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udi 29 janvier 2009

“탈북자 5만 명의 고통, 한 사람이라도 만나 들어보라” - 중앙일보 / 2009-01-23

[김환영 기자의 글로벌 인터뷰]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북한 탈출’ 쓴 톰 오닐 수석 기자

미국 사람이 이사할 때 다른 건 다 버려도 성경책과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반드시 챙긴다는 이야기가 있다. 1888년 창립된 내셔널 지오그래픽 협회가 발행하는 이 잡지는 똑똑한 사람들, 오피니언 리더들이 보는 잡지로 정평이 나 있다. 협회 창설의 목표는 ‘지리 지식의 보급’이다. 여기서 지리 지식은 넓은 의미다. 이 잡지의 내용은 자연·과학·역사·사회 등과 관련된 내용을 포괄한다.

내 셔널 지오그래픽은 2월 1일 발매될 2월호에서 ‘북한 탈출(Escape from North Korea)’이라는 제목으로 탈북자 문제를 26쪽에 걸쳐 다뤘다. 미국 정가와 지성계에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잡지인 만큼 파장이 예상된다. 다른 매체와 마찬가지로 내셔널 지오그래픽도 기사 내용과 발행 시점을 영향력 극대화 차원에서 결정한다. 기사 발행 시점이 버락 오바마 행정부 출범과 맞물려 북미관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다.

‘ 북한 탈출’ 기사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수석 기자로 나이지리아 석유, 일본 사무라이, 그림 형제 등 다양한 주제를 다뤄온 톰 오닐이 썼다. 오닐은 2003년 한국전쟁 종전 50주년을 맞아 ‘비무장지대(DMZ)’ 기사를 썼다. 신혼부부로 가장한 오닐과 부인 이소영씨는 탈북자 3명이 천기원 목사가 설립한 두리하나선교회의 도움으로 중국을 출발해 라오스~태국을 거쳐 한국에 도착하는 과정을 동행 취재했다.

오닐의 부친은 한국전쟁 중 북한에서 미군 포로 생활을 하다 사망했다. 그래서 오닐은 각별한 사명감으로 취재에 임했다고 한다. 워싱턴 DC 인근에 사는 오닐 수석 기자와 전화로 인터뷰 했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한국 사람은 탈북자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으나 일반 시민이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다. 게다가 최근 경제위기로 탈북자 문제를 걱정할 여유가 없다. 탈북자 문제에 대해 한국 사회가 보다 적극적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 탈북자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중국에 머물고 있는 5만 명 이상의 탈북자는 심각한 위협에 처해 있다. 그들 중 75%가 여성이며 상당수가 구금 상태에서 온라인 음란 채팅 등의 힘든 일을 하며 연명하고 있다. 현재까지 1만500명, 매년 2000명의 탈북자가 한국에 오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한국 사회 내에서도 고립돼 있으며 아직도 두려움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다. 동포가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 한국 사회가 보다 깊게 공감하고 많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대화가 필요하다. 한국인과 만나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탈북자들의 고립감과 두려움을 치유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탈북자 문제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은 어떻게 나올 것인가.

“ 오바마는 탈북자 문제에 이미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지난해 5월 재미 한국 기독교 단체에 서한을 보내 탈북자들이 국제법에 따라 인권을 보장받고 정당한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다. 오바마가 공언해 온 대로 북·미관계 정상화를 위한 대화의 전제조건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는 북핵 문제뿐만 아니라 인권 문제가 포함된 포괄적 협상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시대를 맞아 중국은 탈북자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 온 세계가 중국을 주시하고 있다. 중국은 투명하게 자국 내 인권 문제를 처리해야 할 입장에 있다. 이번 기사는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 즈음에 실어 탈북자 문제를 중국의 인권 문제 차원에서 제기할 예정이었으나 일정이 늦어졌다. 중국은 체면을 중시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탈북자 문제를 유엔이 모니터링하는 것을 원할지 모른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인권외교는 그리 인기 있는 정책이 아니었다.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문제로 인권이 중대 사안으로 급부상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행정부에선 미국의 도덕적 위상이 훼손됐다. 인권 문제는 미국이 위상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제기될 수 있다.”

-‘북한 탈출’ 기사는 어떤 파장을 일으킬 것인가.

“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영향력 있는 매체인 데다 본사가 워싱턴DC에 있다. 관료와 상·하원 의원들이 읽는 잡지다. 특히 환경·인권 분야 기사는 영향력이 크다. 우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심각하게 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김정일은 미국에서 코미디 프로의 소재다. 그가 지닌 위험성을 일반 미국인은 잘 모른다. 그가 통치하는 북한에는 30만 명의 정치범이 수용소에 수감돼 있다. 이번 기사는 어떤 현상을 추상적으로 다루고 있는 게 아니라 3명의 실존 인물을 통해 생생한 이미지를 전달하고 있다. 미국인은 사람 이야기에 관심이 높다. 언론이 여론을 조성해 탈북자 문제를 쟁점화하면 북한 인권·탈북자 문제를 전담하는 특사가 임명될 수도 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매달 세계 각국에서 31개판 1000만 부가 팔리는 잡지다. 탈북자 문제가 세계적 공론의 장으로 나오게 됐다. 나는 이 기사와 관련해 라디오 등 언론 매체와 인터뷰 일정이 잡혀 있다.”

-기사가 악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 진실이 감춰졌을 때 그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 거의 항상 더 좋은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 언론매체의 역사가 말해 주고 있다. 물론 탈북자나 탈북자를 돕는 기독교 선교단체 등 그 누구에게도 피해가 없도록 최선을 다했다. 불행히도 탈북자들이 처한 곤경은 더 이상 나빠질 것이 없다는 게 현실이다. 중국의 경우 해외 언론이 어떤 문제를 다뤄 주기를 바라는 경향도 있다.”

-이번 기사에서 부인인 이소영씨가 수행한 역할은.

“내 처가 없었으면 이 기사도 나올 수 없었다. 그는 우리 모두를 결속하는 역할을 했다. 탈북자 3명과 선교단체 관계자들과 신뢰를 쌓는 데 크게 기여했다. 내가 키 큰 서양인이라서 그런지 탈북자들은 처음에 나를 무서워했다.”

-한국에 대한 다른 기사를 준비 중인지.

“ 산삼에 대해 다룰 예정이다. 한국이 개방적이며 생동감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 작가들도 한국을 취재하는 것을 좋아한다. 한국에 대한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관심은 꾸준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바 있는 편집장도 있었다. 현 편집장인 크리스 존스도 북한 취재를 성사시키기 위해 여러 번 시도했다. 최근 중국의 부상에 따라 미국인은 중국뿐만 아니라 그 주변 국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됐다.

요즘은 미국에서 음식·영화 등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일본 문화에 대한 관심을 추월하는 경향마저 있다. 미국과 한국의 관계는 군사·안보 문제에 집중되던 시대가 가고 이제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공통의 가치를 공유하는 관계로 발전했다.”

김환영 기자·스탠퍼드대 정치학 박사 whanyung@joongang.co.kr

“한국 민족주의, 흑백논리 숨어있다” - 중앙일보 / 2009-01-21

민족에게 민족주의는 가장 강렬한 ‘자아 인식’인 동시에 처절한 ‘피아(彼我) 인식’이다. 19세기 외세의 위협, 20세기 식민주의와 동족상잔을 겪으며 ‘민족’의 이름으로 적과 동지를 가르는 피의 전선(戰線)이 그어졌다. 신기욱(사진)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의 민족주의가 식민지 극복과 근대 국가 형성에 많은 공헌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다양한 견해와 토론을 제약하고 흑백논리적 역사의식을 가져온 점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또 그는 “파시즘적 민족주의 국가로서 북한은 과거 일본의 ‘천황제 군국주의’ 국가와 가장 유사하다”고 평가했다.

신 교수는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APARC) 소장도 맡고 있다. 한국에서 대학을 나와 미국 주류 학계에 자리 잡은 학자다. 한국 민족주의의 안과 밖을 균형 있게 판단할 수 있는 입장에 서 있다. 그의 영문 저서가 『한국 민족주의의 계보와 정치』(창비)란 제목으로 번역돼 나온다. 잠시 한국을 찾은 신 교수를 21일 만났다.

-한국의 강렬한 민족주의가 보수·진보 논쟁의 사상적 결핍을 낳았다고 지적했다.

“ 한국 사회가 근대로 이행할 때 다양한 사상들이 들어왔다. 서구 자유주의 사상도 있었고, 안중근의 ‘동양평화론’ 같은 범아시아주의도 있었다. 하지만 제국주의 위협과 식민지를 거치며 뿌리 내리지 못했다. 대신 민족주의가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한국에서 민족주의는 역사적 필연이 아니라 사회·역사적 산물이다. 자유주의의 뿌리를 갖고 있는 서구의 진보·보수와 달리 한국의 보수·진보는 민족주의에 과도하게 기대어 그 힘을 발휘했다.”

-어쨌든 ‘민족주의’가 승리한 사상으로서 살아 남은 것 아닌가.

“100 여 년 전 문명 개화론·동양주의·민족주의의 경쟁 구도는 지금의 세계화론, 동북아 공동체론, 민족주의와 유사하다. 역사적 상황이 바뀌면 국가 전략도 달라져야 한다. 한국 사회에선 과도한 민족주의가 보수·진보의 사상적 빈곤을 초래했다. 보수는 ‘민족 번영’을 위해 근대화를 추구했지만 자유주의의 기반이 약해 독재를 지지했다. 진보는 정권과 민족주의 선명성 경쟁을 하는 과정에서 친북·반미주의로 기울기도 했다. 보수·진보 모두 시민적·보편적 자유주의가 결여돼 있다.”

-민족주의는 남북 양 체제에서 역사 연구를 왜곡했다고 했는데.

“ 민족주의 담론은 식민사관 극복이라는 당위성에서 출발했다. 그 긍정적 역할의 이면에는 다양한 견해를 억압하는 흑백논리가 숨어 있다. 식민주의를 착취와 저항의 이분법적 구도로만 봐선 당시 식민지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읽어낼 수 없다. 북한의 경우 민족주의가 주체사상으로 연결돼 교조적 역사 인식에 빠졌다. 북한 체제는 일본 군국주의처럼 ‘천황’의 자리에 ‘김일성’이 놓인 파시즘적 ‘가족국가’라고 할 수 있다. 김정일 이후로는 아마 김씨 집안을 상징적인 지도자로 남겨두고 군부가 실권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전전(戰前)의 일본과 더 비슷해진다.”

-다문화 사회에서 필요한 ‘민족주의’는 어떤 건가.

“ 혈통 중심의 민족 개념을 재고해야 한다.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한국 사회 특유의 역동성을 유지할 국가 전략이 필요하다. 외국인 이주민과 혈통을 떠나 민주국가의 동등한 시민으로서 함께 살아가는 ‘시민적 민족 정체성’이 필요하다. 통일 이후의 사회통합 논리이기도 하다.”

-APARC 소장으로서 오바마 시대의 한·미 관계는 어떻게 전망하나.

“북한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잊혀지는 것’이다. 경제위기, 중동 사태 등으로 북한 문제는 오바마 정부의 우선 순위에서 밀릴 가능성이 크다. 단기적으로는 북한이 도발을 선택할 우려가 있다. 한·미 양국은 앞으로 4년간 대통령의 임기가 일치한다. FTA 비준 등 첨예한 문제가 있지만 양국 관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배노필 기자

미네르바현상은 시대상의 반영 - 오마이뉴스 / 2009-01-08

미네르바의 진짜 죄목, 권력의 시샘이다
범법자를 양산하는 정권
출처 : 미네르바의 진짜 죄목, 권력의 시샘이다 - 오마이뉴스

이래헌 (sasarang)

미네르바현상은 시대상의 반영

훗날 읽게 될 한국사에서 2008년 한국의 경제대통령으로 불렸던 미네르바현상은 어떻게 기록되어 있을 것인가?

CEO 출신 대통령이나 경제 각료 그리고 국내외의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최첨단 정보와 시스템으로도 예측하지 못한 거시경제의 동향을 일개인이 족집게처럼 예측한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결과만 놓고 본다면 미네르바의 경제에 대한 예측은 과학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신기(神氣)에 가깝다. 마치 기상청이 수많은 기상전문가와 수퍼컴퓨터로도 예측하지 못한 엄청난 자연재해를 야생 동물들이 먼저 느끼고 대피에 나선 격이라고나 할까?

세계의 정보망을 연결한 거미줄(WWW), 특히 정보화에 관한 인프라가 가장 잘 갖추어진 한국의 각 사이트 마다 사회 전 분야에 대한 갖가지 게시물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미네르바는 단지 수많은 네티즌 중의 한사람이며 그의 놀랍도록 정확한 예측 역시 수많은 게시물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물론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그의 예측이 소 뒷발질에 쥐 잡은 것이거나 우연의 일치 등으로 폄훼하기 위함이 아니다. 단지 아무리 복잡한 변수가 난마처럼 엮여 있다할지라도 그 방법이 정확한 분석에 의한 결과물이던 놀라울 만큼 뛰어난 감각이던간에 모든 변수를 꿰뚫고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이 한명쯤은 있는 것이다.

월드컵 모든 경기의 승패를 맞추었다던지 주요 스포츠 경기에서 승패 뿐 아니라 스코어까지 정확하게 맞추어 거액의 당첨금을 받는 일 등이 이와 비슷한 사례일진데, 일반인에게 있어서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일은 틀리는 것이 본전, 맞추면 그야말로 대박을 맞는 일이다. 이러한 예를 드는 것이 조금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이 미네르바의 경제에 대한 예측이 스포츠 승패를 맞추는 것처럼 우연한 적중이라고 주장하고자 하는 바가 아니므로 이점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2008년 한국 사회에서 미네르바 신드롬이 일어난 것이 바로 이런 까닭이다. 이명박 정권은 유가폭등과 환율폭락 같은 사태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경제 위기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하며 어떤 방법으로 탈출할 것인지에 대해 신뢰할 만한 대책을 전혀 제시하지 못한 채 대통령의 발언은 “위기다.” “아니다”를 오락가락 했다가 “세계에서 가장 먼저 경제위기 탈출하겠다.” 같은 허황된 발언으로만 일관하니 불신이 극에 달한 대중은 구체적인 자료를 조목조목 제시하며 차분하게 앞날을 예측하는 미네르바의 주장에 더 큰 신뢰를 가지게 된 것이다.

저지르지도도 않은 죄를 미리 처벌하기로 한 검찰

보도에 의하면 미네르바로 추정되는 인물이 지난 6일 체포되었다고 한다. 검찰은 그가 올린 수 백 개의 글을 검토한 결과 지난달 29일에 올린 글에서 "정부가 긴급업무명령을 통해 금융기관과 수출입 관련 주요 기업에 달러 매수를 금지하도록 했다"고 주장한 부분을 정보통신기본법상 허위사실 유포 행위로 보고 처벌하겠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여기에 정황이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검찰이 미네르바를 검거하기 위해 추적을 시작한 것은 보다 오래전이었다.

미네르바가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검찰의 법리가 맞다거 하더라도 미네르바가 허위사실을 유포한 것은 12월 29일인데 문제의 글을 올리기 훨씬 전인 11월 3일 김경한 법무장관은 이미 그에 대한 수사를 시사했고, 그때부터 검찰은 그에 대한 추적을 시작한 것으로 보여 진다. 검찰의 미네르바에 대한 추적과 처벌과정이 여타 시국사건들과 마찬가지로 [선 처벌결정 후 혐의 입증]의 전형으로 기획수사나 표적수사의 혐의를 짙게 하는 부분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검찰이 왜?”라는 질문은 상투적이다. 모든 기획수사나 표적수사가 그렇듯이 권력의 구미에 맞으면 집요하게 추적하는 것이 권력의 주구들이 가지는 일반적인 관성이기 때문이다. 그의 학력이나 경력 연령 등은 현상의 본질과 무관하다. 미네르바 현상의 본질은 정부가 가져야 할 경제 정책의 신뢰를 한 개인이 독점한 것에 대한 권력의 시샘이며 보복이고, 정부 정책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훔치기 위한 치졸한 기망(欺罔)이기도 한 것이다.

