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ndi 16 juin 2008

일본 고대(奈良時代) 때, 독도를 신라 땅 안도(雁道)섬으로 불러 / 대구일보 - 2008년 5월 25일

일본 사람들은 독도를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렀던 것을 알 수 있다. 아주 옛날 7세기부터  독도는 ‘안도’라고 불렀다. 다시 말해서 기러기들이 시베리아로부터 일본에 건너올 때 쉬었다가 오는 곳이 독도였다. 그래서 고대 일본인들은 독도를 ‘안도’라고 불렀다.
독도를 ‘안도’라고 부르게 된 시기는 7세기였다. 독도를 ‘안도’라고 부르면서 지도를 그린 사람은 백제 도래인 행기(行基)라는 승려였다. 행기는 일본 고대사회에 유명한 인물이었다. 일본 고대불교의 대승려로서 나라(奈良)의 동대사(東大寺)를 창립하였고, 토목공사 등 농사짓는 방법이라든가 새로운 기술을 전하면서 일본 고대국가에 기여한 바가 큰 인물이었다.
행기는 일본 열도를 다니면서 포교를 하면서 발로 밟으면서 직접 눈으로 보고서 최초로 ‘일본도(日本圖)’라는 지도를 만들어 낸 인물이었다. 그가 만든 지도에 ‘雁道, 雖有城非人, 新羅國, 五百六十六國’이라고 기록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안도’에는 사람이 살지 않은 곳이고 독도는 신라 땅이며, 신라는 566군이 있다고 기록한 것이다. 이것이 일본 최초의 지도이고 당시 조선이나 중국에서도 없었던 시대의 최고 오래된 지도였다.
행기가 만든 ‘일본도’는 지금 동경(東京) 가네쟈와 문고(金澤文庫藏)에 소장되었고 일본에서도 아주 유명한 교토 니와지(仁和寺) 사찰에도 보관되어 있다. 그리고 이 지도를 보고 1662년 9월에 제작한 부상국지도(扶桑國之圖)도 있다.
이 지도에도 그동안 독도를 ‘안도’라고 했고 일본에서 최초로 서양 측지 법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제작자는 교토의 테라마치 니죠(寺町二条)에 사는 데라다 스게헤이헤(寺田重兵衛)이다. 제작자는 원래 서양학을 전공한 사람이고 또는 지방사를 많이 연구한 자이다.
그러니 7세기부터 17세기 까지 신라 땅이었다는 것을 두 지도를 보아도 알 수 있다. 고대 일본인들은 ‘안도’에서 기러기들이 먼 해상에서 날아 올 때 독도에서 쉬어서 왔고 독도를 거처 일본에 올 때 바다에서 쉬기 위해 나뭇잎을 물고 날아 왔다는 전설이 있다.
독도에서 날아온 기러기들은 한 철을 일본에서 지내면서 병들어 죽는다든가 사고로 죽고 돌아가지 못한 기러기도 꽤 많았다. 죽은 기러기들을 위해 오늘날 까지 위령제를 지내는 풍속이 남아 있다. 일본 열도에서도 독도를 마주보는 시마네현(島根縣) 사람들이 제를 올린다고 한다. 죽은 기러기들을 추모하는 풍속을 카모후로(雁風呂)라고 한다. 즉 사시 철(봄, 여름, 가을, 겨울) 목욕탕에 계절에 따라 나뭇가지 잎을 욕실에 넣어 목욕하는 풍속을 말한다.
필자는 왜 이 카모후로를 지내는 가를 물었다. 그들은 옛날 이 지방의 풍속으로서 죽은 기러기들을 위해서 고대로부터 축제로 지내고 우리나라 독도 (일본은 竹島) 를 향해 손을 모아 절을 한다고 한다. 독도를 두고 일본인들은 고대에서는 ‘안도’라는 명칭이 붙었다는 것을 이번 지도 조사에서 알게 되었고, 독도의 최초의 명칭은 ‘안도’ 즉 새들의 섬이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나라는 독도를 신라 지증왕 때부터 우산국(于山國)이라 했는데 일본은 고대로부터 17세기까지는 ‘기러기 섬’이라 했다는 것을 일본사람들도 아는 사람은 알고 있다. 일본 문부과학성에서 지금 사용하는 중학교 지리, 공민 교과서에 죽도(독도)는 일본 영토라고 기술된 것이 몇 권 되지 않은 것에 불만을 가지고 앞으로 14권 모두가 일본영토로 기술하도록 교과서 편찬위원회에 지시한 사실이 드러났다.
