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ndi 15 décembre 2008

저자권 없는 출판사 손목 비틀어 ‘책임 떠넘기기’ / 한겨레 2008-11-30

교과부, 집필자 반대 부딪히자 출판사에 압박
수정 항목마다 ‘구체적 문구’ 만들어 제시
‘직권수정’·저작권 둘러싸고 논란 뒤따를듯

올 한해 교육계를 뒤흔들었던 역사교과서 수정 논란은 결국 교육과학기술부가 의도한 대로 교과서를 고치는 것으로 끝을 맺게 됐다. 출판사가 교과서를 자체 수정하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지금까지의 과정을 돌이켜 볼 때 사실상 교과부가 직권 수정한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저작권을 둘러싼 법적 논란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교과부는 고교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수정 요구에 집필자들이 따라주지 않자, 저작권도 없는 출판사에 수정 압박을 가했다. 출판사들은 교과서 검정 승인 권한을 갖고 있는 교과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데다, 교과부가 검정 취소나 발행 정지 조처를 내릴 가능성도 있어 저작권 침해 논란을 감수하고 교과서 수정지시를 받아들였다. 금성출판사 쪽도 “지난 26일 공문으로 온 교과부의 ‘수정지시’를 ‘직권수정’으로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교과부 자료를 보면, 55개 수정권고 항목 가운데 26건의 수정·보완 내역이 제출됐다. 그러나 29건은 고스란히 남은데다 집필자들이 고치겠다고 한 26건도 교과부는 내용이 미흡하다고 판단했다. 교과부가 지난 26일 출판사에 ‘수정지시’한 내용은 모두 41건으로, 출판사별로 보면 금성출판사가 33건으로 가장 많고 법문사·중앙교육진흥연구소·천재교육 등 3곳이 각각 1건씩이다. 가장 논란이 된 금성출판사의 경우 수정권고 38건 가운데 5건만 해결된 셈이다.

금성교과서 대표 필자인 김한종 한국교원대 교수(역사교육)는 “교과부가 집필자들과 계속 대화를 하겠다고 했고, 지금까지 출판사에 직접 수정을 요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다”며 “교과서 수정이 급했던 교과부가 출판사에 책임을 떠넘긴 것”이라고 말했다. 김인호 금성출판사 대표도 “교과서 내용은 집필자의 몫이고, 출판사는 교과서를 발행할 책임만 있다는 것을 잘 알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도면회 한국역사연구회 회장은 “교과부의 행태는 야비하기까지 하다”며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가 누더기가 될 판”이라고 말했다.

저자의 동의 없이 출판사가 수정하는 것과 관련해 저작권 위반 논란도 일고 있다. 김기중 법무법인 동서파트너스 변호사는 “저작권법상 저작권을 갖고 있는 집필자의 허락 없이 저작물을 수정할 수 없다는 것은 가장 기본”이라며 “다만 출판사와 집필자가 계약을 맺을 때 이 부분에 대한 별도 언급이 있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한종 교수는 “저자 동의 없이 수정을 허락하는 내용의 계약을 맺진 않았다”며 “어쨌든 집필자들이 쓰지도 않은 교과서를 집필자들의 이름을 걸고 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 만큼, 법적인 검토를 준비 중”이라고 했다.

직권수정 문제도 논란거리다. 교과부가 26일 출판사에 통보한 ‘수정지시’에는 근·현대사 교과서 내용 중 수정을 해야 할 항목마다 ‘교과부 수정지시안’이 구체적인 문구로 적혀 있다. 윤종배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은 “교과부가 수정문구를 만들고, 출판사에 압력을 넣어 고치라고 했으니 직권수정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한국검정교과서협회 관계자는 “정부가 검정도서를 직권수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과부 관계자는 “이번 경우는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의 ‘교과부 장관은 검정도서의 경우 저작자 또는 발행자에게 수정을 명할 수 있다’(26조)는 조항을 근거로 수정을 명령해 출판사가 받아들였으니 직권수정이 아니다”라면서도 “법률 자문을 해본 결과 직권수정도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