도적을 양산하는 사회

조선 명종 시대를 뒤흔든 임꺽정(林巨正)은 백정 출신이었다. 그가 처음부터 도적이 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젊은 시절에 천대받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구국을 위한 일념으로 왜구 토벌을 위한 전투에 의병으로 참가하기도 했었다. 뛰어난 무용으로 전투에서 크게 활약한 임꺽정은 승전 후 공을 나누는 자리에서 큰 공을 세우고도 천한 백정이라는 이유로 오히려 멸시를 받았다. 백정 신분으로는 나라를 위해 싸울 수도 없었던 것이다. 훗날 그가 황해도와 경기도 황해도 강원도 일대를 장악하고 관청을 습격하는 등 맹활약 했지만 관군은 3년 만에야 겨우 이를 진압할 수 있었다.

명종실록에 사가(史家)들은 임꺽정의 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도적이 성행하는 것은 수령의 가렴주구 탓이며 수령의 가렴주구는 재상이 청렴하지 못한 탓이다. 지금 재상들의 탐오가 풍습을 이루어 끝이 없기 때문에 수령은 백성의 피와 땀을 짜내어 권세가를 섬기고 돼지와 닭을 마구 잡는 등 못하는 짓이 없다. 그런데도 곤궁한 백성들은 하소연할 곳이 없으니 도적이 되지 않으면 살아갈 길이 없는 형편이다. 그러므로 너도나도 스스로 죽음의 구덩이에 몸을 던져 요행과 겁탈을 일삼으니, 이 어찌 백성의 본성이겠는가? 진실로 조정이 청명하여 재물만을 좋아하지 않고 어진 사람을 가려서 수령으로 임명한다면, 칼을 잡은 도적이 송아지를 사서 농촌으로 돌아갈 것이니 어찌 이토록 거리낌없이 사람을 죽이겠는가? 그렇게 하지 않고 군사를 거느리고 도적을 뒤쫓아 잡기만 한다면, 아마 잡는 대로 또 일어나 장차 다 잡지 못할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다.”

훗날 역사는 말할 것이다.

집권기간 동안 평균 7% 경제성장과 400만개의 일자리 창출 그리고 세계 7위의 경제대국을 달성하겠다는 공약으로 압도적 지지를 받아 집권했던 정권이 출범 첫해부터 공약달성은 고사하고 산업화 이후 최악의 경제 위기에 직면한 한국 사회에서 미네르바 같은 인물의 출현은 필연적이었다. 권력이 신망을 잃으면 갖가지 비약과 추측이 난무하는 것은 인지상정인데 이를 권력의 힘으로 억제하려하면 할수록 추측은 억측으로 비약하기 마련이다.

무능하고 부패한 인사를 퇴진시키고 청렴하고 능력있는 인물에게 중책을 맡긴다면 억측은 잦아들고 대중은 정부를 신뢰하게 된다. 스스로의 무능을 개선하지 않은 채 처벌만을 능사로 여긴다면 대중은 처벌하는 대로 또 다시 일어날지니 대한민국 전체 대중이 범법자가 되고 말 것이다.

출처 : 미네르바의 진짜 죄목, 권력의 시샘이다 - 오마이뉴스

아고라 경제논객 SDE "미네르바 체포, 명백한 불법" - 머니투데이 / 2009-01-08

다음 아고라에서 미네르바와 함께 이름을 날렸던 논객 SDE가 9일 미네르바 체포에 대해 "명백하게 표현의 자유에 대한 탄압"이라고 주장했다.

SDE는 이날 머니투데이와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지난해 12월 29일 글이 문제가 됐다면 여기에 대한 기획재정부의 고소 또는 고발이 있어야 한다"며 "재정부가 고소고발을 하지 않았다면 미네르바 체포는 명백한 불법"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네르바가 해당 글이 잘못됐다고 인정한 이상, 고소고발이 없다면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해야 한다"며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태는 헌법에 규정된 표현의 자유 제 21조에 의거해 불법이며 미네르바는 무죄"라고 주장했다.

같은 인터넷 논객으로서 미네르바에 대해 평가해달라는 질문에는 "미네르바의 주장은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추론해낼 수 있는 지극히 정상적인 논리"라며 "논리적으로 미네르바의 주장은 상당히 타당하다"고 답했다.

다만 "100% 사실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내용도 나중에 보면 사실이 아닌 경우가 많아 조심스럽게 행동하려고 노력한다"며 "미네르바는 나에 비해 직설적으로 표현했는데, 좀 더 깊이 생각하고 표현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인터넷 논객으로서 자기 의견을 펼치기 어려운 점이 있냐는 질문에는 "한국사회의 문화적 특성상 표현을 직설적으로 하기 어렵고, 이름이 알려지면 실제 업무에 지장이 발생하기도 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국가기관에서 직접 연락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SDE는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서 유명한 논객 가운데 한 명. 지난해 11월 서지우라는 필명으로 '공황전야'라는 제목의 책을 내기도 했다. 미네르바만큼 언론에 이름을 알리지는 않았지만, 아고라 내에서 그의 인기는 미네르바와 필적한다.

SDE는 1998년 비선형 확률제어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공학계열 연구소에서 10년째 연구원으로 몸담고 있다. 대학원 재학시절부터 꾸준히 국제경제와 파생금융상품 등 실물경제를 연구해왔고, 90년대 말부터 인터넷과 다양한 매체에 경제 관련 분석글을 기고해왔다.

SDE가 바라보는 한국 경제의 앞날도 미네르바의 시각만큼 어둡다. SDE는 "오는 11월과 12월을 제외하고는 거의 마이너스 성장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의 무제한적 금리인하와 재정적자는 4분기에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또 "2011년이나 2012년까지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의 경기가 살아날 가능성이 높지 않은 상황"이라며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현실은 내수 위축을 불러와 한국 경제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사회 ‘돈’ 인식변화 정리 - 한겨레 /2009-01-09

그것이 알고 싶다(S 밤 11시10분)=<그것이 알고 싶다>가 700회를 맞아 2부작 특집을 2주에 걸쳐 방송한다.

지난 16년 동안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다루어진 돈 관련 소재에서 드러난 우리 사회의 돈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정리하고, 2009년 돈을 주제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이는 ‘돈 철학’이 어떤 것인지 알아본다. 설문 결과 10억원 이상이면 가족, 친구와의 관계를 끊을 수도 있다고 답한 사람이 53%였다.

10일 방송되는 1부는 ‘돈 나라 사람 나라’, 17일 방송되는 2부는 ‘얼마면 만족하시겠습니까’가 각각 주제다. 1부에서는 시간이 없어 컵라면을 먹으며 쉴 새 없이 주식을 사고파는 억만장자와 일찍부터 돈에 눈을 떠 동급생들에게 사채놀이를 하고 있다는 한 초등학생, 병원비 10만원이 없어 야반도주했다가 30년이 지난 뒤 50만원을 들고 나타난 폐지 줍는 박아무개(80) 할머니 등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테마진단] 한국 사회의 거울, 미네르바 신드롬 - 매일경제 / 2009-01-08

불안감이 `확신 편향` 부채질
정치답답함이 허상을 우상화


지난 몇 달간 이름과 신분을 숨긴 채 `경제대통령`으로 불리면서 화제의 중심이 되어 왔던 인터넷 경제논객 미네르바가 30대 남성이란다. 개인적 신상도 그가 그간 밝혀 왔던 정보와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다.

미네르바는 일찌감치 몇 가지 굵직한 경제적 사안을 잘 짚어 냈다. 리먼브러더스 부실화나 환율 변동 등을 비교적 정확하게 예측하긴 했다. 그러나 기본적인 경제학 개념이 틀리기도 했고 논리적 근거 없이 내놓은 섬뜩한 예측도 있었다. 어쩌면 전문가들은 갸우뚱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사회 많은 이들은 그의 주장에 강한 신뢰감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의 주의집중력과 기억창고는 그 용량에 한계가 있다. 이런 제한된 심리적 자원으로는 완벽한 정보처리가 어렵기 때문에 때로 오류에 빠지기도 한다. 초기에 적중한 미네르바의 몇 가지 예측은 사람들 머릿속에 일종의 `가용한 정보`로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특히 인간은 여러 가지를 꼼꼼히 비교해서 판단하기보다는 떠올리기 쉬운 가용성에 이끌려 판단하고 사고하는 경향이 있다. 처음의 정확한 예측이 강렬한 인상을 주었기에 이후 주장을 판단하는 데도 이러한 인상이 작용하게 된다.

이러한 인지적 절약성은 쉽고 빠르게 옳은 판단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때론 오류에 빠지게 만든다. 이 때문에 사람들 머릿속에 미네르바는 틀린 예측보다는 정확한 예측을 내놓는 존재로 자리 잡은 이후 사람들은 그를 그대로 신뢰했던 것이다. 더욱이 인간은 믿는 바나 바라는 바를 지지하는 정보는 진위에 상관없이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믿는 반면, 그에 반대되는 것은 눈여겨볼 가치도 없다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바로 `확신 편향` 심리다. 이러한 확신 편향은 불안한 상황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공고하다고 생각했던 미국 경제 위기와 일관성 없는 경제 정책을 내세운 정부에 대한 불신은 미네르바 주장에 대한 사람들의 확신 편향을 부채질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가 이러한 비합리적 사고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함을, 오히려 그러한 편향에 휘둘림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또한 사회가 불안할수록 진실은 밝고 공식적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둡고 비공식적인 곳에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바로 `루머`의 힘이다. 물론 일반대중에게 공식적으로 전달되는 정보량이 적고 그 경로가 한정적이었던 과거에는 루머를 아는 것이 정보적 가치가 있었다. 그러나 다양한 정보가 제공되는 현대사회에서는 그 가치가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상황과 불신이 만연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공식적인 정보보다는 비공식적인 정보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방대한 정보를 시시각각 쏟아내고 그 파급 속도 역시 엄청나게 빠른 인터넷은, 근거가 모호하지만 일견 그럴 듯해 보이는 불확실한 내용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전달시킬 수 있는 환경이다. 결국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불안함은 우리를 인터넷 안에서 배회하게 만들었고 불안한 대중은 미네르바라는 허상을 우상화시켜 갔던 것이다.

그런 네티즌 반응에 힘입어 더 멋진 미네르바가 창출되어 갔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신분이 철저히 위장될 수 있었기에, 사람들은 금융계 경력을 지닌 국외 경험이 있는 50대라고 그의 경력을 포장해 가면서 그를 우상시했다. 그의 지식보다는 그의 포장이 주는 후광으로 인해 그의 주장이 더 큰 신뢰감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는 경제 위기와 정치적 답답함이 빚어낸 인터넷상 여론몰이로 휘청거리는 한국사회의 단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불신과 불안이 팽배한 사회, 공식적인 정부 주장은 못 믿으면서도 익명의 가면 뒤로 내세운 은근한 권위에는 약한 이중적인 모습,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냈던 영웅 미네르바가 지배했던 지난 한철은 이런 우리 사회의 슬픈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왠지 허탈해진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 교수]

‘한국사회 불평등 핵심고리를 천착하라’ - 한겨레 / 2009-01-12

[2009 문화현장] 이곳을 주목하라
비판사회학회 ‘불평등연구회’

“사회 전반에 걸쳐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최근 목격하는 것은 경제적 불평등의 결정력이 압도적으로 강해졌다는 것 아닌가요?”(김영미 중앙대 사회학과 박사후 연구원)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게 경제적 요인만이 아니잖아요? 오히려 불평등 구조를 재생산하는 사람들의 의식과 행위 양식에 주목해야 합니다.”(박경숙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지난 8일 저녁 서울 중앙대 교수연구동 401호. 이름마저 범상치 않은 ‘불평등연구회’의 신년 모임이 한창이다. 2008년 회계 보고와 새해 인사를 겸해 마련된 자리였지만, 양극화 문제를 두고 시작된 회원들의 대화는 어느새 치열한 논쟁으로 발전했다.

“88만원 세대론은 부풀려진 담론”
신년 모임 어느새 열띤 논쟁으로

2007년 출범 20여명 매달 정례 발표
양극화 다양한 접근·비교연구 시도

한준 연세대 교수가 말을 이었다. “최근 불평등의 심화는 금융화와 함께 자본주의 본연의 경제적 속성이 한층 적나라하게 드러난 결과로 봐야 한다”는 게 논지였다. 그러자 박경숙 교수가 다시 반론을 폈다. “이혼 가정이나 고령층에서 나타나는 빈곤을 경제적 요인만으로 설명할 수 있나요?” 이성균 울산대 교수는 “자산·소득 불평등을 확대재생산하는 교육 시스템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고, 김성훈 이화여대 교수는 “공공성·시민성의 부재가 왜곡된 시장주의를 불러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며 박 교수를 거들었다. 양보 없는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가운데 좌장 격인 신광영 중앙대 교수가 나섰다.

“신자유주의화가 진행되면서 경제적 불평등의 구조적 규정력이 강화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혼 여성과 노인층 빈곤은 경제적 현상이되, 각각 가족해체와 노동시장의 변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으니까요. 복지·사회 등 불평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의 특성을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본다면, 우리 사회 불평등 구조의 속성이 밝혀질 수 있지 않을까요?”

불평등연구회는 2007년 10월 한국비판사회학회 산하에 만들어진 연구모임이다. 외환위기 이후 심화된 양극화 문제를 소득·일자리·교육·의료 등 다양한 차원에서 접근해 보자는 취지로 사회학자와 복지 전문가, 의료인, 대학원생 등 20여 명이 모였다. 매달 정례 발표회를 열어 분야별 쟁점을 토론하고, 동아시아 국가와의 비교연구도 병행한다. 9일에는 일본 불평등학회 초청으로 신 교수와 김영미 연구원이 후쿠오카를 다녀오기도 했다. 다음달에는 미국 프린스턴대가 주관하는 세계불평등네트워크(GNI) 회의에도 참가한다.

한국 사회의 불평등은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급속히 악화됐다. 소득 불평등의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1992년 0.248에서 1997년 0.262, 2002년 0.284, 2007년 0.312로 치솟았다. 중산층 붕괴와 하향 빈곤화를 보여주는 상대적 빈곤율(소득이 중위소득의 50%에 미치지 못하는 계층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 역시 1997년 7.3%에서 2007년 13%로 배 가까이 상승했다. 비정규직 비율은 50%를 넘어선 지 오래다.

이날 모임에선 세대간 불평등의 심각성을 부각시킨 ‘88만원 세대론’이 도마에 올랐다. “과도하게 부풀려진 담론”이란 의견이 많았다. 노동시장의 ‘인사이더’에 대한 보호장치가 두터워 청년 세대의 신규 진입이 쉽지 않은 유럽과 달리, “외환위기를 계기로 일자리 보호장치가 파괴된 한국의 경우엔 불평등이 모든 세대에 걸쳐 증가하고 있다”(김영미)는 이유에서다. “젊은층이 88만원 세대라면, 고령층은 50만원 세대”(박경숙)라는 지적과 “세대간 갈등을 부추기는 우파 담론에 88만원 세대론이 이용당하고 있다”(한준)는 비판도 이어졌다. 신 교수는 “이른바 ‘아이엠에프 세대’라는 30대와 다른 세대를 비교해 보니, 실업자·비정규직 비율 모두 50·60대에 비해 낮은 편이었다”며 “88만원 세대론은 다분히 유럽적 상황에 기댄 논의”라고 꼬집었다. 우리 사회는 세대간 불평등보다 세대 내부의 양극화가 훨씬 심각하다는 얘기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아침을 열며/1월 16일] 이상한 나라의 미네르바 - 한국일보 / 2009-01-15

강신익 인제대 의대 교수

검찰이 미네르바를 구속했다. 5공 때 만들어지고 위헌 논란이 있는 전기통신법 상 허위사실을 유포한 죄란다. 그런데 기획재정부의 말에 따르면 허위사실로 적시된 외환매입 자제 요청이 없었던 것도 아니란다. 언제나 일사불란하게 정부를 두둔하던 여당 안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이 사실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웠던지 로이터 통신은 그 기사를 '이상한 소식(oddly enough)'란에 실었다고 한다.

