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redi 26 mars 2008

국호 ‘대한민국’ - 대구일보

임형두의 볼록거울
총선 열기가 뜨겁다. 이번 총선은 1948년 5.10총선거를 치른 지 꼭 60년 만이어서 역사적 의미가 적지 않다. 올해는 국호 ‘대한민국’이 태어난 지 6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5.10총선으로 제헌국회가 구성된 직후 핫이슈는 국호 문제였다. 새 나라의 호칭을 놓고 정파마다 갑론을박을 거듭한 것이다. 민족주의 계열이 ‘대한’과 ‘한국’을 주장하자 사회주의 계열은 ‘조선’을 내세웠다. 중간파는 ‘고려’를 선호했다.
그래서 당시 “세칭 보수적 우익 측은 대한이오, 자칭 진보적 좌익 측은 조선이오, 통칭 회색적 중간 측은 고려다”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좌(左) 조선’ ‘우(右)대한’이나 ‘남(南) 대한’ ‘북(北) 조선’도 입에 오르내렸다.
논란 끝에 결정된 것은 ‘대한민국’. 그런데 이번에는 그 구성원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로 견해가 엇갈렸다. 헌법 초안에는 ‘인민’으로 쓰였다가 “그 말이 공산당의 용어인데 왜 그런 말을 사용하려 하느냐”는 주장에 부딪혀 ‘국민’으로 바뀌었다.
오늘날 사용되는 ‘대한민국’과 ‘국민’은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헌법에 박혔다. 하지만 제헌헌법을 기초한 유진오는 ‘인민’ 대신 ‘국민’이 채택된 데 대해 못내 아쉬워했다. 국가우월주의 냄새가 풍기는 ‘국민’보다 국가도 침범할 수 없는 자유와 권리의 주체라는 뜻의 ‘인민’이 합당한데 공산주의자들에게 좋은 단어 하나를 뺏겼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영문 국호가 ‘Korea’로 정해진 연유는 뭘까? 이에 대해선 역사를 한참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임진왜란 때 왜군과 함께 조선 땅을 밟은 예수회 선교사들이 ‘조선’이란 국호 대신에 ‘코라이(Coray)’라고 부르면서 관행으로 굳어져버렸다.
이 영문 국호의 기원은 당연히 ‘고려’에 두고 있다. 선교사들이 왜 ‘조선’이라는 공식 국호를 놔두고 없어진 ‘고려’라고 표기했는지는 미스터리다. 아무튼 선교사에 의해 ‘재발견’된 은둔의 나라 조선은 ‘Coray’ ‘Coria’ ‘Coree’ ‘Corea’ 등으로 불리다가 오늘날엔 ‘korea’로 정착했다.
제헌의회의 난상토론 끝에 확정된 국호 ‘대한민국’(Korea)은 1948년 7월 17일 헌법 공포와 함께 60년 동안 사용돼오고 있다. 이렇게 태어난 ‘대한민국’은 2002년 월드컵대회 처럼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한국인의 정서를 하나로 묶는 구실을 했다.
하지만 민족사 전체로 보면, ‘대한민국’엔 분단의 아픔이 배어 있기도 하다. 북한이 남한보다 한 발짝 앞서 1948년 4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헌법 초안을 승인한 데 이어 태극기 대신 인공기를, 애국가 대신 새 국가를 채택해 다른 길을 가버린 것이다. 넉 자밖에 안되는 국호 ‘대한민국’에는 이런 역사의 음영이 드리워져 있다.
총선 열기가 뜨겁다. 이번 총선은 1948년 5.10총선거를 치른 지 꼭 60년 만이어서 역사적 의미가 적지 않다. 올해는 국호 ‘대한민국’이 태어난 지 6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5.10총선으로 제헌국회가 구성된 직후 핫이슈는 국호 문제였다. 새 나라의 호칭을 놓고 정파마다 갑론을박을 거듭한 것이다. 민족주의 계열이 ‘대한’과 ‘한국’을 주장하자 사회주의 계열은 ‘조선’을 내세웠다. 중간파는 ‘고려’를 선호했다.
그래서 당시 “세칭 보수적 우익 측은 대한이오, 자칭 진보적 좌익 측은 조선이오, 통칭 회색적 중간 측은 고려다”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좌(左) 조선’ ‘우(右)대한’이나 ‘남(南) 대한’ ‘북(北) 조선’도 입에 오르내렸다.
