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redi 30 janvier 2008

욕설로 풀어본 한국인의 자화상 - 중앙일보

화냥년과 호로 상놈의 시대는 가버렸다. 당연히 유전적 의미에서 후레자식도 사라졌다. 한반도에서만이 아니라 제 나라에서도 청(淸)은 힘을 잃어버렸다. 다만 욕은 왕이 무릎 꿇은 치욕적인 삼전도(三田渡) 굴욕을 지금껏 잊지 않고 있다. 환향(還鄕)녀와 호로(胡虜)자식이 호란(胡亂)이 남긴 유산이라는 건 널리 아는 대로다.

욕설은 단지 상스럽고 천박한 비어(卑語)가 아니다. 욕설은 사회를 민중언어로 반영한다. 압축적으로 격변해온 한국 근대사는 욕 또한 창조를 거듭했다.

이 마에 먹물 새기는 경칠 놈, 사지를 찢을 육시할(럴) 놈, 다섯 토막 낼 오살할 놈 등은 1894년 갑오경장 무렵 욕의 구체성이 소멸해 긴장감이 한결 떨어지게 되었다. 주리를 틀 놈은 비공식적으로 유지되어 1980년대까지 인권을 말살하는 현장에서 사용되었다. 명예형인 조리돌릴 놈은 5·16 쿠데타 직후 ‘나는 깡패입니다’라는 현수막 아래를 행진한 ‘동카포네’ 이정재 무리를 마지막으로 더는 선보이지 않았다. 오랏줄을 질 오라질은 포승으로 남아 있다. 이들은 다 형벌에서 비롯된 욕설이다...

... 인터넷 시대에 등장한 개똥녀, 된장녀 따위는 모던걸에서 보듯 여성비하와 소비책임을 전가하는 남성중심적 욕설의 전형이다. 근래 나온 ‘강북스럽다’는 소수가 다수를 업신여기는 일을 온당화하려는 그릇된 발상에 말미암고 있다.

욕 설의 목적은 상대를 비하·저주하고, 이를 통해 일반적으로 지배자를 자기와 동일시하려는 일상적 언어투쟁이다. 신성함을 해체해서 끌어내리고자 하는 도전이다. 20세기 한국 욕설은 외세·권위주의·차별 등 억압적 일상을 반영한다. 욕이 그저 상스러운 것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역설적으로 욕설은 이렇듯 한국 사회와 사람의 역동성을 방증하고 있다.

글 서해성(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