정부 먼저 부끄러움 알아야

일반 국민이 보기에도 충분히 이상하고 우스꽝스럽다. 4일 발표된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미네르바의 구속에 반대하는 의견이 50.1%, 찬성 의견이 37.9%였다고 한다. 이 사건을 이상하게 보는 정도는 전문가일수록 더해서 기업 임원의 54%, 경영ㆍ경제학 교수의 64%, 기자의 84%가 반대했고, 오직 CEO 집단에서만 62%가 찬성 입장을 나타냈다고 한다.(세계경영연구원 조사)

이상한 짓에서는 국회도 검찰에 못지않아서, 여야가 뒤섞여 싸우는 장면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표지를 장식했다고 한다. 보다 못한 대통령께서 한 말씀 하셨다. "어떻게 이룬 민주주의인데 이렇게 국제적 경멸의 대상이 되다니 대통령으로서 정말 부끄러웠다"고. 우리 국민도 충분히 부끄럽다. 하지만 이유는 조금 다르다.

교과서에 따르면 민주주의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에서 출발한다. 지금의 정부도 국민이 뽑아준 '국민에 의한' 정부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진정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국민의' 정부인지에 대해서는 믿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번번이 국민의 뜻에 반하는 일만 밀어붙이기 때문이다. 미국산 쇠고기가 그렇고 이름만 바꾼 대운하가 그렇다. 그리고 대통령이 심히 부끄러워하는 국회의 폭력사태에 대한 대응도 그렇다.

역시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국회에서 벌어진 폭력사태의 원인에 대해 '현 정부여당이 논란이 있는 법안들을 무리하게 추진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57.1%로 '야당이 여당과 대화하지 않고 폭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라는 의견 32.7%를 훌쩍 뛰어넘었다고 한다.

대 통령의 부끄러움에 자극받은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국회폭력방지법에 대해서도 46.0%가 반대의견을 보여 찬성 36.9%를 훨씬 앞질렀다고 한다. 국회 폭력의 책임을 묻는 질문에 한나라당(30.7%)과 청와대(15.5%) 등 여권 책임이 크다는 응답이 민주당(15.6%), 민노당(1.9%) 등 야당 책임론보다 3배 가까이 높게 나왔다는 조사결과도 있다.(내일신문-한길리서치 1월 여론조사).

국회 폭력사태를 두고 "해머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때렸다"고도 했다.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정작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뿌리로부터 위협하고 있는 건 민의를 무시하고 무조건 밀어붙이기에만 능한 불도저다. 이 정부가 진정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국민을 위한, 국민의'정부라면 그 부끄러움을 자신에게로 되돌려야 마땅한 이유다.

이상한 소식은 이밖에도 많은데, 그 중 하나는 미네르바의 긴급체포가 청와대 지하 벙커에 비상경제상황실(war room)이 차려진 직후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경제를 전쟁으로 여기나?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네티즌을 상대로 전쟁을 하겠다는 건가? 하긴 네티즌의 입을 틀어막을 사이버 모욕죄를 신설하고 수구 족벌신문의 방송진출을 허용하는 등의 법안을 무더기로 통과시키는 일을 입법 '전쟁'이라고 했으니 오죽하랴.

밀어붙이기 '전쟁'은 잘못

미네르바를 구속한 검찰의 부서가 마약조직범죄 수사부라는 사실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의아해 하는 기자들에게 "마약조직범죄 수사부에 허위사실 유포 전담반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는데, 그의 행위가 허위사실 유포에 해당되는지는 논외로 치더라도 마약수사와 허위사실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 녘에 날개를 펼친다고 했다. 그 날개를 너무 일찍 편 것이 그의 죄라면 죄인지도 모르겠다. 참 이상한 나라의 미네르바다.

통계청, 미리 본 10년 후 한국사회 - AFPBB NEWS / 2009-01-21

통계청, 미리 본 10년 후 한국사회

* 2009/01/21 16:17 발신지:Seoul/한국

' 인구 감소로 군(軍) 입대자가 감소하자 정부는 무인 첨단 국방 장비 수입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붓는다. 베이비붐 세대(1955년~1963년생)가 은퇴하면서 소비는 줄고 주택 매물은 넘쳐나지만 사려는 사람은 적어 집값은 몇 년째 하락세다.

그래도 직장에서 구조조정을 당할 가능성은 적어진다. 일할 사람 자체가 줄었기 때문이다. 빈곤층으로 추락한 노인들의 자살 소식은 더 이상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통계청이 그려본 10년 후 한국 사회의 자화상이다. 통계청은 20일 '향후 10년간 사회변화 요인 분석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10년 후 한국 사회가 ①인구 감소 ②고령화와 노인 빈곤화 ③고(高)학력화 ④양극화 현상으로 요약되는 큰 사회적 변화를 겪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통계청은 저출산 현상이 지속되면서 우리나라 인구가 2018년 4934만명을 정점(頂點)으로 감소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군 입대 인구(18세 기준)는 이보다 빠른 2012년을 정점으로 줄기 시작한다. 지난 30여년간 교육과 주택, 노동시장의 주역이었던 716만명에 이르는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도 5~10년 이내에 시작된다.

이처럼 인구가 줄고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면서 내수 위축과 주택 수요 둔화, 학령 인구 감소 등 사회 곳곳에 폭넓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김영노 통계청 분석통계과장은 "일본의 경우 1990년대 베이비붐세대의 은퇴와 함께 주택 구입 세대인 35~54세 인구가 감소해 장기적인 주택 경기 침체가 초래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우리나라도 2011년 이후 35~54세 인구가 감소할 것으로 전망돼 지금부터 3년 정도 후부터 주택 경기의 구조적인 침체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인구 감소에도 불구하고 혼자 사는 '싱글족'과 독거 노인이 늘어나면서 1인 가구는 2008년 336만가구(전체 가구의 20%)에서 2018년 398만가구(21%)로 늘어날 것으로 통계청은 전망했다. 김 과장은 "향후 주택정책도 대형 주택보다는 1인 가구를 위한 소형 주택 중심으로 공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고령화의 진전은 빈곤층 증가와 노인 자살 증가로 이어질 전망이다. 2016년이 되면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14세 이하 유소년 인구보다 많아지고, 2018년에는 고령 사회(65세 인구 비중이 14% 이상)에 진입한다고 통계청은 전망했다. 60세 이상 연령대의 소득 불균형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2000년 이후 악화(2000년 0.325→2007년 0.366)되고 있어 향후 빈곤 고령층의 증가가 자살률 증가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또 대학 입학 연령대인 18세 인구는 지난해 62만9000명으로 이미 대학 입학 정원(66만7000명)을 밑돌기 시작했다. 이 같은 학령 인구의 감소는 대학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정혜전 기자 cooljjun@chosun.com
(c)조선일보

반민특위, 친일파 재산몰수 첫 확인 - 한겨레 / 2009-01-09

이기용 토지대장 흔적 발견
“실제 집행까진 단정 어려워”

1940년대 말 실질적 성과 없이 와해된 것으로 알려진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당시에 친일파의 땅을 실제로 몰수했던 기록이 처음 발견됐다.

9일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역사종합정보센터의 누리집 문헌자료를 보면, 1949년 5월13일치 <자유신문>에는 “추상같은 전 인민의 심판의 칼날은 12일 드디어 자작 이기용에게 최초로 내리게 되었다”며 ‘징역 2년6개월과 부동산 절반 이상 몰수’의 판결 내용이 기사로 실렸다. 몰수 대상인 부동산은 ‘양주군(현 양주시) 장흥면 부곡리 6○○ 번지 부근 전답 8122평이다.

실제 <한겨레>가 경기 양주시에서 이 지역 일대의 토지대장을 떼보니, 이 부동산에 대해 ‘반민법에 의거 국유재산’으로 명기돼 있었으며, 소유권자도 ‘이기용’에서 ‘국’(國)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는 반민특위가 무력하게 종결됐다는 기존의 역사 평가와 달리 초기에는 실제 재산 몰수까지 집행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에 대해 ‘친일 반민족 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쪽은 “토지대장 기록만으로 실제 법 집행이 이뤄졌다고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흥미로운 발견으로 보이며, 친일재산조사위에서도 올해 반민특위의 재산 몰수 성과에 대한 본격 조사를 벌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반민특위의 조직과 활동>(2003)이란 연구서를 낸 허종 충남대 교수는 “반민특위에 의한 실제 몰수 집행이 있었는지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며 “반민특위가 와해됐다고 봐 연구자들이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해방 직후에 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받아 1949년 1월5일 구성된 반민특위는 화신백화점 박흥식 사장을 시작으로 육당 최남선, 춘원 이광수 등 친일파를 줄줄이 체포해 초기에는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과 친일파의 방해 활동으로 반민특위는 이후 와해의 길을 걸었다. 1949년 6월4일 반민특위가 서울시경 사찰과장 최운하 등을 체포하자 이틀 뒤 50여명의 경찰관이 특위 사무실을 습격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일본만화 ‘헤타리아’ 한국 비하 논란… 24일부터 방영 파문 - 한겨레 / 2009-01-12

일본 웹툰 ‘헤타리아’가 한국을 상징하는 한 캐릭터를 비하해 네티즌들 사이에 ‘한국 민족성 훼손’논란이 일고 있다.

하지만 이를 넘어 1월 일본 어린이 채널 키즈 스테이션에서 오는 24일부터 한국이 비하된 내용을 가지고 애니메이션화 해 방영 예정으로 두고 있어 더욱 논란이다.

‘헤타리아’는 일본에서 웹툰으로 연재중인 4컷 만화로, 세계 각국을 ‘의인화’하여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만화이다.

이 만화 속에 드러나는 ‘한국 비하’는 크게 5가지.

첫번째, 일장기를 머리에 두르거나 몸에 두르는 행위

두번째, 중국의 한자를 한국어라고 우기는 행위

세번째, 한국은 중국과 형제관계

네번째, 각 나라에서 좋다고 하는 것들은 뭐든지 한국의 유산이라고 우긴다.

인터넷을 통해 올라온 짤막한 번역만화를 보면 한국이 일본 사람의 가슴을 만지며 좋아하고, 아무런 이유 없이 우리나라 만세를 외치는 등 지나치게 찌질한 형태의 캐릭터로 설정해 놓았다. 또한, 한복인지 그냥 천을 걸쳐 입은 것인지 모를 옷을 입고 있다.

분명 웹툰이기에 가슴을 만지거나 옷을 찢는 등의 모습이 연출되지만, 이같은 것은 한국이란 나라자체를 비하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한국비하’를 넘어 이 불안정한 요소들이 담긴 만화가 ‘인기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1월 일본 어린이 채널에 방영돼, 일본 어린이들에게 그릇된 역사인식을 낳을 수 있어 더욱 파문이 일고 있다.

이에 네티즌들은 방영 저지 서명 운동을 하는 등 강력하게 반발을 하고 있다. 이미 다음 아고라에서 진행 중인 방영저지 서명 운동에는 13,839명이 서명을 진행했으며, 많은 네티즌들은 이를 펌질하며 다른 이들에게 알리고 있는 상황이다.

네티즌 ‘샤카’는 “만화도 방송매체처럼 시청자를 동요시키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민감한 문제를 다루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라며 의견을 전했다.

일부 네티즌들은 “개그를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냐”, “다른 나라들 또한 찌질하게 설정되어있다”라며 반박의 의견을 내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네티즌들은 “역사를 왜곡하고 비하하는 행위를 ‘개그는 개그일 뿐’ 이라는 인식으로 보는 것부터가 잘못된 역사인식의 첫 시작”이라며 “그릇된 것은 고쳐야 하는 것이 올바르다”라고 의견을 펼치고 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이 끼치는 파장력은 매우 크다. 전 세계의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 한곳으로 치우치며 그릇된 역사를 사실인 냥 소재로 사용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윤선영 기자 happie89@naver.com

[weekly chosun] "한민족은 단일민족 아니다!" - 조선일보 / 2009-01-10

[weekly chosun] "한민족은 단일민족 아니다!"
특집 | '종의 기원' 150년
유전자로 본 한국인
“북방계·남방계 등 두 가지 이상 유전자가 섞인 집단”
‘북방계 남성·남방계 여성이 결합’ 가설도 급부상
<이 기사는 weekly chosun 2039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이종호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초빙과학자 mystery123@korea.com

한국인이 한민족의 근거지인 한반도에서 계속 살아왔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한국인들은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역사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의 단일민족’이라고 배워왔다. 실제 KIST유전공학센터가 한국인 40여명의 인슐린 유전자를 연구 분석한 결과 ‘한국인의 혈통은 유전자적으로 80% 이상이 공통될 정도로 순수하며, 유럽인의 유전자와는 크게 다르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한국인의 유전학적 기원 역시 순수한 의미에서 하나는 아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한국인의 유전학적인 기원이 북방계와 남방계로 구성돼 있다고 보고 있다. 염색체의 유전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유전자가 섞여 새로운 형질을 만들어내지만, Y염색체와 미토콘드리아라는 두 염색체는 뒤섞임 없이 한쪽 부모한테서 그대로 유전되는 특성을 지닌다. Y염색체는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만 유전되며, 미토콘드리아는 반대로 모계를 통해서만 유전된다. 이 때문에 미토콘드리아DNA를 ‘이브의 유전자’, Y염색체를 ‘아담의 유전자’라 부른다. 때문에 학자들은 이 두 가지 유전자를 분석해 한민족의 기원을 파악하고 있다.

단국대학교 김욱 교수는 Y염색체를 이용한 연구결과에 근거하여 한민족을 크게 두 갈래로 나누고 70~80%는 북방계, 20~30%는 남방계이며 나머지는 유럽인 등 다른 그룹이 섞여 있다고 발표했다. 다른 연구에서는 북방계가 60~70%, 남방계가 30~40%라는 분석도 있다.


일제강점기 때인 1930년대 경성제국대학의 해부학연구실에서는 한국인 약 2만명을 대상으로 유전적 기원을 조사한 적이 있다. 이 조사기록 역시 ‘한국인은 남쪽으로부터 이주해온 남방계와 북쪽으로부터 이주해온 기마민족인 북방계가 섞이거나 혼혈되었다’고 적고 있다. 이 조사기록은 그 증거로 북쪽지방, 북한 사람들의 체형과 남한 사람들의 체형이 상당히 다른 점을 들었다.

북방계 70~80% + 남방계 20~30% + 유럽인 등 다른 민족
만주족과 가장 유사…중국 남부 묘족·베트남인과도 비슷

여하튼 한국인 집단은 동아시아인 집단 가운데서도 만주족과 가장 가까운 유전적 유사성을 지니고 있으며 중국의 일부 남부인(묘족 등)과 베트남인 등과도 가까운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들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추정하면 한국인 집단은 적어도 두 가지 경로 이상의 다양한 민족 집단이 혼합과정을 겪으면서 형성됐으며, 유전적으로 볼 때는 하나의 민족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민족은 수적으로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북방계가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남방계도 무시할 정도는 아니다. 또 북방계라 하더라도 기존에 알려진 것처럼 모두 몽골에서 내려온 것도 아니다. 김욱 교수는 “한국인의 Y염색체를 분석한 결과 한국 남자의 유전적 계통이 그룹C, 그룹D, 그룹O의 세 가지 형태를 보이는데 몽골·시베리아인은 그룹C가 40~50%를 차지하는 반면 한민족은 15%에 불과해 한민족이 모두 몽골 쪽에서 내려왔다고 볼 수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남성 유전자 주류는 중앙아시아·시베리아 계통
북방계 남자가 남방계 남자 몰아내고 후손 불린 듯

근 래의 연구 중에서는 북방계와 남방계가 혼합해 한국인이 형성되는 과정에 대해 매우 흥미 있는 가설을 제시하는 것들도 있다. 이는 동아시아인의 Y염색체 유전형을 보면 북방 루트를 통해 온 사람(특히 남성)이 주체인 반면 미토콘드리아 유전형들은 거의 전부 남방 루트로 이동한 여성들의 것이라는 연구 결과에서 비롯된다. 즉 동아시아 여성들이 가진 미토콘드리아 유전형은 거의 전부 남방 해안 루트를 거쳐 이동해 온 사람들로 보이며 Y염색체는 중앙아시아·시베리아를 거쳐 내려온 남자들의 것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북방계 남자가 남방계 남자를 몰아내고 남방계 여자들을 취하여 후손을 불려왔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루어진 동북아시아 사람들은 유전자 구성에서 한국, 중국 북부, 일본인이 모두 같다고 설명된다.

