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ndi 9 mars 2009

경기 불황의 늪… 병드는 한국사회 - 경향신문 / 2009-03-03

지속되는 경제불황이 사회를 조금씩 병들게 하고 있다. 불안심리가 각종 사회문제와 범죄를 불러일으키고 가족 내 갈등은 가정을 무너뜨리고 있다. 일터에 있어야 할 시민들은 일확천금을 노리고 도박장으로 몰려가고 있다. 경기침체로 인한 양극화·가정붕괴·범죄 등 사회·경제적 충격을 일컫는 이른바 ‘D-트라우마’가 사회를 뒤덮고 있다. ‘D-트라우마’는 불황을 뜻하는 ‘디프레션(Depression)’과 정신적 외상을 의미하는 ‘트라우마(Trauma)’를 합친 말이다.

(1)경마·카지노 매출 급증 ‘씁쓸한 호황’

일 용직 노동자 김모씨(61)는 동료들을 따라 경마장에 갔다가 생업을 포기하게 됐다. 9000만원의 빚을 지고 신용불량자가 됐지만 지금도 1주일에 4~5번은 경마를 하러 간다. 김씨는 “아내와 크게 싸우고 자식의 눈치보기도 미안하지만 일거리가 끊기니 갈 곳이 없다”고 말했다.

경기불황으로 산업 전반이 침체의 늪에 빠진 가운데 사행산업은 성장일로다. 카지노·경마·복권 등 사행산업의 매출은 크게 늘었다. 한국마사회의 총 매출액은 2007년 6조5401억원에서 지난해 7조4219억원으로 13.5% 증가했다. 2007년까지 주춤했던 복권 판매액도 지난해 즉석식 복권 매출이 53%나 급증한 데 힘입어 총 매출액 규모가 늘었다. 지난해 강원랜드 카지노를 방문한 입장객은 291만명으로 2007년에 비해 19% 증가했다. 하루평균 입장객 수도 7900명으로 전년보다 1200명이나 늘었다.

중앙대 심리학과 현명호 교수는 “사람들이 경제적인 위기로 불안감을 느끼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도박에 매달리게 된다”며 “이런 심리적 요인 때문에 불경기 때는 사행산업이 잘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2)불황이혼·가출 등 가정파탄 증가세

결 혼 8년차인 김모씨(37·여)는 지난 1월부터 이혼상담을 받고 있다. 남편이 회사 대출금 7000만원을 주식에 투자했다가 몽땅 날렸다. 김씨는 “손실금을 메우기 위해 또 주식투자를 하자는데 너무 힘들고 우울증이 생길 것 같아 결국 이혼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경기불황 속에 이혼과 가출이 늘면서 가정해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서 경제문제로 이혼상담을 받은 여성은 328명이다. 2006년 266명, 2007년 267명보다 크게 늘었다. 상담소 곽배희 소장은 “최근 10건 가운데 4~5건이 주식투자 실패나 실직 등 경제적 위기로 인한 이혼상담”이라면서 “올해부터는 실제 이혼건수도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청소년 가출도 증가세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가출 청소년 발생 건수는 1만5337건으로 2007년 1만2240명보다 3097건 증가했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경제위기로 인한 무력감과 불안심리가 가정파탄으로 이어지고 있다”면서 “경제난이 가족해체를 부르고 이것이 다시 사회문제가 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3) 강·절도 늘고 ‘충동적 폭력’도 빈발

부 산에 사는 기초생활수급자 강모씨(43·여)는 3일 절도혐의로 경찰에 불구속 입건됐다. 강씨는 무료로 간병 자원봉사를 하던 부산 남구 김모 할머니(72)의 집에서 70만원을 훔쳐 나왔다. 강씨는 이중 20만원을 생활비로 쓰고 나머지 50만원은 훔친 사실을 털어놓고 돌려줬다.

일용직 노동자 김모씨(61)는 지난해 12월 서울 수색역 인근 재개발 공사 중인 주택에 들어가 구리전선과 새시 1만6800원어치를 훔쳐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겨울에 일거리가 떨어져 남의 집 담을 넘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 3년간 절도는 꾸준히 늘고 있다. 2006년 19만2808건에서 지난해 22만3349건으로 15% 이상 많아졌다. 절도뿐만 아니라 폭력사건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2006년 28만2012건이던 폭력은 지난해 30만건을 넘어섰다. 현실 비관이나 불만이 누적된 상태에서 웬만한 일에도 참지 못한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만큼 삶이 팍팍해졌다는 의미다.

경찰은 올 들어 지난 두 달 동안 강·절도범 1만2787명을 검거했다. 경찰 관계자는 “생계형 절도가 특히 두드러진다”며 “외환위기 시절에도 나타났듯이 범죄 발생은 경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홍진수·유정인·오동근기자 soo43@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