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redi 10 juin 2009

“아 처절한 이 광경!…” 6·25 참상 신문기록 책으로 / 동아일보 / 009-0(6é(

본보 등 1950∼1953년 지면 내달 영인본 출간
정진석 교수 “신문용지 피란 짐에 얹어와 인쇄”

“아 처절한 이 광경! 병든 늙은이들까지 지금 지팡이로 동결한 한강 얼음판 위를 두들기며 남으로 향하고 있고 어린 아기를 등에 업고 머리에 보따리를 이은 아낙네들이 한 손으로 큰 아기를 잡아당기며 나무다리를 건너고 있다.”(‘서울 최종열차’, 동아일보 1951년 1월 10일자)

6·25전쟁 1·4후퇴 당시 1월 3일까지 서울에 남아 현장을 지키면서 전란의 참상을 기록한 최흥조 기자의 기사다. 이 기사는 6일 뒤 부산에서 속간된 10일자 2면에 실렸다. 이처럼 6·25전쟁 당시 날아드는 총탄에도 펜을 꺾지 않았던 동아일보의 지면(1950년 10월 4일∼1953년 12월 31일자)이 영인본으로 나온다.


이는 언론사 연구의 권위자인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70·사진)가 LG상남언론재단의 의뢰를 받아서 정리한 자료다. LG상남언론재단은 2억 원의 예산을 들여 1950년 9·28 서울 수복 이후 1953년 말까지 발간된 동아일보를 비롯해 조선일보 서울신문 경향신문을 ‘6·25전쟁 기간 4대신문 영인본’으로 묶어낼 예정이다.

정 교수는 “동아일보는 1·4후퇴 6일 뒤인 1월 10일 부산에서 신문을 속간했는데 전쟁 초기 갑작스러운 피란으로 3개월간 신문을 내지 못한 일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부산의 민주신보사에 미리 인쇄를 부탁해서 가능했던 일”이라며 “신문 용지 수급도 어려울 것으로 짐작하고 동아일보 사원들이 서울 을지로 창고에 쌓아둔 용지를 피란 짐에 얹어 가져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이번 영인본 작업을 위해 지난해 5월부터 1년간 각 신문사가 소장한 신문 제본과 마이크로필름을 수집해 대조했으며 지령이 선명하지 않은 일부 지면의 발행일도 검증했다. 신문마다 700쪽 분량의 타블로이드판 크기로 세 권씩 내며 국공립 도서관과 대학 도서관, 해외 한국학연구소 등에 배포한다. 정 교수는 LG상남언론재단의 의뢰로 광복 직후부터 5년간 발행된 동아일보 등 4개 일간지의 영인본을 2005년 펴내기도 했다.

“신문은 전쟁뿐 아니라 그날 일어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국제 뉴스를 모두 보도합니다. 역사를 복원하는 1차 사료라는 의미가 크죠. 영인본은 통시적으로 사건의 앞뒤 맥락을 살피거나 같은 날짜의 신문들을 비교할 수 있어 연구에 활용하기에도 수월합니다.”

LG상남언론재단은 6월 18일 오후 6시 반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출판기념회를 갖는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