물 론 한국인이 북방계와 남방계로만 구성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한반도의 지리적 입지 때문에 중국으로부터의 유민과 이민이 계속 한반도로 들어왔다. 특히 신석기를 지나 청동기로 들어서면서 전쟁이 빈번하자 전쟁의 결과 여하에 따라 많은 중국인들이 한반도를 찾았으며 이들이 계속 한반도에 정착하여 한국인이 되었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학자들에 따라서는 이들을 ‘귀화 한국인’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중국인들이 한국으로 이주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대부분 중국에서의 권력투쟁에서 패배한 사람과 이들의 시중을 들었던 사람들, 또는 전란으로 피란 온 사람들로 볼 수 있다. 이들은 주로 전북과 충남의 내륙지방, 황해도 등 한반도의 서반부에 걸쳐 살았다.

그러나 한국인의 형태에서 중국인의 영향이 크지 않다는 것은 이들 ‘귀화 한국인’의 수가 많지 않았고 또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한국인과 피가 섞이며 한국인 주류에 밀렸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두 종류만으로 이뤄진 민족도 세계적으로 드물어
프랑스는 3대가 한 혈통인 경우도 20%밖에 안돼

유 전자는 그 집단 구성원이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점점 많아지지만 10% 이하의 유전자는 300년 정도가 지나면 거의 사라진다고 한다. 유전자 결합의 확률이 저하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의 주류를 북방계와 남방계로 분류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한 민족이 유전적으로 단일민족은 아니지만 두 종류(북방계와 남방계)만의 민족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는 경우도 세계에서 매우 드물다. 1980년대 초에 프랑스에서 ‘누가 진짜 프랑스인인가’를 조사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정통 프랑스인은 부모와 조부모, 즉 3대가 모두 프랑스인인 경우를 의미했다. 그런데 호구 조사는 전 유럽인들을 놀라게 했다. 프랑스 정부가 호구 조사를 통해 프랑스인을 가린 결과 이 기준에 맞는 프랑스인들은 겨우 20%에도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프랑스의 경우와 비교하면 단 두 갈래의 유전적 흐름만 갖고 있는 한민족은 세계에서도 드문 매우 집약적인 혈통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인류 기원에 대한 학설 |
아프리카 가설 동아프리카 돌연변이 여성이 기원
다지역 기원설 호모에렉투스가 각지로 이주해 진화

현 인류의 기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현 인류는 약 20만년 전 아프리카에 살고 있던 ‘이브’라는 한 여성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아프리카 가설’과, 이와는 달리 적어도 100만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호모에렉투스가 각 지역에 도착한 후 각 지역의 특성에 따라 진화되었다는 ‘다지역 기원설’이 그것이다.

1987년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의 알란 윌슨은 세계 각지 147명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조사하여 계통 수를 그린 결과, 현대 인류의 조상은 단 한 명이라고 발표했다. 그는 두개골 화석 비교와 분자유전학적 방법을 동원해 연구한 결과를 토대로 ‘현대 인류가 14만년에서 29만년 전에 동아프리카의 사바나 지역에서 돌연변이를 일으켜 출현한 후 이 후손들이 세계 각 지역으로 이주하여 모든 인류의 부모가 되었다’는 가설을 발표했다. 이를 ‘이브 가설 또는 아프리카 가설(Out of Africa theory)’이라고 부른다.

반 면 펜실베이니아대학의 커얼리튼 쿤 교수는 1962년 발간한 ‘인종의 기원에서’란 책에서 ‘다지역 기원설’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전 세계의 인류가 모두 같은 조상으로부터 갈라진 것은 아니다. 세계 인류의 기원으로 분류될 수 있는 첫 번째 집단들은 각기 다른 지역에서 각기 다른 시대에 독자적으로 진화되어 온 영장류, 즉 호모 에렉투스의 여러 종류의 후손들이다. 따라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결코 우리의 공통적인 조상으로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가설은 호모 에렉투스인 ‘북경 원인’ 등의 후손이 단절되지 않고 이어졌다고 주장하는 중국의 학자들을 중심으로 지지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 첫 백과사전의 산실, 초간정 - 중앙일보 / 2009-01-12

경북 예천군 용문면 개울가에 자리한 초간정이란 작은 정자가 지난해 12월 26일 국가 명승지(51호)로 지정됐다. 초간정은 국내 여행에 어지간한 조예가 있는 마니아에게도 생소한 이름이다. 자료를 뒤져도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해’를 집필한 권문해가 세운 정자’ 정도의 설명이 전부다.

이 책은 단군 이래 선조 때까지 역사·인문·지리 등을 총망라, 총 20권 20책으로 구성된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제878호)로 지정됐다. 조선 선조 때 만들었으니 400년을 넘겼다. 이 역작의 주인공인 권문해는 어떤 사람일까. 그리고 이 정자를 왜 지었을까. 모든 것이 궁금했다.

초간정을 이해하려면 이를 세웠던 권문해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조선 선조 때 별시문과 병과에 합격, 관찰사·좌부승지 등을 지낸 학자다.

권 씨의 본은 안동과 예천 두 개 뿐이다. 권문해는 조선시대 세도를 과시했던 안동 권씨가 아니다. 안동 권씨에 비해 세가 훨씬 적었던 예천 권씨다. 이 때문에 퇴계 이황에 사사했고, 8년 후배 서애 유성룡 등과 교분이 깊었을 만큼 인품과 학문의 조예가 깊었으나 소위 ‘연줄’이 없어 입신출세에는 한계가 있었다. 유성룡이 판서를 지내며 ‘잘 나갈 때’ 자신은 좌부승지에 그쳤으니 오죽했을까.

이를 절감한 그는 고향 예천으로 낙향을 결심한다. 이 때 찾은 곳이 종가가 있는 용문면 죽림리. 이곳에서 그는 1334년 중국의 음시부가 지은 백과사전 ‘운부군옥’을 읽고 또 읽었다.

여 기서 힌트를 얻은 그는 한국의 백과사전 편찬을 결심한다. 그리고 역사·인문·지리 외에 국명·성씨·인명·효자·열녀·수령·신선·나무·금수 등으로 나눠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을 완성했다. 낙향 10년 만이다. 필생의 역작을 탈고한 권문해는 기력이 다한 탓인지 2년 만에 세상을 뜨고 만다. 향년 58세였다.
 
초 간은 권문해의 호다. 풀(草)과 산골의 물(澗)이란 뜻이다. 초간정은 권문해가 낙향 3년 후 지은 정자다. 예천 권씨 종택에서 10리도 떨어지지 않은 조용한 곳이다. 그렇다고 흔히 볼 수 있는 정자처럼 높은 곳에 ‘군림’하고 앉아 세상을 내려다보는 곳도 아니다. 오직 정자 바로 아래 개울만 시야에 들어올 뿐이다.

지금은 바로 옆에 도로가 뚫려 소음이 심하지만 당시에는 물소리·새소리 외엔 달리 들을 만한 소음은 없었을 것이다. 책을 읽고 작품을 집필하는데 더없이 좋은 조건이다.

주 차장에서 내려다보면 위치가 절묘하다. 금곡천이라 불리는 작은 개울이 큰 바위를 만나 ‘ㄱ’자로 휘돌아가는 모퉁이 작은 절벽 위에 아담하게 서 있는 것이다. 절벽 위에 돌을 쌓아 축대를 만들고, 그 위에 정자를 지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아담한 정자는 주변의 아름드리 소나무숲과 어울려 멋진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초간정의 원래 이름은 초간정사. 초간이 학문을 가르치고 정신을 수양하는 집이란 의미다. 깊은 뜻을 가진 건물은 그러나 이후 여러 차례 수난을 당한다.

임 진왜란 때 경복궁에서 발견된 대동운부군옥을 불사른 왜군은 초간정마저 불태웠던 것이다. 광해군 때 다시 세웠으나 인조 14년(1636년) 또다시 화마에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다. 지금의 건물은 초간의 8대손이 1870년 중창한 것이다.

매 서운 한파가 몰아치던 지난 주말. 정자에 앉아 안빈낙도는 아니더라도 초간의 세계를 좇아보려 했으나 허사였다. 절벽을 기어오를 수 없으니 사주문을 통해 들어가야 하는데 굳게 잠겨 있었던 탓이다. 하지만 밖에서 바라보는 멋진 자태 만으로도 초간에게 한 걸음 다가설 수 있는 듯했다.

예천=글·사진 박상언 기자 [separk@joongang.co.kr]

아리랑 2호 영상 해외수출 - 아시아경제 / 2009-01-18

우리나라의 다목적실용위성 '아리랑2호'가 지난해 3건의 수출계약으로 2000만달러 수입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교 육과학기술부(장관 안병만)는 지난 해 아리랑 2호의 영상을 해외에 수출하는 3건의 계약을 체결했다고 19일 발표했다. 아리랑 2호는 2006년 7월 발사돼 현재 고도 685km 상공에서 하루에 지구를 약 14바퀴를 돌며 1m급 흑백영상과 4m급 칼라영상을 촬영하고 있다.

이 위성영상은 선진 우주개발기구인 유럽우주청 등에 수출됐으며 이는 우리나라 위성기술과 위성영상 품질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유 럽우주청과의 계약으로 한국항공우주연구원(원장 이주진)은 북극에 위치한 노르웨이 스발바드(Svalbard) KSAT(Kongberg Satellite Services) 지상국을 이용해 아리랑 2호 영상자료를 1일 10여회 수신하여 제공하게 됐다.

아리랑 2호의 위성영상은 판매대행사를 통해 해외에 판매되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공공목적에 한하여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직접 배포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원은 ▲여수엑스포 예정지의 현황 파악 및 활용 ▲대구시의 위성사진 기반 지도서비스 제작 ▲서울대 박물관의 '하늘에서 본 고구려와 발해' 특별전 활용 등 공공목적으로 지난 해 69개 기관에 위성사진 613장을 공급한 바 있다.

또한 정부는 최근 누구나 접근이 가능한 인터넷 온라인 지도 서비스에도 아리랑 2호 영상 공급을 시작했으며 3차원 지리정보시스템, 재난 및 환경오염 방지 등 타 분야에 위성영상이 보다 널리 활용될 수 있도록 관련 전문가 교육훈련, 홍보, 시범사업 등을 적극 실시해 나갈 계획이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100년 된 토지대장 ‘한눈에’ - 전남매일 / 2009-01-29

강진군, 70여만 장 전산화 시스템 구축…전국서 열람·발급 가능

“100년 된 토지대장이라도 강진지역의 토지라면 언제 어디서나 쉽게 열람할 수 있어요.”
강진군이 100여년 된 옛 토지대장을 전국 어디서나 신속·정확한 열람 및 발급이 가능하도록 전산화 시스템을 구축해 눈길을 끈다.
20일 강진군에 따르면 이번 전산화된 토지대장은 1910년대 토지조사사업 당시 작성돼 그동안 지적서고에 보관중인 부책·카드식 토지대장으로 191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강진군 지역의 토지가 총 망라돼 있다.
강진군의 옛 토지대장은 그 동안 노후화로 인한 파손 및 훼손의 위험성과 화재 등 각종 재난 위험에 노출 돼 있었다.
뿐 아니라 민원 발급 시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돼 민원인들의 불편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강진군은 국비 1억3,000만 원을 국토지리정보원으로부터 전액 지원받아 지난 2008년 7월부터 5개월 동안 부책 및 카드대장 총 70만 7,342면에 대한 전산화 작업에 들어간 것.
강진군은 100여년 된 토지대장의 전산화 시스템 완료로 주민 재산권 및 공적장부의 안정적인 보존이 가능하게 됐다.
뿐만 아니라 전국 어디서나 열람발급이 가능한 민원서비스제공으로 토지정보의 활용가치 향상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강진군은 기대하고 있다.
강진군 백종일 민원팀장은 “이번 토지대장 전산화로 관리비용 절감 및 민원인의 편의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도 민원인 편의를 위한 각종 사업을 적극 추진해 사랑방 같은 민원실을 만들어 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강진군은 지난 1991년 최근 토지대장 전산화, 2003년 한국토지정보시스템(KLIS)을 구축, 토지대장 무인발급 및 웹기반 민원서비스 등을 제공해 민원 편익증대 및 경제적 비용 절감효과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강진= 여두문 기자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초빙 교수 - 데일리안 / 2009-01-16

2009년 01월 16일 (금) 13:16:11 변윤재 기자

“남한은 북한 문제에 대해 자국내 문제인 양 다룹니다. 남한 헌법에 북한은 ‘영토’라고 되어 있으니 그렇겠지만, 남북관계를 올바르게 풀려면 남과 북의 차이를 정확히 인식하고, 그에 따라 접근해야 합니다.”

스 스로를 “우파학자”라 칭하고 “대북정책의 방향성은 수정돼야 한다”고 쓴 소리를 하는 외국인 학자. 러시아 출신의 북한학자인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초빙교수(45)는 ‘보수의 박노자’로 불린다. 대북정책과 남북관계에 대해 그의 언변은 거침없고 명쾌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외국인이라는 ‘자유로움’에서 기인하는 것일수도 있지만, 오랜 시간 한반도, 특히 북한에 대해 연구해 온 학자로서, 그리고 남한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싶다”고 애정을 갖고 있는 생활인으로서 느낀 감정에 가까워 보였다.

란코프 교수의 연구실을 찾았을 때 그는 다른 매체와 인터뷰 중이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병설 이후 북한 급변 사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에 대한 언론의 러브콜이 잇따랐기 때문.

“ 최근 더 바빠졌다”고 차를 건네고서야 란코프 교수는 한숨 돌리는 기색이었다. 쉬는 날에도 연구실에 나온다는 그는 ‘성실한’ 학자로 보였다. 연구실 책장에는 빈틈없이 손때 묻은 책들이 빼곡했고, 벽에는 북한 전도가 걸려 있었다. 란코프 교수는 언론매체 등에 칼럼 등을 기고하면서도 북한 관련 토론회에도 꾸준히 발표자로 참석하고 있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자신만의 ‘특권’을 통해, 그리고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경험한 경험을 통해 남한 사회에 보다 많은 정보를 주고 싶어서다.

란 코프 교수는 지한을 넘어 친한의 감정을 갖고 있는듯 했다. 그는 “한국은 재미있고 매력적인 곳”이라며 “어떤 점이 좋은지 꼭 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재밌는 국가”라고 말했다. 슬쩍 미소 짓는 그에게서는 한국화된 외국인의 인상이 풍겼다.

그러 나 란코프 교수는 이방인의 ‘객관성’을 잃지 않았다. 그는 “남한은 북한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 특히 정치권은 남북문제를 정치적인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고 국민들은 북한을 ‘존재하지 않는 국가’인 양 외면하려 한다”며 “그러나 북한의 현실을 직시해야만 문제의 해법이 보인다”고 비판했다.

란코프 교수는 “남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안경’(시각)으로 북한을 바라본다. 북한을 객관적 협상의 대상으로 보지 못하고 국내 정치로 다루려다 보니 남북관계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전쟁과 분단을 거쳐 앙금이 남은 상황에서 민족주의 또는 대결주의와 같은 다소 감정적인 정책을 펴다보니 합리성과 객관성을 잃었다는 것이다. “대북정책에 남한은 있지만 북한은 없다”는 비판이 나올 수 밖에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란코프 교수는 북한의 급작스러운 변화는 남북한의 통일로 이어질진 몰라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화합’은 어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때문에 점진적인 변화를 유도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제2, 3의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등의 교류협력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방향적으로는 햇볕정책이 맞지만 조건없는 식량지원보다 북한의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기술, 교육 등을 전수하는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방법들이 모색돼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김정일 독재 체제는 수명을 연장할 것이고, 북한 주민들의 고통은 길어질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란코프 교수는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처럼 ‘철창이 쳐진’ 제한적 개방일지라도 지속적으로 확대해야 하며, 이를 통해 남한의 정보들이 ‘입소문’을 타고 북한 사회 내 유입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정권이나 정책보다 사회의 변화가 더욱 깊고 파급력이 크기 때문”에 남한의 발전상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면 이는 북한 주민들의 ‘의지’를 자극하고, 결과적으로 북한 체제를 변화시킨다는 것.

