 그날 새벽 조승희의 뒷모습을 본 기숙사 룸메이트의 이야기부터 조승희의 자살까지 4월16일 버지니아 공대에서 벌어진 참극의 씨줄과 날줄을 촘촘히 꿰어가며 사실적으로 재현한다.

그러나 그날 벌어졌던 일들을 재현하는 것이 책의 목적은 아니다. 저자는 ’어떻게’에 그치지 않고 그날과 조승희의 과거를 토대로 ’왜’ 조승희가 총을 난사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는 한 편의 매드 무비(Mad Movie: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이미 존재하는 다른 작품들의 내용 일부를 끼워 맞춰 만든 동영상)를 완성해 나가기 시작한다.

그날을 이야기하려면 조승희의 어린 시절과 사춘기시절로 시계를 돌려야 한다. 어렸을 때부터 다른 아이들과 잘 뒤섞여 놀지 않았고 말이 없었던 조승희는 미국에 이민 온 뒤에도 외톨이 그 자체로 생활해야 했다.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던 큰 교회 대신 조그만 교회를 다녔고 여전히 사교성이 부족했으며 하루 내내 돈을 벌어야 했던 부모를 볼 수 있는 시간도 그에게는 거의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은 그에게 매우 힘들고 슬픈 시기였다. 학생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조승희의 침묵과 무표정한 얼굴, 낮고 굵은 목소리를 비웃었다. 물건을 던지고 ’중국으로 돌아가!’라고 말하기도 했으며 1달러 지폐를 흔들며 뭐든지 말을 하면 돈을 주겠다고 놀리기도 했다.

또 주로 부잣집 아이들이었던 고등학교 운동선수들과 인기 많은 학생은 만만한 상대였던 조승희에게 욕을 퍼붓고 때리기도 했다.

학교에서 받은 이러한 학대는 조승희의 의사소통 부족과 결합해 유년시절과 사춘기 시절의 특징을 강화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됐고, 그는 그보다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해 불타는 증오심과 분노감을 갖게 됐다.

저자는 FBI 전직 심리분석관과 심리학자들의 분석을 통해 결국 자신이 학대받았고 학대받는다고 느낀 삶을 경험한 조승희가 타인들의 삶과 죽음을 지배할 힘을 찾기 시작했고, 그가 그 힘을 사용하기로 한 순간 이후 그가 뒤로 돌아올 방법은 없었다고 분석한다. 왜냐하면, 피해 망상적 환각 증세가 있는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에게 멈춤은 자기 머릿속의 어두운 심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을 통해 “의심의 여지 없이 조승희가 지닌 정신적인 문제가 야기한 폭력의 싹은 피할 수도 있었으나 어떤 시기에 한국인들이 미국 내에서 경험했던 부당한 인종적 편견과 차별이 간과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공존과 조화는 동화와 정체성 상실의 동의어가 아니며 아마도 이런 복잡한 문제에 대한 고민의 계기를 찾는 것이 이 책에서 추출할 수 있는 교훈 중의 하나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