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ndi 15 décembre 2008

[인터뷰] 국제교류재단 공로상 도이힐러 교수 / 매일경제 2008-12-02

"홍(洪)씨라..본관이 어디인가요?" 한국역사 연구와 교육에 탁월한 업적을 인정받아 제1회 한국국제교류재단(이사장 임성준) 공로상 수상자로 뽑힌 마르티나 도이힐러(73.여) 런던대학교 동양.아프리카대(SOAS) 명예교수는 '한국학의 대가' 답게 취재기자 명함을 받자마자 유창한 한국어로 '성씨 본관'을 물었다.
도이힐러 교수는 한국학 연구의 현주소에 대해 "요즘 국내외를 막론하고 한국학을 공부한다는 사람들이 말은 유창해도 한자 공부를 잘 안하는 편이라 안타깝다"며 운을 뗀 뒤 "어렵다고 한문 공부를 안하면 어떻게 한국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 전통의 핵심을 연구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한자 실력을 묻는 '도발적인 질문'에 "5천자는 넘겠지요"라고 했다가, 금방 "이젠 늙어서 많이 잊어버렸으니 한 4천∼5천자쯤 되겠다"고 수정했다.

스위스 출신의 하버드대 박사(역사 및 극동언어)로 유럽한국학회(AKSE) 창립회원이자 영국 학술원 회원인 그는 현재 서강대 사학과 초빙교수로 국내에 체류중이다. 10일 오후 7시 호암아트홀에서 국제교류재단상을 받는다.

다음은 일문일답.

-- 서양 사람으로서 한자 공부하는 게 어렵지 않았나.

▲라인대학에서 먼저 중국 고전을 연구하고 한국학을 해서인지 한자 때문에 큰 고생은 없었다. 오히려 표현 방식이 광범위하고 복잡한 문법체계를 가진 한글이 더 어려웠다.

-- 한자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해왔는데.

▲40년 전 한국에 처음 왔을 때만해도 주변이 온통 한자 투성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한글 전용 교육' 등의 때문인지 한자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특히 요즘 대학생을 비롯한 한국의 젊은 세대들이 한자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 학자나 일반인의 입장에서 볼 때도 몹시 안타깝다. 한글이 우수한 글자임에는 틀림없지만 한국의 전통문화가 담긴 한자 공부를 병행할 때 한글의 우수성도 더욱 빛날 수 있다고 본다.

-- 한국학에 관심을 갖게된 배경은.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 주제인 구한말 외교사를 공부하던 1967년 서울대 규장각에 개항 당시와 관련된 풍부한 사료가 있다는 말을 듣고 처음 한국에 와 2년간 규장각 사료를 뒤적이며 공부했다. 1973년 다시 한국에 왔고 1975년 취리히대 한국학 교수로 임용됐다. 1988년 한국학 연구센터가 세워진 런던대로 자리를 옮긴 이후 거의 해마다 한국을 찾아왔다.

-- 1992년 출간된 저작 '한국의 유교적 변환: 사회와 이데올로기 연구'(하버드대 출판부)으로 각종 학술상을 휩쓸었는데.

▲한국학 전문가 소리를 듣기에는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고 본다.

-- '한국의 유교적..' 책의 한글판이 12년만인 2004년에야 나온 이유는.

▲역사학에는 특별한 이론이 필요없어서 문화인류학의 이론을 빌려 연구한 때문인지 여러 학문 분야에 관련된 각종 용어들이 몹시 어려운 편이다. 모 대학 교수들이 번역하다가 도중에 포기했다.

-- 한국학 진흥을 위한 주요 과제는.

▲한국정부의 재정 지원도 많이 늘고 좋은 시설도 갖추고 있는 등 과거에 비해 여건이 좋아졌지만 열정을 가진 연구 인력을 찾는 게 중요하다. 또, 어떤 작업이나 일정한 시간 과정이 필요하다. 조급한 마음으로 무언가 하루아침에 이루려 애쓰지말고 꾸준히 연구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다.

-- 한국학의 세계화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영어구사 인력 문제를 제기했는데.

▲한국의 학계가 당면한 큰 문제중 하나가 외국어 능력을 갖춘 인재가 크게 부족한 것이다. 해외에서 토론 등을 통해 좋은 아이디어들을 얻어야 하는데 한국의 학자들은 언어 문제 등으로 인해 이런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영어 뿐 아니라 한국어로도 충분한 논의를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학문의 발전을 위해 이처럼 의사소통 수단의 확보가 중요한데 영어는 '링구아 프랑카'(lingua franca 모국어를 달리하는 사람들이 상호이해를 위해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언어) 역할을 잘 해왔다.

-- 한.중.일 등 동아시아 연구에서 한자도 일종의 '링구아 프랑카'가 될 수 있나.

▲그렇다. 조선시대만해도 한.중.일 3국은 한자를 매개로 한 필담을 통해 의사소통을 하지 않았나. 다만, 최근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3개국 모두 옛날 한자(번체자) 대신 간체자를 배우는바람에 번체자와 간체자에 각각 익숙한 기성 세대와 젊은 세대간 소통에 어려움이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 현재 준비중인 연구 주제는.

▲유교사상이 조선시대의 사회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연구의 일환으로 빠르면 내년말까지 안동과 남원 등 향촌지역의 사족(士族) 연구를 할 계획이다.

duckhwa@yna.co.kr

(서울=연합뉴스) 홍덕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