지금 일본 중학교 교과서 14권 중 4권은 ‘독도는 죽도이고 일본영토’라고 기술되어 있지만 다른 10권은 ‘일본 해안에 있는 죽도는 한국과 일본 간에 분쟁지역으로 남아있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이렇게 가끔 또 자기네 땅이라 하니 일본나라의 속내를 다시 드러내는 것이다.
김문길(부산외대 교수) 일본 사람들은 독도를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렀던 것을 알 수 있다. 아주 옛날 7세기부터  독도는 ‘안도’라고 불렀다. 다시 말해서 기러기들이 시베리아로부터 일본에 건너올 때 쉬었다가 오는 곳이 독도였다. 그래서 고대 일본인들은 독도를 ‘안도’라고 불렀다.
독도를 ‘안도’라고 부르게 된 시기는 7세기였다. 독도를 ‘안도’라고 부르면서 지도를 그린 사람은 백제 도래인 행기(行基)라는 승려였다. 행기는 일본 고대사회에 유명한 인물이었다. 일본 고대불교의 대승려로서 나라(奈良)의 동대사(東大寺)를 창립하였고, 토목공사 등 농사짓는 방법이라든가 새로운 기술을 전하면서 일본 고대국가에 기여한 바가 큰 인물이었다.
행기는 일본 열도를 다니면서 포교를 하면서 발로 밟으면서 직접 눈으로 보고서 최초로 ‘일본도(日本圖)’라는 지도를 만들어 낸 인물이었다. 그가 만든 지도에 ‘雁道, 雖有城非人, 新羅國, 五百六十六國’이라고 기록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안도’에는 사람이 살지 않은 곳이고 독도는 신라 땅이며, 신라는 566군이 있다고 기록한 것이다. 이것이 일본 최초의 지도이고 당시 조선이나 중국에서도 없었던 시대의 최고 오래된 지도였다.
행기가 만든 ‘일본도’는 지금 동경(東京) 가네쟈와 문고(金澤文庫藏)에 소장되었고 일본에서도 아주 유명한 교토 니와지(仁和寺)
일본 사람들은 독도를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렀던 것을 알 수 있다. 아주 옛날 7세기부터  독도는 ‘안도’라고 불렀다. 다시 말해서 기러기들이 시베리아로부터 일본에 건너올 때 쉬었다가 오는 곳이 독도였다. 그래서 고대 일본인들은 독도를 ‘안도’라고 불렀다.
독도를 ‘안도’라고 부르게 된 시기는 7세기였다. 독도를 ‘안도’라고 부르면서 지도를 그린 사람은 백제 도래인 행기(行基)라는 승려였다. 행기는 일본 고대사회에 유명한 인물이었다. 일본 고대불교의 대승려로서 나라(奈良)의 동대사(東大寺)를 창립하였고, 토목공사 등 농사짓는 방법이라든가 새로운 기술을 전하면서 일본 고대국가에 기여한 바가 큰 인물이었다.
행기는 일본 열도를 다니면서 포교를 하면서 발로 밟으면서 직접 눈으로 보고서 최초로 ‘일본도(日本圖)’라는 지도를 만들어 낸 인물이었다. 그가 만든 지도에 ‘雁道, 雖有城非人, 新羅國, 五百六十六國’이라고 기록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안도’에는 사람이 살지 않은 곳이고 독도는 신라 땅이며, 신라는 566군이 있다고 기록한 것이다. 이것이 일본 최초의 지도이고 당시 조선이나 중국에서도 없었던 시대의 최고 오래된 지도였다.
행기가 만든 ‘일본도’는 지금 동경(東京) 가네쟈와 문고(金澤文庫藏)에 소장되었고 일본에서도 아주 유명한 교토 니와지(仁和寺) 사찰에도 보관되어 있다. 그리고 이 지도를 보고 1662년 9월에 제작한 부상국지도(扶桑國之圖)도 있다.