란코프 교수는 무엇보다 남북통일 이후 겪을 사회문화적 갈등과 혼란을 줄이려면 탈북자를 중심으로 한 대안 엘리트를 양성해 이질화를 줄이는 한편, 북한 주민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국인으로서 한국의 역사를 공부하고, 한국에 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중고등학교 때 동아시아 역사에 관심이 많았고, 대학에 들어가 중국 역사를 전공했다. 당시 동아시아 문화권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중국이나 일본에 대해 공부했었는데 지도 교수님이 ‘한국 역사를 배워보면 어떻겠느냐’고 조언해주었다.

그 전에는 한국 역사에 대해 잘 몰랐지만 1982년부터 한국학으로 전공을 바꿔 호주 국립대 교수로 재직했다.

그러나 역시 한국학은 현지에서 연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구를 위한 1차 자료들에 대한 접근이 쉽고 다양한 자료를 수집할 수 있으며, 진짜 ‘한국 전문가’가 되려면 현지에서 경험하는 것보다 좋은 건 없다고 생각했다.

나 는 한국에서 10년, 호주에서 8년을 지냈다. 한국이라는 나라를 공부하고 연구한 것도 20여년이 넘는데 한국행을 선택한 것에 후회는 없다. 내가 원하는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스럽고 한국은 ‘재밌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어떤 점이 매력적이냐고 묻는데,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한국인들이 한국의 멋진 점을 설명할 때 딱 한 가지를 꼬집어 말하기 어렵듯이 그런 느낌을 갖는다. 매력적이고 재밌는 곳이지만 설명하긴 애매하다.(웃음) 그러나 (한국이 나쁘다는) 나쁜 의미가 아니라 긍정적인 것이다. (아마) 이미 생활이 됐기 때문에 객관적인 설명이 어려워진 걸지도 모른다."

-북한과 구 소련의 관계를 생각하면, 한국에서는 북한에 너그러울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다. 그런데 실제 당신은 북한에 대해 굉장히 비판적이다.

" 그것은 선입견에 불과하다. 소련과 북한의 관계는 실제로 좋은 편은 아니었다. 소련은 북한을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이용할 수 밖에 없었지만 60년대부터 북한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특히 김일성의 우상화 때문에 소련에서는 북한을 ‘웃음거리’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소련에서 북한만큼 인기없는 공산권 국가는 없었다. 북한의 독재체제나 우상화 등에 대해 소련은 위험하다고 판단했고, 이 때문에 북한에 갈 때는 까다롭고 복잡한 절차와 교육을 받아야 했다. 이것은 유럽 등 자본주의 국가에 갈 때와 맞먹는 수준이었다. 말로는 소련과 북한의 외교, 동맹 등을 강조했지만 내심 적대국 이상으로 거리를 두고 있었던 셈이다.

특히 1980년대 내가 대학을 다닐 당시에는 소련 대학생들은 공산주의의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고, 북한을 비판적으로 보았다.

북 한에 대해 공감이 생긴 것은 1990년대 말 소련이 붕괴하고 러시아 내에서 반미 민족주의가 커지면서부터다. 미국에 반대하는 세력이기 때문에 공감했던 것이지 그 전에는 ‘세계에서 가장 열악한 독재국가’ ‘가장 악독한 독재체제’였던 북한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는 없었다.

또 국민들을 학대하고 민중의 기본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지 않고, 극소수의 세습적인 엘리트의 특권만을 보호하려는 사회체제를 비판적으로 보게 되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사회적 분위기도 그랬지만 개인적으로도 북한에 살면서 북한 체제의 실제 모습을 접했고, 스탈린주의 체제가 어떤 과정을 거쳐 무너졌는지를 경험한 사람이다. 시간이 갈수록 더욱 부정적으로 변하는 북한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하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병설로 인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는데, 이번 중병설은 남한이 북한에 대해 정보가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한국이 북한에 대해 정확한 인식을 못하고 있다고 여기나.

"확실히 한국은 북한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남한의 주류사회는 북한이라는 국가가 마치 존재하지 않는 양 외면하면서 살고 있다.

현 재 한국 사회에서 북한의 현실 등에 대해 배우기 어렵다고 말한 순 없을 것이다. 탈북자도 국내에 1만명 이상이고 북한으로부터 취할 수 있는 정보도 많아졌다. 국내 언론 뿐 아니라 외신을 통해서도 북한에 대한 여러 기사를 읽을 수 있다.

결국 남한이 북한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은 ‘자료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무관심’ 때문이다.

북한의 현실은 정말 비극적이고, 이런 현실을 남한 사람들이 알게 되면 ‘북한을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줘야 하고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그 질문에 대한 답도 준비해야 한다.

북 한을 돕는 일은 돈을 주거나 식량이나 비료를 지원하나 탈북자를 도와주는 등, 남한 사회에 일종의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는 일이므로, 북한을 ‘무시’하는 게 어떤 측면에서는 편리할 수 있다. 물론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부담으로 인해 상대국을 외면하는 일은 분단국가에서는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반응이다.

동서독과 남북한을 흔히 비교하지만 둘은 전혀 다르다. 동독은 북한보다 자유롭고 물질적으로 잘 사는 나라였다. 동서독은 1960년대 말부터 교류를 꾸준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늘려왔고, 동독을 방문하는 서독 사람들은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고 어디든지 갈 수 있었다. 매년 동독을 방문하는 서독 사람들의 숫자는 수십만에서 100만 정도에 달했다. 동독 사람들도 서독을 방문할 권리가 있었고, 서독 방송이 개방되면서 동독 가정에서는 서독 방송을 보지 않는 집이 없을 정도가 됐다. 동독과 서독의 경제적인 차이는 2~3배가량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다르다.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 시내 관광은 진짜 북한 구경이 아니다. 북한을 방문하면 한정된 공간만을 볼 수 있고, 그것도 일반 주민들과의 접촉은 불가능하고, 선발된 소수의 인원, 좋은 출신 성분을 지닌 특수 계층 사람들하고만 만날 수 있었다. 경제력의 차이도 남북한은 17~50배 정도 차이가 난다.

남한이 북한에 관심을 갖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는 남북한이 혹독한 ´열전´을 치렀고, 이념의 대립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동 서독은 감정적으로 얽히지 않았다. 서로 죽이는 비극은 없었고, 그랬기 때문에 앙금이나 한이 남지 않았지만 남북한은 다르다. 적대감이 있다. 체제 경쟁도 했기 때문에 ‘이념적으로 우월하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고도 생각하는 듯 하다."

-북한학자의 입장에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나.

" 북한측이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으로 내걸고 있는데 비핵화나 개방은 북한에는 거북할 수 있다. ‘북한의 국민소득을 3000달러’까지 올려주겠다는 얘기는 듣기는 좋지만 비핵화와 개방이 조건이면 이명박 정부의 대북관계에서는 밝은 미래는 없다."

- 일각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같이 남북정상회담을 함으로써 북한을 공개석상으로 끌어내는 게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하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정상회담이 나쁘진 않지만 정상회담만으로 변화가 생기진 않는다. 변화는 정부의 정책이 아니라 사회현상이다.

정상회담은 일종의 타협이기 때문에 북한 사회의 변화를 촉진하는 조치들에 대해 동의를 얻을 수 있을 순 있다. 개성공단과 같은 시설을 늘리고 평양 시내 관광을 요구하는 것 등 말이다.

그 러나 다음 정상회담도 평양에서 이뤄진다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순 없을 것이다. 유교 전통에 보면 사대주의가 있다. 형의 위치에 있는 국가의 수도를 아우에 해당하는 국가의 사절단이 방문하는 것이다. 조선이 명의 수도를 방문한 것이 그 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은 2차례의 정상회담을 평양에서 연 뒤 ‘남한이 우리보다 못해서, 우리 장군님을 존경하고 사랑해서 평양에 왔다’고 왜곡된 생각을 가졌을 수 있다. 이것은 남북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최근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 등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하려 했던 것과 관련해, “유감”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분단이 지속되는 상황이고, 이념 갈등이 현재까지도 불거지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 혼란을 줄이기 위해서는 국가보안법과 같은 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당신은 ‘북한의 미래를 생각해 보면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독재를 반대하는 좌익세력에게 역할이 있다’고 했는데 국가보안법이 건강한 좌파가 육성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보는가.

"어떤 면에서 국가보안법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북한의 간첩 첩보활동은 막아야 하지만 이것은 가로막기 위해 특별한 법은 필요없다. 북한만을 마치 특별 관리하듯 대하기보다는 다른 국가와 같이 대할 필요가 있다.

북 한 체제가 무너지면 남한의 좌파들은 북한에서 노동운동 등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 권리를 보호하고 노동자들의 이익을 대표하는데 앞장서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특히 남한의 좌파들은 남북한의 경제력 차이에서 오는 적대감과 괴리감을 느낀 북한 노동자들을 사회 구성원으로 끌어안는 역할도 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김정일에 대해 비판적인 좌파들이 필요하며, 오 교수는 사실 북한을 많이 비판하는 좌파학자라 생각한다. 우파학자인 내가 동의하지 않는 부분은 많지만 그렇다고 ‘친북’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자 유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의 측면에서도 국가보안법은 국민이 다양한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지 못하게 하는 측면이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라면 법을 훼손하지 범위 내에서는 비폭력적인 정치활동을 다 포용해야 한다. 물론 친북좌파들의 일방적인 주장에 조금 화가 나고 그들을 비웃을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는 걸 막는 것은 민주주의라고 보기 어렵다.

폭 력적인 행위로 국가에 혼란을 주거나 간첩행위를 한 사람들은 찾아서 이를 막아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국민들은 ‘유아’가 아니라 ‘성인’처럼 대해야 한다. 오판을 내리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건 국가가 대신 해줄 수 없다. 국민 개개인의 판단에 맡겨야지, 모든 걸 국가가 간섭하려 해선 안 된다.

더욱이 남한이 개인숭배, 지도자 우상화를 하고 있는 후진국에 대해 위협적으로 느낄 필요가 있나. 그런 거짓말들은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테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이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 순 없는 일이다. 결국 국가보안법에 대한 논쟁은 남한 사회가 건전한 국가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성장통과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계속)

작년 1만2000명 자녀姓 바꿨다 - 한국일보 / 2009-01-11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자녀 성(姓) 변경제도'가 처음 시행된 지난 한해 동안 1만2,000여명의 부모가 법원의 허가를 받아 자녀의 성과 본(本)을 바꾼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자녀의 성과 본을 바꿔달라는 청구는 전국적으로 1만6,525건이 접수돼 1만4,269건이 처리됐다. 이 가운데 1만2,582건의 신청이 받아들여졌고 574건은 기각, 1,113건은 취하되거나 다른 법원으로 이송됐다.

지난해 민법개정으로 호주제가 폐지됨에 따라 생부나 생모 또는 성년이 지난 본인이 신청할 경우 이혼ㆍ재혼 가정의 자녀들도 법원의 허가를 받아 성과 본을 변경할 수 있게 됐다.

성 변경 신청의 대부분은 재혼 여성이 자신의 자식과 새 남편의 성을 같게 하려는 경우였고 혼자 사는 이혼 여성이 자신의 성에 맞춰 변경해 달라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녀 성 변경과 함께 도입된 '친양자'에 대한 신청도 잇따라 1년 동안 2,498건이 접수돼 이 중 1,743건이 받아들여졌다. 친양자로 입양되면 입양한 부부가 혼인 중에 낳은 출생자로 간주돼 아이의 성과 본이 양부의 것으로 바뀌면서 일반 입양과 달리 친부모와의 법적 관계가 모두 소멸하게 된다.

[정책진단-껍데기만 남은 여성부] “여성정책은 죽었다”… 한해 예산 무려 95% ‘싹둑’ - 서울신문 / 2009-01-18

지난해 초 여성부는 정부조직개편의 격랑 속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주요 기능을 타 부처에 떼어주고 조직은 축소되면서 “간신히 목숨만 붙여놓은 것”이라는 우려를 자아냈다. 일반회계 예산규모는 2007년 1조 1994억원에서 2008년 539억원으로 1년 만에 95.5%가 줄어들었다. 여성정책을 총괄하는 한 부처의 예산 규모라고 하기엔 너무나 초라한 수준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여성 관계 전문가들은 “여성부는 살아남았지만 지난 1년간 여성정책은 죽었다.”고 서슴없이 비판한다.

●“여성정책 30년 전으로 후퇴”

익명을 요구한 한 정부부처 관계자는 18일 “지난 1년간 여성정책 자체가 실종됐다.”고 단언했다. 여성정책이 30년 전으로 후퇴한 느낌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지난 정권까지는 큰 틀에서 제도개선을 꾸준히 해왔고 호주제 폐지와 같은 성과도 있었다.”고 말했다. 또 “여성정책의 소프트웨어를 내실있게 다지는 단계에서 정권이 바뀌었는데 지금 정부가 생각하는 여성정책은 하드웨어 중심”이라며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만하면 하드웨어를 갖췄으니 여성부는 이제 필요없다.’는 게 새 정부의 관점이라는 것이다. 결국 존폐 논란 속에 살려두기는 했지만 정권 차원에서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이처럼 여성정책이 후퇴하는 근본적인 이유로 일각에선 청와대를 지목한다. 한 정부 관계자는 “여성의제 자체가 진보적인 성격이 있는건데 청와대에선 진보적인 의제를 백안시한다. 수석회의에서 여성의제가 견제받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여 성부 역할축소는 여성정책 후퇴와 밀접한 연관관계에 있다. 여성부는 2005년 가족·보육업무를 맡으면서 남녀차별 개선업무를 국가인권위원회로 넘겼다. 하지만 지난해 가족·보육 기능은 보건복지부로 넘어갔다. 현재 여성부는 집행부처가 아니라 ‘정책협력부처’일 뿐이다. 이같은 환경에서 여성관련 정책을 성평등 관점에서 주도적으로 끌어가기엔 힘이 부친다.

●위상은 집행부처 아닌 ‘정책협력부처’

여 성부측은 이의를 제기한다. 정봉협 여성부 여성정책국장은 “그동안 성과를 거둔 인권이나 소수자 중심 정책이란 바탕 위에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여성인력개발로 정책중심이 옮아간 것”이라면서 “정책전환 초기 과정에서 나타나는 과도기현상으로 이해해 달라.”고 밝혔다. 그는 “사회변화라는 게 급격하게 올라가다가 어느 시기에서 정체되는 시기가 있다.”면서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다른 평가가 나올 것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여성부 스스로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성정책 후퇴를 외부요인이 아니라 내부요인에서 찾아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여성부는 지난해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여성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며 여러 정책목표를 내놓았다. 하지만 구체성이 떨어지고 새로운 정책수단도 부족했다. 가령 여성인력개발을 내세웠지만 여성 경제활동인구 660만명 가운데 441만명에 이르는 비정규직 대책은 아예 없었다. 목표로 했던 성평등기본법 제정도 결국 이루지 못했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산다

올 해 예산을 살펴보면 성평등정책 관련 예산의 증가폭은 미미하다. 지난해 9500만원 규모였던 외국인성매매피해여성보호 사업은 올해 전액 삭감됐다. 일본군위안부피해자기념사업도 6억원에서 1억원으로 83%나 깎였다. 집결지 성매매여성 자활지원사업도 54억원에서 21억원으로 줄었다.

