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ndi 16 mars 2009

한국의 산신에 빠진 미국인 메이슨 - 조선일보 / 2009-03-10

한 국의 산신(山神)에 빠져 20여 년 동안 고향 미국으로 돌아가지도 않고 혼자 연구한 학자가 있다. 이름은 데이비드 메이슨(David Mason). 20여 년 동안 한국에 있으면서 결혼도 하고 한국의 산신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누빈다. 한국 생활에 익숙해 졌지만 미국인 신분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고향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한국의 산신연구를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결국 지금까지 눌러앉게 됐다.

대 학에서도 동양철학을 전공한 철학도였다. 미시간 대학을 입학해서 81년 캘리포니아 대학을 졸업했다. 동양철학에 관심이 많아 졸업 후 한중일, 태국, 대만 등지를 배낭여행했다. 그의 역마살의 시작이었다. 불교에 흠뻑 빠져들어 귀국을 늦췄다. 영어강사 생활하면서 동남아시아, 동북아시아의 불교를 비교 조사했다. 주업은 영어강사였지만 그의 관심은 온통 동양철학이었다.

84 년 잠시 미국으로 돌아가 동양철학과 문화에 대한 강사생활을 했지만, 동양의 산신에 대한 매력과 연구에 대한 열정으로 이듬해 다시 돌아왔다. 영어강사 생활하면서 산신에 대한 연구는 계속 됐다. 86년과 87년엔 경주시와 포스코에서 영어강사와 외국인에 대한 한국 문화 가이드를 맡으면서도 산신 찾아 다녔다.

88년엔 안정적으로 산신연구를 할 기회를 잡았다. 강원대에 영어회화 교수로 채용된 것이다. 여름과 겨울 방학엔 영어교사들을 대상으로 강의까지 했다. 영어회화 관련 책까지 냈다.

생 활은 안정됐다. 하지만 시간만 나면 산을 찾았다. 90년엔 더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왕립 아세아학회 한국지부(Royal Asiatic Society-Korea Branch, RASKB)를 미국, 영국, 독일 3개국이 합작 설립했다. 왕립 아세아학회 한국지부는 영리 목적 없이 한국의 예술, 관습, 역사, 문학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만든 조직이다. 메이슨은 여기서 한국문화 전반에 대한 강의와 안내를 맡았다. RASKB에서 2005년까지 일했다. 방문한 곳만 해도 수백여 곳에 달했다. 한국문화에 대한 깊이를 더해 갔다. 산신에 대한 연구도 막연한 조사와 탐방이 아닌 유래와 역사와 한민족과의 관련성까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강 원대 교수 생활은 88~97년까지 만 10년간으로 끝났다. 외국인에겐 10년 이상 교수 자격이 주어질 수 없다는 규정 때문이었다. 연세대 원주 캠퍼스에서 영어회화 교수로 2년을 더 보냈다. 이 시기에 그는 ‘한국의 문화, 종교, 철학의 역사성에 대해서’란 주제로 연세대 국제대학원에서 한국학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산신연구에 깊이를 더한 것이다.

강 원도에서 10여 년간의 생활은 그에게 ‘산신연구’에 매우 중요한 전기를 마련했다. 산신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은 데 이어 전국을 누비며 조사 탐방하고, 연구한 결과물을 영문판으로 결실을 맺은 것이다. 99년 한국 산신에 대한 저서인 ‘산신(SPIRIT OF THE MOUNTAINS:Korea's san-shin and Traditions of Mountain-worship)을 발간했다. 한국 산신의 유래, 의미, 한민족과의 관련성, 역사성 등에 관해서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이 책은 2002년에 한국 문화에 대한 최우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2003년에 한글 번역판으로 나왔다.

그는 책이 나오기까지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 내 스승은 조자룡 박사다. 조자룡 박사는 한국의 무속 연구에 몇 안 되는 권위자로 꼽힌다. 80년대 산신에 대해서 연구하다 조 박사를 만났는데, 그가 ‘데이비드, 너는 꼭 산신에 대한 책을 써야한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처음엔 그냥 지나쳐 들었으나 워낙 자주 말해서 집필하게 됐다. 그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아마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그의 스승 조자룡 박사는 지난 2000년 무속 연구에 평생을 바치고 운명을 달리 했다. 데이비드가 추모사로 스승의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았다.

2001~2005 년까지는 문화관광부에서 한국 문화 안내 가이드뿐만 아니라 한국문화 강의까지 맡아 외국인들에게 한국문화를 알렸다. 특히 2002년 한국 방문의 해엔 유일한 외국인으로 팀원으로 참가해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 활약했다.

2003~2005 년엔 한양대학교 국제관광 대학원에서 한국관광 겸임교수로 강의를 맡기도 했으며, 2005년엔 도영심씨가 위원장으로 있는 UN산하 세계관광기구 STEP재단 홍보 디렉트를 맡아 역할을 했다. 문광부에서 활동하던 2005년 봄 경희대에서 연락이 와, 6개월간의 강사생활로 테스트 받은 후 그 해 가을부터 경희대 호텔관광학과 교수로서 자리를 잡아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호텔관광학에 대한 연구와 병행해서 한국의 문화, 특히 산신에 대해 외국에 더욱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는 왜 산신에 대해서 그렇게 매달리며, 한국인에게 산신은 무엇일까?

“ 어렸을 때부터 동양철학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대학 때 전공도 그 분야로 택했다. 중국 도교, 한국의 도교, 선불교 등에 대해서도 연구를 많이 했다. 연구할수록 빠져들었다. 산신은 인간과 산이 의사소통하는 관계로서 존재하고, 인간과 산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존재한다. 한국에선 불교가 매우 강하다. 그러나 전부 순수한 불교가 아니다. 도교와 유교와 샤머니즘과 혼합된 불교도 많다. 산신은 샤머니즘, 도교, 불교 모두와 관련되어 있고, 서로 의존적이다. 이런 산신은 한국인의 의식 속에 알게 모르게 굉장히 밀접하고,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는 또 한국의 산마다 산신의 영령들이 다르게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계룡산, 지리산, 설악산 등 각각의 산마다 특징이 다른 산 영령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가 한국의 수백개 산을 오르내릴 때마다 절과 암자에 있는 불교 벽화(일종의 탱화)를 촬영해 보관했다. 한번은 그가 촬영한 절이 불타는 바람에 탱화조차 없어져 버렸다. 그 절에서 연락이 와 보관하고 있는 탱화사진을 빌려달라고 했다. 사진을 보고 탱화를 다시 그리겠다는 것이었다.

그를 통해서 한국의 산신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도 우리 문화를 이해하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박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