논란 끝에 결정된 것은 ‘대한민국’. 그런데 이번에는 그 구성원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로 견해가 엇갈렸다. 헌법 초안에는 ‘인민’으로 쓰였다가 “그 말이 공산당의 용어인데 왜 그런 말을 사용하려 하느냐”는 주장에 부딪혀 ‘국민’으로 바뀌었다.
오늘날 사용되는 ‘대한민국’과 ‘국민’은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헌법에 박혔다. 하지만 제헌헌법을 기초한 유진오는 ‘인민’ 대신 ‘국민’이 채택된 데 대해 못내 아쉬워했다. 국가우월주의 냄새가 풍기는 ‘국민’보다 국가도 침범할 수 없는 자유와 권리의 주체라는 뜻의 ‘인민’이 합당한데 공산주의자들에게 좋은 단어 하나를 뺏겼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영문 국호가 ‘Korea’로 정해진 연유는 뭘까? 이에 대해선 역사를 한참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임진왜란 때 왜군과 함께 조선 땅을 밟은 예수회 선교사들이 ‘조선’이란 국호 대신에 ‘코라이(Coray)’라고 부르면서 관행으로 굳어져버렸다.
이 영문 국호의 기원은 당연히 ‘고려’에 두고 있다. 선교사들이 왜 ‘조선’이라는 공식 국호를 놔두고 없어진 ‘고려’라고 표기했는지는 미스터리다. 아무튼 선교사에 의해 ‘재발견’된 은둔의 나라 조선은 ‘Coray’ ‘Coria’ ‘Coree’ ‘Corea’ 등으로 불리다가 오늘날엔 ‘korea’로 정착했다.
제헌의회의 난상토론 끝에 확정된 국호 ‘대한민국’(Korea)은 1948년 7월 17일 헌법 공포와 함께 60년 동안 사용돼오고 있다. 이렇게 태어난 ‘대한민국’은 2002년 월드컵대회 처럼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한국인의 정서를 하나로 묶는 구실을 했다.
하지만 민족사 전체로 보면, ‘대한민국’엔 분단의 아픔이 배어 있기도 하다. 북한이 남한보다 한 발짝 앞서 1948년 4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헌법 초안을 승인한 데 이어 태극기 대신 인공기를, 애국가 대신 새 국가를 채택해 다른 길을 가버린 것이다. 넉 자밖에 안되는 국호 ‘대한민국’에는 이런 역사의 음영이 드리워져 있다.
총선 열기가 뜨겁다. 이번 총선은 1948년 5.10총선거를 치른 지 꼭 60년 만이어서 역사적 의미가 적지 않다. 올해는 국호 ‘대한민국’이 태어난 지 6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5.10총선으로 제헌국회가 구성된 직후 핫이슈는 국호 문제였다. 새 나라의 호칭을 놓고 정파마다 갑론을박을 거듭한 것이다. 민족주의 계열이 ‘대한’과 ‘한국’을 주장하자 사회주의 계열은 ‘조선’을 내세웠다. 중간파는 ‘고려’를 선호했다.
그래서 당시 “세칭 보수적 우익 측은 대한이오, 자칭 진보적 좌익 측은 조선이오, 통칭 회색적 중간 측은 고려다”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좌(左) 조선’ ‘우(右)대한’이나 ‘남(南) 대한’ ‘북(北) 조선’도 입에 오르내렸다.
논란 끝에 결정된 것은 ‘대한민국’. 그런데 이번에는 그 구성원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로 견해가 엇갈렸다. 헌법 초안에는 ‘인민’으로 쓰였다가 “그 말이 공산당의 용어인데 왜 그런 말을 사용하려 하느냐”는 주장에 부딪혀 ‘국민’으로 바뀌었다.
오늘날 사용되는 ‘대한민국’과 ‘국민’은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헌법에 박혔다. 하지만 제헌헌법을 기초한 유진오는 ‘인민’ 대신 ‘국민’이 채택된 데 대해 못내 아쉬워했다. 국가우월주의 냄새가 풍기는 ‘국민’보다 국가도 침범할 수 없는 자유와 권리의 주체라는 뜻의 ‘인민’이 합당한데 공산주의자들에게 좋은 단어 하나를 뺏겼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영문 국호가 ‘Korea’로 정해진 연유는 뭘까? 이에 대해선 역사를 한참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임진왜란 때 왜군과 함께 조선 땅을 밟은 예수회 선교사들이 ‘조선’이란 국호 대신에 ‘코라이(Coray)’라고 부르면서 관행으로 굳어져버렸다.