이 지도에도 그동안 독도를 ‘안도’라고 했고 일본에서 최초로 서양 측지 법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제작자는 교토의 테라마치 니죠(寺町二条)에 사는 데라다 스게헤이헤(寺田重兵衛)이다. 제작자는 원래 서양학을 전공한 사람이고 또는 지방사를 많이 연구한 자이다.
그러니 7세기부터 17세기 까지 신라 땅이었다는 것을 두 지도를 보아도 알 수 있다. 고대 일본인들은 ‘안도’에서 기러기들이 먼 해상에서 날아 올 때 독도에서 쉬어서 왔고 독도를 거처 일본에 올 때 바다에서 쉬기 위해 나뭇잎을 물고 날아 왔다는 전설이 있다.
독도에서 날아온 기러기들은 한 철을 일본에서 지내면서 병들어 죽는다든가 사고로 죽고 돌아가지 못한 기러기도 꽤 많았다. 죽은 기러기들을 위해 오늘날 까지 위령제를 지내는 풍속이 남아 있다. 일본 열도에서도 독도를 마주보는 시마네현(島根縣) 사람들이 제를 올린다고 한다. 죽은 기러기들을 추모하는 풍속을 카모후로(雁風呂)라고 한다. 즉 사시 철(봄, 여름, 가을, 겨울) 목욕탕에 계절에 따라 나뭇가지 잎을 욕실에 넣어 목욕하는 풍속을 말한다.
필자는 왜 이 카모후로를 지내는 가를 물었다. 그들은 옛날 이 지방의 풍속으로서 죽은 기러기들을 위해서 고대로부터 축제로 지내고 우리나라 독도 (일본은 竹島) 를 향해 손을 모아 절을 한다고 한다. 독도를 두고 일본인들은 고대에서는 ‘안도’라는 명칭이 붙었다는 것을 이번 지도 조사에서 알게 되었고, 독도의 최초의 명칭은 ‘안도’ 즉 새들의 섬이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나라는 독도를 신라 지증왕 때부터 우산국(于山國)이라 했는데 일본은 고대로부터 17세기까지는 ‘기러기 섬’이라 했다는 것을 일본사람들도 아는 사람은 알고 있다. 일본 문부과학성에서 지금 사용하는 중학교 지리, 공민 교과서에 죽도(독도)는 일본 영토라고 기술된 것이 몇 권 되지 않은 것에 불만을 가지고 앞으로 14권 모두가 일본영토로 기술하도록 교과서 편찬위원회에 지시한 사실이 드러났다.
지금 일본 중학교 교과서 14권 중 4권은 ‘독도는 죽도이고 일본영토’라고 기술되어 있지만 다른 10권은 ‘일본 해안에 있는 죽도는 한국과 일본 간에 분쟁지역으로 남아있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이렇게 가끔 또 자기네 땅이라 하니 일본나라의 속내를 다시 드러내는 것이다.
김문길(부산외대 교수) 일본 사람들은 독도를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렀던 것을 알 수 있다. 아주 옛날 7세기부터  독도는 ‘안도’라고 불렀다. 다시 말해서 기러기들이 시베리아로부터 일본에 건너올 때 쉬었다가 오는 곳이 독도였다. 그래서 고대 일본인들은 독도를 ‘안도’라고 불렀다.
독도를 ‘안도’라고 부르게 된 시기는 7세기였다. 독도를 ‘안도’라고 부르면서 지도를 그린 사람은 백제 도래인 행기(行基)라는 승려였다. 행기는 일본 고대사회에 유명한 인물이었다. 일본 고대불교의 대승려로서 나라(奈良)의 동대사(東大寺)를 창립하였고, 토목공사 등 농사짓는 방법이라든가 새로운 기술을 전하면서 일본 고대국가에 기여한 바가 큰 인물이었다.
행기는 일본 열도를 다니면서 포교를 하면서 발로 밟으면서 직접 눈으로 보고서 최초로 ‘일본도(日本圖)’라는 지도를 만들어 낸 인물이었다. 그가 만든 지도에 ‘雁道, 雖有城非人, 新羅國, 五百六十六國’이라고 기록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안도’에는 사람이 살지 않은 곳이고 독도는 신라 땅이며, 신라는 566군이 있다고 기록한 것이다. 이것이 일본 최초의 지도이고 당시 조선이나 중국에서도 없었던 시대의 최고 오래된 지도였다.
