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redi 26 mars 2008

`대안교과서` 출간에 엇갈린 학계 반응 [연합]

5일 시중 서점에 깔리기 시작한 교과서포럼의 '대안교과서 한국 근ㆍ현대사'에 관련 학계는 대체로 "그 내용을 아직 분석하지 못해 무엇이라 논평하기에는 이르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그간 교과서포럼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한 학계 일부에서는 식민지배와 독재를 찬양한 우익교과서라는 비판도 나왔다.

대안교과서 출간으로 논란 중심에 선 교과서포럼은 상임대표인 박효종 서울대 교수와 공동대표들인 이영훈(서울대)ㆍ차상철(충남대) 교수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이날 서울 중구 세실레스토랑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런 비판들을 적극 해명했다.

진보성향의 계간 '창작과비평'(현 창비) 주간을 역임한 최원식 인하대 교수는 "대안교과서가 나왔다는 말만 들었지, 책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뭐라 논평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식 민지시대 경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두고 그동안 대안교과서 편집책임자인 이영훈 교수에 맞서 '식민지 수탈론'을 주장하며 격한 논쟁을 벌인 허수열 충남대 교수 또한 다소 뜻밖에도 "(이 교수를 포함해) 교과서포럼 관계자들이 그간 내세운 주장들로 볼 때, 대안교과서가 어떤 역사관에 입각해 서술되었을지 짐작은 가지만, 명색이 공부하는 사람이 책(대안교과서)을 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연구자의 태도가 아니다"면서 논평을 피했다.

한국 근대사 전공인 주진오 상명대 교수는 "책을 검토하지 못하고 언론보도와 교과서포럼에서 배포한 기자회견문 자료만을 토대로 한 견해"임을 전제하기는 했지만, "(교과서포럼이) 우선 역사학자는 배제한 채 집필한 책을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고, 경제발전 지상주의, 혹은 국가주의에 지나치게 함몰돼 있지 않나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나아가 "역사학자가 참여하지 않았으며, 역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 점 등에서 (대안교과서가) 일본 후소샤 판 우익교과서의 한국판이라는 느낌을 지울 길이 없다"면서 "포럼은 한국 역사학계가 좌편향적 시각 하나만으로 역사를 보고 있다고 비판하지만, 매우 다양한 시각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일부러 망각한 것이 아닌가 한다"고 덧붙였다.

독립운동사 전공인 국민대 국사학과 장석흥 교수는 "그들(교과서포럼) 스스로는 '우리가 무슨 식민지 찬양론자이며, 식민지 근대화론자'인가 라고 주장하지만, 결론을 보면 식민지근대화론자가 맞다는 것은 확실하다"면서 "이번 대안교과서 또한 이와 같은 시각에 입각해 서술되었다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 기독교사 전공인 숭실대 박정신 교수는 "교과서포럼이 좌편향적 연구자에 맞서 우편향적인 시각에 기울어져 있는 것은 엄명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기존 역사교과서나 역사학계의 한국 근ㆍ현대사 서술에 문제가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면서 "대안교과서라는 것도 너무 이념 투쟁의 산물 등으로만 보지 말고, 역사를 보는 또 하나의 시각이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성과물 정도로 보면 한국 역사학 자체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나아가 "언론보도를 통해 보면, 이번 대안교과서가 표방하는 목적에 합당한 제목은 '대한민국사' 정도가 적당할 듯하고, 또, 그렇게 되었더라면 논란이 더 적었을 수가 있었을 터인데 이 점 또한 아쉽다"고 말했다.

한편 교과서포럼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우리 교과서가 일제 식민통치나 독재를 미화했다느니, 후소샤 판 일본 우익교과서와 논리구조가 비슷하다느니 하는 등의 비판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 영훈 교수는 "일제의 식민지배가 억압적이었다는 데는 이론이 있을 수 없고, 그런 점을 대안교과서도 명확히 밝혔다"면서 "좌편향적 기존 역사교과서와 달리 식민지시대 다른 면들을 상대적으로 많이 서술하는 과정에서 그런 오해(식민지 미화론)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건 말 그대로 오해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빼앗기고 얻어맞기만 했다면 노예이지 어찌 우리 조상이겠느냐"고 반문하면서 "(그들은) 극심한 차별 속에서도 근대문명을 학습, 실천, 이해, 집행하는 능력을 배웠으며 이에서 학습한 역량이 해방 후 근대 국민국가 형성에 도움이 됐다고 봐야지, 이를 식민지 미화론이라고 몰아 부쳐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는 "국민국가 형성과정에서 나타나는 희생을 서술하지 않았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우리는 이승만 시기의 권위주의 정치, 박정희 시대의 성장의 그늘과 민주주의 취약성을 충분히 서술했으며, 이는 기존 좌편향 교과서에 비해서도 양적 균형에서는 전혀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기존 교과서가 12년 집권한 이승만 시대를 2쪽에 걸쳐 서술한 반면, 4ㆍ19는 무려 8쪽에 걸쳐 소개한 비상식적인 불균형이 더욱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나아가 교과서포럼과 대안교과서가 '자학사관' 극복을 내세우는 등 일본 우익교과서의 논리 구조와 비슷하다는 비판이 있다는 지적에 김 교수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건설되는 과정을 연구하는 일이 어떻게 국가주의로 치부될 수 있으며, 우리가 언제 개인을 국가에 일체화하는 '국가유기체론'을 주장한 적이 있느냐"면서 "나오지 않은 책을 두고 일부 언론을 통해 그런 말로 우리를 비판한 역사학자가 과연 역사학자인지 기본소양을 의심케 하며, 부디 그런 소지가 있다면, 어디에 어떤 대목이 그런 지를 구체적으로 대라"고 강조했다.

교과서포럼은 또 포럼에 역사학자가 거의 포함돼 있지 않다는 지적에 "근현대사는 경제, 사회, 예술, 사상사 등의 모든 학문이 학제적으로 연결된 역사학이 존재할 뿐이지, 절대적이며 특권화한 역사학이라는 영역이 따로 존재할 수는 없다"면서 "우리의 주장에 문제가 있는 점에 반론을 가해야지 역사학자가 아닌 사람들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4ㆍ3 제주사건이나 여순사건을 좌익세력의 '반란'으로 기술한 데 대해 김일영 교수는 "소제목을 그렇게 달아 오해의 소지가 있는 듯하다"면서 "다만 그 발생 원인이라는 측면에서 두 사건이 남로당 지시에 의해 일어났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영훈 교수는 그에 대한 부연 설명으로 대안교과서 144쪽에 수록된 '제주 4ㆍ3 사건'이란 박스 기사를 일일이 낭독하면서 "보다시피 원인은 그랬지만 그 전개과정에서 무고한 제주도민이 희생됐다는 사실을 우리는 충분히 서술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