김경희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성부 업무는 여성부 단독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정부차원의 협력이 필수”라면서 정부차원의 의지를 강조했다. 이어 “지난해부터 시행중인 3차 여성정책기본계획은 보육서비스 공공성확보를 강조한게 특징이다.”면서 “3차 계획이 충실히 이행되기 위해서는 국무회의나 여성정책조정회의 등 부처간 정책조정이 내실있게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관영 함께하는시민행동 사무처장은 “여성부의 영문명칭에서 명확히 드러나듯 여성부의 존재이유는 ‘성평등’이다.”면서 “초심으로 돌아가야 길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성평등보다 여성인력개발·여성일자리창출 등 여성을 ‘대상’으로 한 사업에 편중되면 ‘중복업무’ 논란에서 빠져나갈 수가 없다.”고 꼬집었다. 권미혁 여성민우회 공동대표는 “성평등을 위한 의제설정과 정책개발에 더 많이 주력해야 한다.”면서 “정부차원의 여성정책 후퇴에 대해 여성부가 적극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주문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Séoul appelle Tokyo à ne pas mener d'explorations sous-marines près d'un territoire en litige - XINHUA / 2009-01-09

SEOUL, 7 janvier (Xinhua) -- La Corée du Sud a demandé mercredi au Japon d'abandonner son projet d'exploration scientifique sous-marine près des îlots disputés de Dokdo, dont Tokyo réclame la souvertaineté et les appelle Takeshima, situés dans l'est de la péninsule coréenne, selon des médias locaux.

Selon l'agence de presse Yonhap, le ministère sud-coréen des Affaires étrangères a remis mardi par voie diplomatique un message clair à la partie japonaise pour qu'elle ne procède pas à un tel projet de recherches sans le consentement de Séoul.

"Il semblerait que le Japon soit arrivé dans la dernière phase de préparation du projet de recherches. Nous souhaitons que le Japon n'inclue pas les eaux près de Dokdo dans son plan définitif eu égard à ses relations avec la Corée du Sud", ont indiqué des responsables anonymes du ministère des Affaires étrangères cités par Yonhap.

Les remarques de Séoul sont intervenues après que le quotidien japonais Yomiuri Shimbun eût annoncé mardi à la une de son journal que Tokyo avait rédigé un plan étalé sur dix ans consistant à mener des études scientifiques poussées près de Dokdo pour identifier d'éventuels gisements de pétrole, de gaz et d'autres ressources énergétiques.

Les fonds marins autour de Dokdo pourraient renfermer un énorme gisement d'hydrocabures, a estimé Yonhap.

La Corée du Sud contrôle Dokdo depuis les années 1950.

lundi 26 janvier 2009

옛 도시들의 '침울한' 근대화 - 매일경제 / 2009-01-06

동국대 한국문학연구소 국제학술대회 열어

서울, 평양, 경주, 부여와 같은 우리 역사의 중심지는 일제 강점기 하에서 어떤 근대화 과정을 거쳤을까. 고적조사라는 일제의 왜곡에 수난을 당하고 일본인들이 방문한 최고의 관광지라는 찬사를 듣기도 한 우리 옛 도시들의 발전 과정을 조명하는 국제학술대회가 마련된다.
동국대 문화학술원 한국문학연구소는 9~10일 양일간 동국대 충무로영상센터에서 `고도(古都)의 근대 - 고도 인식과 표상을 통해 본 한.일 역사 인식의 비교`를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한다.

한국과 일본, 대만 학자 22명이 옛 도시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고 토론을 벌인다.

이순자 숙명여대 강사는 `일제강점기 고적조사의 정치학`을 통해 "일제가 고적조사 지역을 한사군 영역이었던 평양 부근과 경주를 중심으로 한 한반도 남부지역에 집중한 이유는 한국사의 타율적 역사를 문헌뿐만 아니라 유적.유물을 통해 확인하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있었다"고 분석한다.

즉 "일제의 조선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내걸었던 일선동조론, 타율성론 등을 유적.유물을 통해 구체적으로 증명하고자 이 지역에 대한 집중적인 고적조사사업을 강화하였던 것"이다.

이 강사는 "일제의 고적조사사업은 한국의 유적.유물을 조사하고 보존하며 나아가 한국의 전통문화를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실시하였으나 결국은 일본이 보여주고 싶은 역사, 말하고 싶은 역사를 대변하는 증거물로 적극 활용함으로써 왜곡.재구성되는 극히 정치적인 성격을 띠거나 `보존`이라는 명분하에 유물이 유출되는 이중성을 드러낸 사업이었다"고 강조한다.

김백영 광운대 교수는 `청결의 제국, 오물의 고도-경성의 위생 담론과 공간정치`에서 일제가 청결을 이유로 우물을 파괴하고, 상수도를 건설했으나 상수도 사용비가 높아 일반 조선인들이 상수도를 사용하기 힘든 구조적인 모순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우물의 품질이 훼손되고 상수원에 대한 접근 자격을 박탈당한 조선인들에게 강요된 선택지는 "고가이자 저질인 상수도이거나 과거보다 훨씬 더 더러워진 우물 사이의 양자택일이었을 뿐"이라며 일제시대 위생사업의 문제점을 짚는다.

나카다 다카유키 일본 에히메대 교수는 `제국 일본의 만선(만주와 조선) 관광지와 고도 경주의 표상`을 통해 일본인들의 조선여행은 "경성을 중심으로 한 도시 관광과, 금강산이나 평양 등 풍광명미(風光明媚)한 경승지 탐방, 고도나 옛 전장을 둘러보는 역사 관광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 가운데 경주는 "일본의 `나라`와 같은 취급을 받으며 일본 만선 관광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고 분석한다. 그러면서 "1910년대 후반부터 널리 행해지기 시작했던 `만선` 여행은 제국 일본의 확장주의적 문화정책으로서 추진된 관광 사업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말도 곁들인다.

이밖에 `식민지 상상 지리 속의 경주`(황종연.동국대), `전시된 조선과 민족의 기억(최지현.동국대), `한국 근대문학에 나타난 평양 표상(박성란.인하대), `고도의 폐허와 창조된 신도, 문학작품에 나타난 부여`(허병식.동국대), `무엇이 그리고 누가 타이페이를 현대적으로 만들었나`(소석빈.대만 세신대) 등 모두 11편의 논문이 발표된다.

buff27@yna.co.kr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Un rêve de réunification - Courrier International / 2009-01-06

Un peintre et un musicien qui ont fui la Corée du Nord, sans toutefois renier leurs origines, rêvent de contribuer par leurs arts à la réunification intercoréenne, relate le Weekly Kyunghyang.

La première vague de réfugiés nord-coréens en Corée du Sud a commencé en 1998. Leur nombre atteint aujourd'hui quelque 14 000. Ils sont chaque année de plus en plus nombreux à demander asile à ce pays où ils réussissent à arriver au péril de leur vie, mais leur nouvelle existence n'est pas toujours facile, notamment à cause du regard biaisé des gens du Sud.
Son Mu, 36 ans, est artiste peintre ; Kim Chol-ung, 34 ans, est pianiste. Originaires du Nord, les deux hommes ont beaucoup de points communs. Ils ont réussi à se faire un nom dans les milieux artistiques de Corée du Sud, où ils jouent aussi le rôle d'initiateurs à la culture nord-coréenne auprès de la population locale. Chacun d'eux utilise un pseudonyme afin de ne pas compromettre la sécurité de sa famille restée au Nord. Son Mu, surtout, refuse d'être photographié, ce qui lui vaut d'être surnommé le "peintre sans visage". Son père, un médecin, et sa mère vivent de l'autre côté du 38e parallèle. Il a traversé le fleuve Tuman [Tumen en chinois] en 1998, et, après avoir erré trois ans en Chine, il est arrivé en Corée du Sud.

Né d'un père haut fonctionnaire et d'une mère universitaire, le pianiste Kim Chol-ung a quant à lui bénéficié de l'éducation réservée à l'élite nord-coréenne, avant de poursuivre sa formation au conservatoire Tchaïkovski, à Moscou. Il a été premier pianiste de l'Orchestre national de Pyongyang jusqu'en 2001, date à laquelle il a fui le pays. Arrêté en Chine, il a été renvoyé chez lui où il était sur le point d'être exécuté (considéré comme un criminel politique du fait de son statut d'intellectuel, il risquait une peine plus lourde que ceux que la faim pousse à passer la frontière), mais, sauvé in extremis, il a pu gagner la Corée du Sud. Le 18 avril 2009 prochain, il donnera un concert au Carnegie Hall, la célèbre salle new-yorkaise.

Sont-ils satisfaits de leur vie en Corée du Sud ? La réponse est mitigée. Chacun, pour des raisons qui lui sont propres, ne s'y sent pas complètement libre. Son Mu a récemment connu une mésaventure : une de ses œuvres retenues pour la biennale de Pusan a été décrochée du mur la veille de l'ouverture. Il s'agissait en fait d'un portrait de Kim Il-sung [père de Kim Jong-il, le "Grand Leader" de la Corée du Nord, décédé en 1994], que les organisateurs ont préféré retirer pour éviter d'éventuels ennuis. "L'an dernier, quand j'ai organisé une exposition personnelle, j'ai été interpellé par la police pour avoir accroché un portrait de Kim Jong-il. Mais je ne pensais pas avoir le même genre de problème lors d'un événement international. D'autant que mes tableaux disent justement que Kim Il-sung n'était pas le soleil de la Corée ! J'ai réalisé à cette occasion que le Sud avait aussi son idéologie et que la liberté d'expression n'y était pas totale."

Kim Chol-ung pointe du doigt des mauvaises pratiques des Sud-Coréens qu'il juge regrettables : "Les professeurs de musique exigent de leurs disciples qu'ils les imitent. Il suffit d'écouter le jeu d'un élève pour deviner qui est son maître ! Quant à moi, je dois faire plus d'efforts que les autres si je ne veux pas être méprisé à cause de mon origine nordiste."

Tous deux déclarent qu'ils ne veulent pas être jugés selon des critères politiques. Son Mu entend souvent dire : "Pourquoi vous attachez-vous à votre passé nord-coréen ? Passez à autre chose !" Mais il ne veut pas renier ce qui constitue son identité. "C'est ma vie en Corée du Nord qui a fait de moi ce que je suis aujourd'hui. Il est difficile dans ces conditions d'ignorer Kim Il-sung et Kim Jong-il, quelles que soient mes opinions à leur sujet. Je fais de l'art, c'est tout." Ses tableaux sont en effet loin de constituer un éloge des deux dictateurs. Un d'eux représente de trois quarts l'actuel dirigeant nord-coréen, tout sourire dans un survêtement de marques Nike et Adidas d'un rose inquiétant. Par dérision, il peint souvent avec des couleurs gaies la morosité et la crainte qui règnent dans la société nord-coréenne. Son art va probablement contribuer à rapprocher les Coréens des deux bords. De son côté, Kim, qui est aussi compositeur, rêve de contribuer à faire avancer la réunification : "Je créerai une musique qui parle aussi bien aux gens du Sud qu'à ceux du Nord."

500년 왕조의 넋을 담다 조선왕조의궤 - 조선일보 / 2008-12-11

박정혜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유네스코에서는 세계적 가치가 있는 귀중한 기록유산에 대한 인식의 증진과 보존 및 활용을 위해 1997년부터 2년마다 세계기록유산을 선정하고 있다. 조선왕조의궤는 2007년 6월 제8차 유네스코 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에서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등 록 기준에 의거해 생각해 보면, 의궤는 ‘조선왕조 500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며 ‘조선왕조를 초월하여 동아시아 유교문화의 정신적 가치를 반영하는 자료’일 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독특한 기록 양식을 지닌다’는 점에서 그 가치와 고유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의궤는 국가 및 왕실의 의례에 대한 전모를 글과 그림을 통해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기록한 것으로서 후대를 위한 참고 자료로 보존하기 위해 제작된 관찬官撰 기록물이다.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奎章閣에 소장된 546종 2,940책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藏書閣에 소장된 287종 4,790책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왕실문화 연구, 한국학 연구의 보고寶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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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궤는 가례嘉禮, 책봉冊封, 국장國葬, 존호尊號, 부묘, 각종 연향宴享과 같은 왕실 의례를 비롯하여 명나라 사신접대, 궁궐 영건 및 수리, 공신 녹훈, 실록實錄과 선원록璿源錄 등의 편찬, 보인寶印과 악기의 제조, 어진御眞 모사 등 국가적 차원으로 행해졌던 각종 의례에 대한 종합보고서의 성격을 지닌다. 이러한 의례의 준비와 진행은 임시로 설치된 도감都監의 책임이었으며 의궤는 행사 종료 후 따로 설치된 의궤청儀軌廳 소관이었다. 임시 준비기관은 행사의 규모에 따라 도감, 청廳, 소所로 나뉘며 의궤의 명칭도 그에 준하여 붙여졌다. 거꾸로 말하면 의궤는 각종 왕실과 국가 의례 중에서 임시 준비기관이 설치되었던 주요 의례에 한하여 편찬될 수 있었다.

의궤는 왕(혹은 황제)의 열람을 위한 어람용御覽用, 왕세자(혹은 황태자)의 열람을 위한 예람용睿覽用, 사고 및 관련 관청의 보관을 위한 분상용分上用으로 구분되며 어람용 및 예람용과 분상용은 제작과정, 장인, 재료 및 장황粧潢에서 엄격히 차별화됐다. 규장각에는 어람용과 예람용, 규장각용으로 제작된 고급의궤를 148종이나 소장하고 있다. 장서각에는 전라도 무주 적상산 사고에 보관되었던 의궤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어람용 의궤 유일본을 보관하고 있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의궤는 조선 건국 초기부터 제작되었으나 임진왜란을 지나며 소실됐고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의궤는 1600년 의인왕후의 국상 때 제작된 『빈전혼전도감의궤殯殿魂殿都監儀軌』와 『산릉도감의궤山陵都監儀軌』다. 시대가 흐름에 따라 의궤의 편찬체제가 잡혀갔고 18세기 중엽이 되면 전형적인 체제를 지니게 된다. 또 정조년간 이후에는 1795년乙卯 현륭원 전배를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나 1797년에 완공된 화성 건설을 기록한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 19세기의 궁중연향 관련 의궤처럼 금속활자로 인쇄되고 그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체제를 갖춘 의궤도 제작되었다.

의궤는 최근 20년 동안 조선시대 왕실문화 연구가 급진적으로 발전하는 데 절대적으로 기여했다. 의궤는 역사, 정치, 경제, 사회, 미술, 음악, 무용, 건축, 복식, 음식 등 다양한 분야의 한국학 연구자들에게 풍부한 자료로 활용됐으며 아직도 발굴되지 않은 보석 같은 자료가 의궤 속에는 가득 숨겨져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 자료의 방대함과 다양함은 실로 놀라워서 의궤를 한번 접해본 사람들은 누구나 그 무한한 매력의 세계에 빠지게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과 그림의 상호보완을 통한 의례의 완벽한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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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궤의 가치는 그 안에 수록된 시각자료를 통해 배가 된다. 시각자료라 함은 행렬반차도行列班次圖, 각종 의물의 견양도見樣圖, 배경이 되는 건축도, 행사도行事圖 등을 말하는데 의궤의 종류와 편찬 시대에 따라 차이가 있다. 의궤의 그림은 글로서 설명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주고 글은 그림의 내용을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된다. 물론 모든 의궤가 다 그림을 수록하고 있는 것은 아니나 의궤의 그림은 꼭 필요할 때, 적재적소에서 내용을 보충해주고 있다.

반차도는 의궤의 종류에 따라 다른데, 가례도감의궤에는 별궁에서 신부수업을 받던 왕비가 동뢰연을 치르기 위해 입궁하는 행렬이 그려졌고 어진도사도감의궤에는 완성된 어진을 진전眞殿에 봉안하러 가는 행렬이 그려졌다. 행렬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과 의장의 위치, 순서, 숫자를 정확하게 기록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그림이다. 좀 더 회화적인 그림은 영조년간에 『대사례의궤大射禮儀軌』를 통해 시도됐다. 『원행을묘정리의궤』에는 여러 형식의 그림들이 본문에 앞서 별도의 권수卷首에 실려 있는데 그림들은 종류의 다양함, 정확성, 과학적 사고의 반영, 회화적 우수함 등에서 『화성성역의궤』와 함께 의궤 그림의 꽃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의궤 그림을 통해 우리는 당시의 궁중 문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프랑스에 소장된 외규장각의 어람용 의궤

의궤는 국내뿐만 아니라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 카자흐스탄 등 국외에도 소장되어 있음이 조사됐다. 그중에서 프랑스 파리국립도서관 소장본 191종 297책 가운데 186종이 어람용 의궤라는 점이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킨다.