행기가 만든 ‘일본도’는 지금 동경(東京) 가네쟈와 문고(金澤文庫藏)에 소장되었고 일본에서도 아주 유명한 교토 니와지(仁和寺) 사찰에도 보관되어 있다. 그리고 이 지도를 보고 1662년 9월에 제작한 부상국지도(扶桑國之圖)도 있다.
이 지도에도 그동안 독도를 ‘안도’라고 했고 일본에서 최초로 서양 측지 법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제작자는 교토의 테라마치 니죠(寺町二条)에 사는 데라다 스게헤이헤(寺田重兵衛)이다. 제작자는 원래 서양학을 전공한 사람이고 또는 지방사를 많이 연구한 자이다.
그러니 7세기부터 17세기 까지 신라 땅이었다는 것을 두 지도를 보아도 알 수 있다. 고대 일본인들은 ‘안도’에서 기러기들이 먼 해상에서 날아 올 때 독도에서 쉬어서 왔고 독도를 거처 일본에 올 때 바다에서 쉬기 위해 나뭇잎을 물고 날아 왔다는 전설이 있다.
독도에서 날아온 기러기들은 한 철을 일본에서 지내면서 병들어 죽는다든가 사고로 죽고 돌아가지 못한 기러기도 꽤 많았다. 죽은 기러기들을 위해 오늘날 까지 위령제를 지내는 풍속이 남아 있다. 일본 열도에서도 독도를 마주보는 시마네현(島根縣) 사람들이 제를 올린다고 한다. 죽은 기러기들을 추모하는 풍속을 카모후로(雁風呂)라고 한다. 즉 사시 철(봄, 여름, 가을, 겨울) 목욕탕에 계절에 따라 나뭇가지 잎을 욕실에 넣어 목욕하는 풍속을 말한다.
필자는 왜 이 카모후로를 지내는 가를 물었다. 그들은 옛날 이 지방의 풍속으로서 죽은 기러기들을 위해서 고대로부터 축제로 지내고 우리나라 독도 (일본은 竹島) 를 향해 손을 모아 절을 한다고 한다. 독도를 두고 일본인들은 고대에서는 ‘안도’라는 명칭이 붙었다는 것을 이번 지도 조사에서 알게 되었고, 독도의 최초의 명칭은 ‘안도’ 즉 새들의 섬이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나라는 독도를 신라 지증왕 때부터 우산국(于山國)이라 했는데 일본은 고대로부터 17세기까지는 ‘기러기 섬’이라 했다는 것을 일본사람들도 아는 사람은 알고 있다. 일본 문부과학성에서 지금 사용하는 중학교 지리, 공민 교과서에 죽도(독도)는 일본 영토라고 기술된 것이 몇 권 되지 않은 것에 불만을 가지고 앞으로 14권 모두가 일본영토로 기술하도록 교과서 편찬위원회에 지시한 사실이 드러났다.
지금 일본 중학교 교과서 14권 중 4권은 ‘독도는 죽도이고 일본영토’라고 기술되어 있지만 다른 10권은 ‘일본 해안에 있는 죽도는 한국과 일본 간에 분쟁지역으로 남아있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이렇게 가끔 또 자기네 땅이라 하니 일본나라의 속내를 다시 드러내는 것이다.
김문길(부산외대 교수) 일본 사람들은 독도를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렀던 것을 알 수 있다. 아주 옛날 7세기부터  독도는 ‘안도’라고 불렀다. 다시 말해서 기러기들이 시베리아로부터 일본에 건너올 때 쉬었다가 오는 곳이 독도였다. 그래서 고대 일본인들은 독도를 ‘안도’라고 불렀다.
독도를 ‘안도’라고 부르게 된 시기는 7세기였다. 독도를 ‘안도’라고 부르면서 지도를 그린 사람은 백제 도래인 행기(行基)라는 승려였다. 행기는 일본 고대사회에 유명한 인물이었다. 일본 고대불교의 대승려로서 나라(奈良)의 동대사(東大寺)를 창립하였고, 토목공사 등 농사짓는 방법이라든가 새로운 기술을 전하면서 일본 고대국가에 기여한 바가 큰 인물이었다.
