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ndi 1 décembre 2008

"자본주의는 재난을 먹고 성장했다"/서울경제, 2008-11-21

지난 2003년 미국 정부는 대량살상무기를 감추고 있다고 단정짓고 이라크를 향해 미사일의 단추를 눌렀다. 6년째 끔찍한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미 정부는 다국적 석유회사인 BP와 쉘이 이라크의 석유 시추권을 30년간 유지할 수 있는 새로운 법안을 통과했으며, 외국 투자자들이 이라크에 새로운 공장과 소매점 건설에 참여할 수 있도록 법을 제정했다. 많은 사람들이 재난으로 고통받는 동안 정부는 소수의 부자들을 위한 정책 수립에 바빴던 것이다.

사회적인 충격이 터지면 대중은 갈팡질팡 이성을 잃게 된다. 이를 틈타 정부 혹은 글로벌 자본주의는 소수 부자들을 위한 정책을 쏟아 내고 이를 슬그머니 통과시키는 일을 지금도 벌이고 있다.

자본주의는 재난을 바탕으로 성장했다는 이론을 펼치는 미국의 저널리스트 나오미 클라인은 이를 '쇼크 독트린'이라고 부른다. 이때 쇼크란 천재지변, 전쟁, 쿠테타, 국가 재정위기 등이다.

그는 고문 이론을 바탕으로 쇼크 독트린을 설명한다. 잠시 고문실로 장면을 바꿔보자. 캄캄한 방에 눈을 가린 한 죄수가 묶인 채 앉아 있다. 어디인지 어떤 일이 벌어질지 죄수는 알 수 없다. 곧 이어 물 젖은 천이 몸을 덮더니 몽둥이 세례가 시작됐다. 전기 충격도 가해졌다. 이틀간 고문을 당한 죄수는 이성적으로 자신을 방어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고, 정보든 고백이든 과거 신념에 대한 비난이든 심문관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털어논다.

죄수에게 충격적인 쇼크를 가하면 심신이 약해져 무엇이든 받아들이듯 사회적인 쇼크가 터지면 대중들이 방향감각을 잃게 되는데 정부는 이를 틈타 그 동안 반대에 직면했던 사안들을 경제적인 쇼크 요법으로 밀어붙인다. 차이점은 심문실에서 일대일로 고문해서 얻어낼 수 있는 것을 충격에 휩싸인 대중으로부터 더 큰 규모로 얻어낸다는 점이다.

경제적인 쇼크요법 전문가로 저자는 미국을 대표하는 시장주의 경제학자로 시카고 학파를 이끌었던 밀턴 프리드먼을 꼽았다. 정부규제, 무역장벽, 이익집단 등의 방해요소를 제거함으로써 순수한 자본주의로 돌아가려 했던 프리드먼은 절망적 상황에 처한 국가들이 일부 배짱 두둑한 정치인들에게 쇼크요법 구사를 종용했다고 구체적인 사례를 들면서 설명한다.

책 은 1973년 피노체트의 쿠테타부터 1989년 텐안문(天安文)사태, 1991년 소련의 붕괴, 1997년 아시아의 금융위기, 2003년 이라크전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격변에서 경험한 재난의 현장 이면에서 벌어졌던 자본주의의 또 다른 얼굴을 비춘다.

저자는 쇼크 독트린이 위력을 발휘한 사건으로 1997~1998년 아시아의 금융위기도 놓치지 않았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이 내 건 구조조정 요구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이는 아시아 호랑이들이 시장 문을 활짝 여는 계기가 됐다는 것.

책은 극소수가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과정이 평화롭지도 합법적이지도 않았다는 것을 논리정연하면서도 강력하게 경고한다. 저자는 책을 통해 번영을 누리는 사람은 누구이며, 어디서 그런 번영이 오는지 등 번영의 본질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문제는 현재 진행중인 세계 금융위기도 어떤 부자와 지배 엘리트에게는 호기가 될 수 있다는 것. 저자는 쇼크 독트린을 이겨내는 방법으로 정보 공유와 대화를 제시했다. 이를 통해 새롭게 닥쳐올 경제 쇼크에 미리 저항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장선화 기자 india@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