많 은 어람용 의궤가 먼 이국땅에 소장된 연유는 원래 강화도 외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던 것을 1866년 병인양요 때 강화도를 점령했던 프랑스 군대가 퇴각하면서 본국으로 가져갔기 때문이다. 각 권이 상당한 무게인데다가 세로가 50cm, 가로가 35cm 가량의 작지 않은 크기의 의궤를 실어간 것을 보면 외국인의 눈에도 아름다운 비단 표지와 고급 놋쇠의 꾸밈새, 고급 지질, 화려한 채색 등이 높은 가치로 느껴졌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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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0 년(인조 8) 인목대비에게 올린 풍정을 기록한 『풍정도감의궤豊呈都監儀軌』에서부터 1754년(영조 30) 후릉·현릉·광릉·경릉·창릉·선릉·정릉의 표석을 세우는 과정을 기록한 의궤에 이르기까지 파리국립도서관 소장본 중에는 국내에 없는 유일본 의궤 30책도 포함되어 있다. 특히 『풍정도감의궤』는 가장 큰 규모의 궁중 연향을 의미하는 풍정에 대한 의궤로서 유일하다. 풍정은 숙종 이후로는 거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17세기의 궁중연향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

파리국립도서관 소장 외규장각 의궤에 대한 실사와 디지털화

파 리국립도서관 의궤는 그곳 사서로 근무하던 박병선 박사에 의해 1985년 국내에 소개되었고 1993년 한불정상회담에서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이 『휘경원원소도감의궤徽慶園園所都監儀軌』를 반환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외규장각 의궤의 반환은 당시 일단 무산됐지만 반환협상은 지금까지도 진행 중에 있다.
다행히 2000년대에 들어 국가적 차원에서 두 차례에 걸쳐 현지 실사가 이루어졌고 이 사업의 결과로서 파리국립도서관 소장 의궤에 대해서는 문화재청 국가기록유산 포털사이트www.memorykorea.go.kr에서 간략 서지와 이미지들을 제공하고 있다.

국가기록유산 포털사이트는 국가지정의 국보, 보물, 중요민속자료, 시도유형문화재 등 중요 전적문화재들의 이미지와 텍스트, 서지, 해제, 그리고 이와 관련된 다양한 영상 콘텐츠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특 히 유일본 의궤 30종의 전체 원문, 어람용 의궤 12책의 비단 표지를 확인할 수 있어서 의궤 연구자들에게는 그간의 궁금증이 해소되는 더없이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독자 여러분도 품격 있는 어람용 서책의 장황과 분상용에서는 느낄 수 없는 어람용 반차도의 정세한 묘사와 아름다운 채색을 즐겨보시기 바란다.

lundi 5 janvier 2009

“한국학, 사회과학과 소통 절실” - 중앙일보 /2008-12-18

“한국학은 고전적인 인문학의 범주를 탈출해 사회과학 영역으로 확장되지 않으면 존립 자체가 위협 받을 수 있다.”

연 세대 박명림(45) 교수의 주장이다. 지금까지 한국학은 역사·언어나 전통 사상을 중심으로 “우리 것은 좋은 것”이라는 자기 긍정의 학문에 치우친 바가 컸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는 국제 학계에서 보편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 어렵다. 한국학이 사회과학과 소통할 때 보편적 학문으로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박 교수는 18일 연세대 국학연구원(원장 백영서) 6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에서 이런 주장을 내놓았다. 학술대회의 주제는 ‘21세기 한국학: 세계 보편 담론을 향하여’다. 박 교수는 ‘세계 보편 담론’으로서 한국학이 자리 잡을 수 있는 영역이 민주주의 연구라고 제안했다.

한 국은 2차 대전 이후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이룬 나라로 손꼽힌다. 하지만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과 경로가 인문학 위주의 한국학에서 중심 의제가 된 적은 없었다. 또 사회과학에서 민주주의 연구는 한국의 정당 정치나 제도사를 서구 이론을 통해 해설하는 정도에 그친다. 박 교수는 “이승만·신채호·안중근이나 임시정부 헌법 등에 대한 연구를 독립운동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민주주의·인권·평등의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더 풍부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학과 민주주의론의 ‘쌍방향 통합’이 성공하면, 남미의 민주주의 연구에서 종속이론이 만들어진 것처럼 한국학에서 새로운 학문적 패러다임이 나올 수 있다”고 기대했다.

박 교수는 민주주의 연구를 가로막고 있는 가장 큰 장애물이 ‘이념의 과잉’이라고 말했다.  

배노필 기자

['직지'고장 청주서 조선 첫 금속활자 복원] - 매일경제/2008-12-18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 인쇄본인 `직지심체요절`의 고장 청주에서 조선시대 첫 금속활자 계미자를 비롯해 임진왜란 이전에 사용된 금속활자가 복원됐다.

청주시는 청주고인쇄박물관이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 청주대 한국문화연구소, 한국학 중앙연구원 등과 공동 연구를 통해 임진왜란 이전까지 조선시대에 사용된 금속활자 11종의 복원에 성공했다고 19일 밝혔다.

이번에 복원된 활자는 태종 3년(1403년)에 조선시대 첫 금속활자로 만들어진 계미자를 비롯해 경자자(1420년), 병진자(1436년), 경오자(1450년) 등과 16세기 초 중종때 제작된 병자자(1516년) 등이다.

이들 활자는 대부분 왕들이 자신의 통치철학 등을 널리 알릴 목적으로 각종 책자를 대량 제작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조선시대 인쇄문화 발전의 변천사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들 활자 복원에는 경북대와 청주대의 문헌정보학과 교수 3명, 한국학 중앙연구원 고문헌 관리학과 교수, 국립중앙과학관 학예연구관, 청주고인쇄박물관 학예연구사 등이 참가, 지난 2월부터 조선시대의 각종 문헌을 연구해 활자주조방법, 조판방법 등을 찾아냈다.

또 금속활자장 전수조교인 임인호씨가 활자 주조, 조판, 인출 등을 금속활자의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해 냈다.

연구진들은 이날 `2008 조선황실 주조 금속활자 복원사업 최종 보고회`를 갖고 복원한 계미자 등으로 찍어 낸 `송조표전총류` 등의 인쇄물과 함께 연구성과를 공개했다.

청주고인쇄박물관은 지난해에도 갑인자 계열의 활자 등 조선시대 10종의 금속활자를 복원하기도 했다.

이 박물관은 내년에도 각각 임진왜란 이후 만들어진 금속활자 10여종을 복원하는 등 2010년까지 조선시대 활자 35종을 복원할 계획이다.

청주고인쇄박물관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가장 위대한 문화유산인 `직지`를 비롯한 금속활자와 인쇄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활자복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며 "이 작업은 인쇄문화가 우리나라 역사발전에 어떤 역할을 했는 지를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bwy@yna.co.kr

(청주=연합뉴스) 변우열 기자

러 지리학자 “독도는 한국땅” - 서울신문 /2008-12-11

러 교사들에 독도 강연 글루시코프 자연사연구소 부소장

“독도는 한국의 고유한 영토임이 분명합니다.독도가 한국 영토라는 걸 증명하는 고문서와 지도는 많습니다.일본인들은 독도가 자신의 영토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근거가 없으니 부당한 주장이죠.”

한국인이 아닌 러시아 지리학자의 말이다.주인공은 러시아 국립과학아카데미 발레리 글루시코프 자연사 연구소 부소장.지리학 박사로 2000년부터 독도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그는 현재 러시아 내 최고의 독도 전문가다.

그 가 10일(현지시간) 러시아 교육아카데미 세미나실에서 현지 지리·역사 교사 20여명을 상대로 ‘독도’ 강연을 펼쳤다.‘한국강좌 시리즈’ 첫 순서로 마련된 이날 강의에서 러시아 교사들은 그가 준비한 독도 관련 영상 자료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독도 의 역사적 유래를 알아내기 위해 러시아에 있는 고지도를 모두 뒤지고 영토 분쟁을 다루는 국제법까지 공부했다는 글루시코프 부소장은 “최근 한국을 찾아 러시아 학자와 한국 학자들이 독도 문제에 함께 힘을 모으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코리아인앤아웃] 어떻게 조사했나…국적포기자 9만명 8개월간 분석 - 쿠키뉴스 /2008-12-12

[쿠키 사회] 정부수립 60주년을 맞은 올해 재외국민 참정권 실현 방안이 가시화되는 등 재외동포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본보는 재외동포의 현주소를 파악하기 위해 지난 3월부터 8개월에 걸쳐 법무부가 관보에 게재하는 국적포기자 명단을 수집, 9만873명에 대한 기본 정보를 자료화해 이를 분석했다. 고려대 사회학과 이명진 교수와 함께 전문 통계 분석 프로그램인 SPSS와 지리정보 시스템(GIS)을 활용, 이들의 본적·생년월일·국적포기일자·국적을 취득한 국가·국적 포기 사유를 입체적으로 살펴봤다.

이들 명단에 재외동포와 신규이민자가 혼재돼 있는 사실에 유념해 대한사회복지회·재외동포재단·보건복지가족부·법무부·외교통상부에 문의해 이들의 특성을 세분화했다. 분석 결과 일본 국적 취득자의 국적 포기 사례가 가장 많다는 점과 국적 포기 사유가 시대상의 변천에 따라 다변화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또 영·유아의 해외입양이 여전하다는 사실과 이른바 ‘허리 세대’인 20∼40대가 한국을 등지고 있다는 사실, 50대 이상의 은퇴 및 투자이민이 증가하는 실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일본·호주·필리핀의 한인타운을 직접 찾아 이들의 실상을 추적했다.

재외동포들의 실상은 한국에서의 예상과는 달랐다. 미국의 심장부인 뉴욕에 부촌(富村)을 건설하며 살아가기도 했고 한국의 숨막히는 사회환경과 기업문화를 등지고 조국을 ‘탈출’한 젊은이들도 많았다. 한국의 해외 이민 양태는 이제 한 단어로 정리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화됐다.

특히 일본에서 확인한 변화상들은 놀라웠다. 미국, 캐나다 등 이민 인기국가를 제치고 국적포기자가 가장 많았던 일본의 경우 ‘민족적 자존심’ 대신 실리를 택하는 젊은이들이 크게 늘고 있었다. 교포 2·3세들은 ‘자이니찌(在日)’라는 이름으로 차별받는 대신 일본 국적을 갖고 살아가는 방안을 택했다. 폐쇄적인 일본 사회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데 어려움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 교수는 “재외동포와 이민자 등 국적포기자에 대해 9만명 이상의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해 분석한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라며 “재외동포를 껴안기 위한 정책을 마련하고 귀화 외국인의 정착 지원 시스템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뉴스 분석 일본이 내년에 개정할 고교 교과서 지도요령에서 독도를 언급하지 않아 냉각된 한·일 관계가 풀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 중앙일보 / 2008-12-22

뉴스 분석 일본이 내년에 개정할 고교 교과서 지도요령에서 독도를 언급하지 않아 냉각된 한·일 관계가 풀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본은 지난 7월 중학교 학습요령 해설서에 독도가 일본 영토라고 기술,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개선 움직임을 보이던 한·일 관계를 악화시켰었다.

일 본 문부과학성이 22일 마련한 교과서 학습지도요령 초안에 따르면 “일본의 위치와 영역, 국가 간의 관계 등에 대해 이해시킬 것” “일본의 위치와 영역에 관련해선 세계적 시야에서 일본의 위치를 파악하는 동시에 일본의 영역을 둘러싼 문제도 언급할 것”(지리A 과목)이라고만 기술돼 있다.

지리B 과목 초안도 “현대 세계의 민족·영토 문제를 대관(大觀)시킬 것”이라고만 기술하면서 독도는 언급하지 않았다.

문부과학성은 이 초안을 놓고 한 달간 여론 수렴 기간을 거쳐 내년 1월 말~2월 초에 최종안을 확정해 관보에 공시할 전망이다.

일 본의 이 같은 조치는 지난 13일 한·중·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는 한·일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요미우리(讀賣) 신문에 따르면 아소 다로(麻生太郞) 총리가 내년 1월 10일부터 사흘 일정으로 한국 방문을 추진 중인 것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신문은 22일 “아소 총리가 한·일 셔틀외교의 일환으로 방한해 이명박 대통령과 금융위기, 북핵 문제를 논의할 계획”이라며 이같이 보도했다.

지 난 4월 이명박 대통령의 방일로 정상화의 길로 들어서던 한·일 관계는 7월 독도 사태를 계기로 급랭했다. 권철현 주일대사는 역대 주일 대사 중 최장 기간인 3주간 본국에 소환됐다. 한국 등 주변국과의 관계 개선에 집중했던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당시 총리의 지지율 역시 독도 사태로 추락을 면치 못했다.

따라서 일본 정부가 이번에 독도 언급을 피한 것은 내각 지지율이 20% 아래로 떨어진 가운데 더 이상 외교 분야에서 분쟁 소지를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분석된다.

하 지만 해가 바뀌어도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면 아소 총리가 지지율 만회를 위한 마지막 카드로 영토 문제를 꺼내 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있다. 자민당의 주요 지지 기반인 극우파들이 “일본은 영토·역사 문제에 강경 대응해야 한다”고 당에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한국,中전통문화 보존에 공헌"[中학자] / 매일경제 / 2008-12-27

중국의 저명한 역사학자인 거젠슝(葛劍雄) 교수는 27일 한국은 중국의 전통문화를 보전해온 공헌이 크다고 말하고 중국은 한국과 역사 해석 문제로 다툴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중국 푸단(復旦)대학 도서관장 겸 중국역사.지리연구소 교수인 거젠슝 교수는 이날 광둥(廣東)성 과학도서관에서 열린 포럼에서 '개혁.개방과 중국의 현대화'를 주제로 강연하면서 이같이 주장했다고 포털 사이트 써우후(搜狐:www.sohu.com)가 28일 보도했다.

거젠슝 교수는 한국이 중국 전통 문화를 보존한 것은 중국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고 강조하고 중국은 역사에 대한 과장이 없느냐고 반문하면서 한국의 역사에 대한 과장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거젠슝 교수는 또 국민성은 명학하게 규정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말하고 민족간에 구별이 있는 것도 사실이어서 민족주의는 피할수 없고, 정부들이 민족주의를 이용하고 있지만 정도를 넘어서는 안된다고 역설했다.

sdcho@yna.co.kr

(베이징=연합뉴스) 조성대 특파원

[특파원칼럼] "한국은 과연 통일을 원하는가?" / 조선일보 / 2008-12-19

이하원·워싱턴 특파원 May2@chosun.com

현재 미 국무부에서 한반도 정책을 총괄하는 동아태 차관보는 크리스토퍼 힐(Hill)이지만, 4년 전 그 자리에는 제임스 켈리(Kelly) 가 있었다.

미국의 초대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를 역임한 그는 대북(對北) 온건파로, 지금의 힐 차관보 못지않게 남북한의 주목을 받은 인물이다. 다변(多辯)의 힐 차관보와는 달리 다소 어눌한 켈리 전 차관보는 한국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 적이 별로 없다. 지난해 5월 그를 인터뷰했을 때도 북한과 관련된 발언만을 주로 들을 수 있었다.

그랬던 켈리 전 차관보가 미국의 닉슨 연구소가 발간하는 '내셔널 인터리스트' 최신호에서 한국에 대해 비판적인 분석을 했다.