행기는 일본 열도를 다니면서 포교를 하면서 발로 밟으면서 직접 눈으로 보고서 최초로 ‘일본도(日本圖)’라는 지도를 만들어 낸 인물이었다. 그가 만든 지도에 ‘雁道, 雖有城非人, 新羅國, 五百六十六國’이라고 기록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안도’에는 사람이 살지 않은 곳이고 독도는 신라 땅이며, 신라는 566군이 있다고 기록한 것이다. 이것이 일본 최초의 지도이고 당시 조선이나 중국에서도 없었던 시대의 최고 오래된 지도였다.
행기가 만든 ‘일본도’는 지금 동경(東京) 가네쟈와 문고(金澤文庫藏)에 소장되었고 일본에서도 아주 유명한 교토 니와지(仁和寺) 사찰에도 보관되어 있다. 그리고 이 지도를 보고 1662년 9월에 제작한 부상국지도(扶桑國之圖)도 있다.
이 지도에도 그동안 독도를 ‘안도’라고 했고 일본에서 최초로 서양 측지 법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제작자는 교토의 테라마치 니죠(寺町二条)에 사는 데라다 스게헤이헤(寺田重兵衛)이다. 제작자는 원래 서양학을 전공한 사람이고 또는 지방사를 많이 연구한 자이다.
그러니 7세기부터 17세기 까지 신라 땅이었다는 것을 두 지도를 보아도 알 수 있다. 고대 일본인들은 ‘안도’에서 기러기들이 먼 해상에서 날아 올 때 독도에서 쉬어서 왔고 독도를 거처 일본에 올 때 바다에서 쉬기 위해 나뭇잎을 물고 날아 왔다는 전설이 있다.
독도에서 날아온 기러기들은 한 철을 일본에서 지내면서 병들어 죽는다든가 사고로 죽고 돌아가지 못한 기러기도 꽤 많았다. 죽은 기러기들을 위해 오늘날 까지 위령제를 지내는 풍속이 남아 있다. 일본 열도에서도 독도를 마주보는 시마네현(島根縣) 사람들이 제를 올린다고 한다. 죽은 기러기들을 추모하는 풍속을 카모후로(雁風呂)라고 한다. 즉 사시 철(봄, 여름, 가을, 겨울) 목욕탕에 계절에 따라 나뭇가지 잎을 욕실에 넣어 목욕하는 풍속을 말한다.
필자는 왜 이 카모후로를 지내는 가를 물었다. 그들은 옛날 이 지방의 풍속으로서 죽은 기러기들을 위해서 고대로부터 축제로 지내고 우리나라 독도 (일본은 竹島) 를 향해 손을 모아 절을 한다고 한다. 독도를 두고 일본인들은 고대에서는 ‘안도’라는 명칭이 붙었다는 것을 이번 지도 조사에서 알게 되었고, 독도의 최초의 명칭은 ‘안도’ 즉 새들의 섬이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나라는 독도를 신라 지증왕 때부터 우산국(于山國)이라 했는데 일본은 고대로부터 17세기까지는 ‘기러기 섬’이라 했다는 것을 일본사람들도 아는 사람은 알고 있다. 일본 문부과학성에서 지금 사용하는 중학교 지리, 공민 교과서에 죽도(독도)는 일본 영토라고 기술된 것이 몇 권 되지 않은 것에 불만을 가지고 앞으로 14권 모두가 일본영토로 기술하도록 교과서 편찬위원회에 지시한 사실이 드러났다.
지금 일본 중학교 교과서 14권 중 4권은 ‘독도는 죽도이고 일본영토’라고 기술되어 있지만 다른 10권은 ‘일본 해안에 있는 죽도는 한국과 일본 간에 분쟁지역으로 남아있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이렇게 가끔 또 자기네 땅이라 하니 일본나라의 속내를 다시 드러내는 것이다.
김문길(부산외대 교수) 일본 사람들은 독도를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렀던 것을 알 수 있다. 아주 옛날 7세기부터  독도는 ‘안도’라고 불렀다. 다시 말해서 기러기들이 시베리아로부터 일본에 건너올 때 쉬었다가 오는 곳이 독도였다. 그래서 고대 일본인들은 독도를 ‘안도’라고 불렀다.