이 영문 국호의 기원은 당연히 ‘고려’에 두고 있다. 선교사들이 왜 ‘조선’이라는 공식 국호를 놔두고 없어진 ‘고려’라고 표기했는지는 미스터리다. 아무튼 선교사에 의해 ‘재발견’된 은둔의 나라 조선은 ‘Coray’ ‘Coria’ ‘Coree’ ‘Corea’ 등으로 불리다가 오늘날엔 ‘korea’로 정착했다.
제헌의회의 난상토론 끝에 확정된 국호 ‘대한민국’(Korea)은 1948년 7월 17일 헌법 공포와 함께 60년 동안 사용돼오고 있다. 이렇게 태어난 ‘대한민국’은 2002년 월드컵대회 처럼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한국인의 정서를 하나로 묶는 구실을 했다.
하지만 민족사 전체로 보면, ‘대한민국’엔 분단의 아픔이 배어 있기도 하다. 북한이 남한보다 한 발짝 앞서 1948년 4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헌법 초안을 승인한 데 이어 태극기 대신 인공기를, 애국가 대신 새 국가를 채택해 다른 길을 가버린 것이다. 넉 자밖에 안되는 국호 ‘대한민국’에는 이런 역사의 음영이 드리워져 있다.
총선 열기가 뜨겁다. 이번 총선은 1948년 5.10총선거를 치른 지 꼭 60년 만이어서 역사적 의미가 적지 않다. 올해는 국호 ‘대한민국’이 태어난 지 6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5.10총선으로 제헌국회가 구성된 직후 핫이슈는 국호 문제였다. 새 나라의 호칭을 놓고 정파마다 갑론을박을 거듭한 것이다. 민족주의 계열이 ‘대한’과 ‘한국’을 주장하자 사회주의 계열은 ‘조선’을 내세웠다. 중간파는 ‘고려’를 선호했다.
그래서 당시 “세칭 보수적 우익 측은 대한이오, 자칭 진보적 좌익 측은 조선이오, 통칭 회색적 중간 측은 고려다”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좌(左) 조선’ ‘우(右)대한’이나 ‘남(南) 대한’ ‘북(北) 조선’도 입에 오르내렸다.
논란 끝에 결정된 것은 ‘대한민국’. 그런데 이번에는 그 구성원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로 견해가 엇갈렸다. 헌법 초안에는 ‘인민’으로 쓰였다가 “그 말이 공산당의 용어인데 왜 그런 말을 사용하려 하느냐”는 주장에 부딪혀 ‘국민’으로 바뀌었다.
오늘날 사용되는 ‘대한민국’과 ‘국민’은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헌법에 박혔다. 하지만 제헌헌법을 기초한 유진오는 ‘인민’ 대신 ‘국민’이 채택된 데 대해 못내 아쉬워했다. 국가우월주의 냄새가 풍기는 ‘국민’보다 국가도 침범할 수 없는 자유와 권리의 주체라는 뜻의 ‘인민’이 합당한데 공산주의자들에게 좋은 단어 하나를 뺏겼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영문 국호가 ‘Korea’로 정해진 연유는 뭘까? 이에 대해선 역사를 한참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임진왜란 때 왜군과 함께 조선 땅을 밟은 예수회 선교사들이 ‘조선’이란 국호 대신에 ‘코라이(Coray)’라고 부르면서 관행으로 굳어져버렸다.
이 영문 국호의 기원은 당연히 ‘고려’에 두고 있다. 선교사들이 왜 ‘조선’이라는 공식 국호를 놔두고 없어진 ‘고려’라고 표기했는지는 미스터리다. 아무튼 선교사에 의해 ‘재발견’된 은둔의 나라 조선은 ‘Coray’ ‘Coria’ ‘Coree’ ‘Corea’ 등으로 불리다가 오늘날엔 ‘korea’로 정착했다.
제헌의회의 난상토론 끝에 확정된 국호 ‘대한민국’(Korea)은 1948년 7월 17일 헌법 공포와 함께 60년 동안 사용돼오고 있다. 이렇게 태어난 ‘대한민국’은 2002년 월드컵대회 처럼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한국인의 정서를 하나로 묶는 구실을 했다.
하지만 민족사 전체로 보면, ‘대한민국’엔 분단의 아픔이 배어 있기도 하다. 북한이 남한보다 한 발짝 앞서 1948년 4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헌법 초안을 승인한 데 이어 태극기 대신 인공기를, 애국가 대신 새 국가를 채택해 다른 길을 가버린 것이다. 넉 자밖에 안되는 국호 ‘대한민국’에는 이런 역사의 음영이 드리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