독도를 ‘안도’라고 부르게 된 시기는 7세기였다. 독도를 ‘안도’라고 부르면서 지도를 그린 사람은 백제 도래인 행기(行基)라는 승려였다. 행기는 일본 고대사회에 유명한 인물이었다. 일본 고대불교의 대승려로서 나라(奈良)의 동대사(東大寺)를 창립하였고, 토목공사 등 농사짓는 방법이라든가 새로운 기술을 전하면서 일본 고대국가에 기여한 바가 큰 인물이었다.
행기는 일본 열도를 다니면서 포교를 하면서 발로 밟으면서 직접 눈으로 보고서 최초로 ‘일본도(日本圖)’라는 지도를 만들어 낸 인물이었다. 그가 만든 지도에 ‘雁道, 雖有城非人, 新羅國, 五百六十六國’이라고 기록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안도’에는 사람이 살지 않은 곳이고 독도는 신라 땅이며, 신라는 566군이 있다고 기록한 것이다. 이것이 일본 최초의 지도이고 당시 조선이나 중국에서도 없었던 시대의 최고 오래된 지도였다.
행기가 만든 ‘일본도’는 지금 동경(東京) 가네쟈와 문고(金澤文庫藏)에 소장되었고 일본에서도 아주 유명한 교토 니와지(仁和寺) 사찰에도 보관되어 있다. 그리고 이 지도를 보고 1662년 9월에 제작한 부상국지도(扶桑國之圖)도 있다.
이 지도에도 그동안 독도를 ‘안도’라고 했고 일본에서 최초로 서양 측지 법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제작자는 교토의 테라마치 니죠(寺町二条)에 사는 데라다 스게헤이헤(寺田重兵衛)이다. 제작자는 원래 서양학을 전공한 사람이고 또는 지방사를 많이 연구한 자이다.
그러니 7세기부터 17세기 까지 신라 땅이었다는 것을 두 지도를 보아도 알 수 있다. 고대 일본인들은 ‘안도’에서 기러기들이 먼 해상에서 날아 올 때 독도에서 쉬어서 왔고 독도를 거처 일본에 올 때 바다에서 쉬기 위해 나뭇잎을 물고 날아 왔다는 전설이 있다.
독도에서 날아온 기러기들은 한 철을 일본에서 지내면서 병들어 죽는다든가 사고로 죽고 돌아가지 못한 기러기도 꽤 많았다. 죽은 기러기들을 위해 오늘날 까지 위령제를 지내는 풍속이 남아 있다. 일본 열도에서도 독도를 마주보는 시마네현(島根縣) 사람들이 제를 올린다고 한다. 죽은 기러기들을 추모하는 풍속을 카모후로(雁風呂)라고 한다. 즉 사시 철(봄, 여름, 가을, 겨울) 목욕탕에 계절에 따라 나뭇가지 잎을 욕실에 넣어 목욕하는 풍속을 말한다.
필자는 왜 이 카모후로를 지내는 가를 물었다. 그들은 옛날 이 지방의 풍속으로서 죽은 기러기들을 위해서 고대로부터 축제로 지내고 우리나라 독도 (일본은 竹島) 를 향해 손을 모아 절을 한다고 한다. 독도를 두고 일본인들은 고대에서는 ‘안도’라는 명칭이 붙었다는 것을 이번 지도 조사에서 알게 되었고, 독도의 최초의 명칭은 ‘안도’ 즉 새들의 섬이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나라는 독도를 신라 지증왕 때부터 우산국(于山國)이라 했는데 일본은 고대로부터 17세기까지는 ‘기러기 섬’이라 했다는 것을 일본사람들도 아는 사람은 알고 있다. 일본 문부과학성에서 지금 사용하는 중학교 지리, 공민 교과서에 죽도(독도)는 일본 영토라고 기술된 것이 몇 권 되지 않은 것에 불만을 가지고 앞으로 14권 모두가 일본영토로 기술하도록 교과서 편찬위원회에 지시한 사실이 드러났다.
지금 일본 중학교 교과서 14권 중 4권은 ‘독도는 죽도이고 일본영토’라고 기술되어 있지만 다른 10권은 ‘일본 해안에 있는 죽도는 한국과 일본 간에 분쟁지역으로 남아있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이렇게 가끔 또 자기네 땅이라 하니 일본나라의 속내를 다시 드러내는 것이다.
김문길(부산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