그는 '지금 당장은 두 개의 한국(Two For Now)'이라는 제목의 기고에서 미국 사회 일각에서 제기하는 북한 붕괴론의 문제점을 비판했다. "북한을 제거하는 것은 희망일 뿐이며, 이를 급속히 추진하는 것은 위험하고 비용이 많이 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러면서 '한반도 현상유지'의 중요한 논거(論據)로 삼은 것은 한국사회의 북한에 대한 태도였다. 그는 "한국의 비약적인 경제적 성공은 역설적으로 한국 국민들이 분단의 현상유지를 편안하게 여기며 살도록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또, 한국인들은 추상적으로는 통일을 선호하지만 경제적 궁핍과 북한 주민들을 흡수해야 하는 잠재적인 비용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 결과가 "북한에 대한 엄청난 무관심과, 한국 정부의 정치적 성향에 관계없이 북한과의 긴장을 회피하고 심지어 '보호용' 자금을 주는 경향을 낳았다"는 것이다.

한반도 정책을 4년간 담당했던 켈리 전 차관보의 분석은 분단국가인 한국이 미국에 어떻게 비치는지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 정부 관계자와 한반도 전문가들은 한국 내에서 북한 인권에 대해서 말하면 "또 그 이야기냐"며 지겨워하는 상황을 잘 알고 있다. 이들은 보수주의 정권이 들어선 후에도, 북한의 '협박'에 굴복해서 집권당 대표까지 나서서 민간단체의 대북 삐라(전단) 살포를 가로막는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탈북자들이 한국 대통령보다 미국 대통령을 만나는 것이 훨씬 더 쉽다"며 조소(嘲笑)하는 한반도 전문가들도 있다.

워싱턴 포스트가 최근 국제면 톱기사와 사설을 통해 북한의 강제수용소를 탈출한 신동혁씨를 보도하면서 한국의 대북 무관심을 지적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 신문은 "신씨가 살고 있는 한국에서 단지 500명만이 그의 책을 샀다는 사실은 끔찍하다(horrifying)" 고 비꼬았다.

문제는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과 언론의 이 같은 분석이 낯뜨겁게 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의 대북 무관심과 한국이 북한의 위협에 잇달아 굴복하는 현실은 미국의 대(對)한반도 정책 형성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미 국무부, 국방부의 정책 결정 담당자들이 한반도 정책을 논의할 때 켈리 전 차관보처럼 당분간은 한반도 통일이 아니라 현상유지를 해야 한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이 제기되면서 북한 문제는 내일 처리해도 될 문제에서 '오늘의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가 전체적으로 북한에 대한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워싱턴에서 한국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기는 어려울 것 같다.

신뢰도 떨어진 한국사회…직장인 불신 심각 - CNB뉴스 / 2009-12-22

김대희 기자 CNB뉴스,CNBNEWS ,씨앤비뉴스

한국사회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서 직장인들의 불신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개혁이 가장 시급히 이뤄져야 할 분야는 '정치'로 나타났다.

22일 온라인 리크루팅 업체 잡코리아가 지난 1일부터 10일까지 국내외 기업에 재직 중인 남녀 직장인 1,58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사회 개혁 필요성 인지 여부’ 조사 결과, 국내외 기업에 재직 중인 직장인 10명 중 8명은 ‘한국사회에 대해 신뢰할 수 없다’고 답했으며, 불신의 정도는 남성 직장인(82.3%)이 여성 직장인(76.9%)에 비해 더 깊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설문에 참여한 남녀 직장인 80.0%(1,265명)가 ‘한국사회를 불신한다’고 답했으며, ‘한국사회를 신뢰한다’고 답한 직장인은 7.4%에 불과했다. 특히, 남성 직장인들의 불신 정도는 82.3%로 여성 직장인(76.9%)에 비해 5.4%P 더 높았다.

또한, 국내 직장인들은 우리나라 사회 전반에 걸쳐서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사회에 개혁이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10명 중 9명 수준인 91.7%(1,449명)의 직장인이 ‘개혁이 필요하다’고 답했고, 개혁이 가장 시급히 이뤄져야 할 분야(*복수응답)로는 ‘정치(72.0%)’를 꼽았다.

다음으로 관공서 및 공무원 조직(48.0%), 초/중/고등학교 교육(41.3%), 노동계(21.1%), 대학(19.2%), 의료기관(14.0%), 종교단체(13.8%), 시민운동 단체(8.7%), 문화/예술/체육계(7.0%), 군대(6.5%), 환경운동 단체(4.6%) 등의 부문에서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답했다.

개혁을 이루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해당 기관의 자체적인 개혁의지(42.4%)’가 1위로 뽑혔으며, 다음으로 시민들의 개혁의지(31.9%), 정부의 지원(23.3%)등의 의견이 있었다.

한편, 우리나라가 과거에 비해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는지는 63.9%의 직장인이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답했으며,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의견은 20.4%, ‘부정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답한 의견은 15.7%였다.

vendredi 19 décembre 2008

Ces médecins français au chevet de Kim Jong-il / Le Figaro, 11/12/2008

Georges Malbrunot

Le leader nord-coréen aurait visité le zoo de Pyongyang récemment. Un neurochirurgien français appelé en octobre au chevet de Kim Jong-il lève un coin du voile : «Les photos qui viennent d'être publiées me paraissent actuelles et authentiques. Il me semble qu'il est aux commandes du pays.» Crédits photo : AFP
Pour la première fois, des chirurgiens français témoignent sur leurs consultations secrètes auprès des dirigeants nord-coréens depuis plus de quinze ans.

Au printemps 2004, le professeur Yves Boin (1) reçut un étrange appel téléphonique. «Les services de renseignement français pensaient que j'étais en possession d'un tube de sang du leader Kim Jong-il, qui aurait eu le sida», raconte ce neurochirurgien, qui fut l'un des premiers membres de la filière médicale française à soigner des dignitaires de la nomenklatura nord-coréenne. C'était au début des années 1990. Il s'agissait de la femme de Kim Jong-il, sa favorite, Ko Young-hee, atteinte alors d'un cancer. Sécurité oblige, son entourage allait exiger qu'un étage entier de l'hôpital fût vidé ! «Ils étaient prêts à payer, mais je m'y suis opposé», se souvient ce chirurgien, aujourd'hui à la retraite, qui opéra, de nouveau, quelques années plus tard cette ancienne actrice, avant qu'elle ne succombe à la maladie à l'Institut Curie, à Paris, où elle avait été transférée dans le plus grand secret en 2004.
Le régime communiste récompensa le Dr Bouin, en l'invitant régulièrement à Pyongyang pour du «conseil médical». Le spécialiste y séjourna à quatre reprises, en famille, hébergé dans un hôtel qui disposait d'un système de couloirs souterrains, permettant d'accéder directement aux appartements du dictateur. Ensuite, «dès qu'il y avait un problème, poursuit le médecin, les Nord-Coréens m'appelaient pour récupérer des valves cardiaques, ou pour que je leur procure de l'héparine». Les contacts étaient initiés par Tchoë-il, leur représentant auprès des Nations unies à Genève, la très secrète cité suisse, qui sert au régime à la fois de porte ouverte sur le monde et de coffre-fort. De là, Tchoë-il, parfaitement francophone, va tisser des liens avec une poignée de praticiens français, qui parviendront à percer l'un des secrets les mieux gardés au monde, celui entourant la santé du dirigeant de la dernière citadelle communiste sur la planète, celle-là même que George Bush a placée sur l'«axe du mal», pour avoir fabriqué l'arme nucléaire.
Une valise remplie de won
Dernier d'entre eux à s'être rendu, fin octobre, au chevet de Kim Jong-il, François-Xavier Roux, chef du service de neurochirurgie de l'hôpital Sainte-Anne, à Paris, a accepté, pour la première fois, de lever un coin du voile sur sa mission à Pyongyang. «Kim Jong-il a été victime d'un accident vasculaire cérébral, mais il n'a pas été opéré. Aujourd'hui, il va mieux. Les photos qui viennent d'être publiées me paraissent actuelles et authentiques. Il me semble que Kim Jong-il est aux commandes de la Corée du Nord. Je ne peux pas en dire plus, je suis tenu au secret médical et au secret d'État», affirme cet ami du ministre des Affaires étrangères, Bernard Kouchner, un ancien comme lui de l'ONG, Médecins du monde.
À chaque gros pépin de santé du leader ou d'un de ses proches, un médecin français accourt à Pyongyang. En novembre 1991, Kim Il-sung, le fondateur du pays et père de l'actuel dictateur, souffrait d'une déficience cardiaque. Après avoir essuyé un refus de la Suisse, Tchoë-il se tourna vers des cardiologues lyonnais. «Il est arrivé un jour en nous présentant un électrocardiogramme d'un patient qui nécessitait l'implantation d'un pacemaker», se rappelle un anesthésiste. De qui s'agit-il ? «D'une personnalité nord-coréenne, c'est tout ce qu'on nous répondit.» Dix jours plus tard, l'anesthésiste, un chirurgien, sa femme, et une infirmière embarquèrent pour Pyongyang, dûment accompagnés par l'inévitable Tchoë-il. Première surprise : à l'aéroport de Genève, dix énormes sacs, enregistrés au titre de la valise diplomatique, donc dispensés de contrôle, jouxtent leurs bagages. L'équipe médicale découvrira leur contenu à son arrivée à Pyongyang : 350 stimulateurs cardiaques, d'une valeur totale d'environ un million de francs de l'époque (650 000 euros). «C'est ainsi que le régime contourne les sanctions qui le frappent pour s'approvisionner en matériels ou en médicaments rares» , constate le Dr Bouin.
Après avoir posé une quinzaine de pacemakers à de jeunes militaires, un soir, on les avertit que le patient du lendemain serait une personne âgée. Mais sur la table d'opération, pour qu'on ne le reconnaisse pas, l'homme portait des lunettes aux verres brisés. Ce n'est qu'à leur retour en France que l'équipe médicale aura la certitude qu'elle avait bel et bien soigné Kim Il-sung. Le Quai d'Orsay lui demanda, en effet, de confirmer une requête de la Corée du Sud, qui avait été mise au courant de la présence de chirurgiens étrangers auprès de leur voisin… Pour les remercier, les Nord-Coréens leur offrirent, à chacun, une valise remplie de won, la monnaie locale. Modeste solde, en fait ! «Tous les soirs, on nous emmenait dans des magasins où l'on a dû dépenser l'équivalent de 700 euros d'aujourd'hui», se souvient l'anesthésiste, qui ramena du parfum local à son épouse.
«On ignore qui on opère»
Quelques années plus tard, c'est Kim Jong-il, qui se blessera en faisant une mauvaise chute à cheval. Traumatisme crânien avec hémorragie cérébrale, pronostiquèrent des médecins locaux. «Faut-il l'opérer ?», s'interrogea la famille. Dans le doute, on sollicita un neurochirurgien parisien, qui se souvient encore avoir vu «débarquer» dans son bureau deux diplomates nord-coréens, le priant de partir immédiatement. «Un grand scientifique était malade, me jura l'un d'eux, tandis que l'autre ajoutait “ah, c'est idiot, j'ai oublié son dossier médical à Pyongyang”, en me dessinant le résultat du scanner qu'il avait volontairement laissé en Corée du Nord pour préserver l'anonymat du patient.»
Le neurochirurgien se rendit sur place, mais à Pyongyang, il ne vit jamais le malade. Seulement des images de scanners que lui présentèrent des médecins. Finalement, le Français estima qu'une opération n'était pas indispensable. Mais la famille de Kim Jong-il ne se satisfit point de cet arbitrage. Elle en réclama un second, et fit venir de Lyon deux autres neurochirurgiens, qui rendirent le même avis, sans savoir, bien sûr, que d'autres les avaient précédés. Quelques années plus tard, l'un des Lyonnais, appelé de nouveau à Pyongyang, constata que le goût du secret y était toujours aussi fort : «J'ai opéré une douzaine de patients du rachis lombaire, sans savoir qui c'était», avoue ce chirurgien, qui allait connaître quelques sueurs froides. Les Nord-Coréens autorisèrent sa femme à rentrer en France, sitôt ses interventions terminées, mais lui dut patienter une semaine supplémentaire… Un souvenir aigre-doux quand on se rappelle que des Japonais ont mystérieusement disparu en Corée du Nord dans les années 1970.
Entre le milieu médical français et la Corée du Nord, la relation n'est pas à sens unique. Paris est une capitale très prisée du régime communiste. «Régulièrement, raconte un chirurgien parisien, je suis contacté par des diplomates nord-coréens qui me demandent de rédiger une invitation afin qu'un de leurs responsables obtienne un visa pour se faire soigner à Paris.» Le document est délivré, en général, par le consulat de France à Pékin, étape obligée sur la route de Pyongyang. Informé de ces allées et venues, le ministère de l'Intérieur place discrètement une équipe de la DST sur les traces de ces «patients nord-coréens à haute valeur ajoutée».
Mystérieux suicide à Paris
C'est le cas notamment du fils aîné du leader, Kim Jong-nam, 37 ans, qui était encore à Paris en octobre. Ce noceur défraye régulièrement la chronique, pour ses virées à Macao et Pékin. «Un peu grassouillet», d'après l'un de ses médecins parisiens avec qui il communique par courriel, Jong-nam souffrirait de problèmes cardiaques, comme son père et son grand-père… Après des études en Suisse, cet héritier potentiel est parfaitement francophone. Comme sa cousine germaine, Jan Kung Song, qui étudiait à Paris, avant d'y être retrouvée morte en août 2006. Un suicide, selon certains. À 29 ans, la nièce du dictateur aurait refusé de rentrer au pays… Une mystérieuse disparition sur laquelle les médecins français et la DST affichent le plus grand silence.
Pourquoi la Corée du Nord choisit-elle des spécialistes français ? «Notre médecine est l'une des meilleures au monde», répond un des chirurgiens. «Et puis, ils doivent apprécier une certaine indépendance de la politique française», ajoute-t-il. Quant aux praticiens, «c'est le genre de voyage qui pimente notre vie», résume l'un d'eux.
(1) Pour préserver le secret médical, les médecins ont accepté de répondre à nos questions sous le couvert de l'anonymat ou sous un pseudonyme.


Source : http://www.lefigaro.fr/international/2008/12/11/01003-20081211ARTFIG00047-ces-medecins-francais-au-chevet-de-kim-jong-il-.php

lundi 15 décembre 2008

[인터뷰] 국제교류재단 공로상 도이힐러 교수 / 매일경제 2008-12-02

"홍(洪)씨라..본관이 어디인가요?" 한국역사 연구와 교육에 탁월한 업적을 인정받아 제1회 한국국제교류재단(이사장 임성준) 공로상 수상자로 뽑힌 마르티나 도이힐러(73.여) 런던대학교 동양.아프리카대(SOAS) 명예교수는 '한국학의 대가' 답게 취재기자 명함을 받자마자 유창한 한국어로 '성씨 본관'을 물었다.
도이힐러 교수는 한국학 연구의 현주소에 대해 "요즘 국내외를 막론하고 한국학을 공부한다는 사람들이 말은 유창해도 한자 공부를 잘 안하는 편이라 안타깝다"며 운을 뗀 뒤 "어렵다고 한문 공부를 안하면 어떻게 한국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 전통의 핵심을 연구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한자 실력을 묻는 '도발적인 질문'에 "5천자는 넘겠지요"라고 했다가, 금방 "이젠 늙어서 많이 잊어버렸으니 한 4천∼5천자쯤 되겠다"고 수정했다.

스위스 출신의 하버드대 박사(역사 및 극동언어)로 유럽한국학회(AKSE) 창립회원이자 영국 학술원 회원인 그는 현재 서강대 사학과 초빙교수로 국내에 체류중이다. 10일 오후 7시 호암아트홀에서 국제교류재단상을 받는다.

다음은 일문일답.

-- 서양 사람으로서 한자 공부하는 게 어렵지 않았나.

▲라인대학에서 먼저 중국 고전을 연구하고 한국학을 해서인지 한자 때문에 큰 고생은 없었다. 오히려 표현 방식이 광범위하고 복잡한 문법체계를 가진 한글이 더 어려웠다.

-- 한자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해왔는데.

▲40년 전 한국에 처음 왔을 때만해도 주변이 온통 한자 투성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한글 전용 교육' 등의 때문인지 한자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특히 요즘 대학생을 비롯한 한국의 젊은 세대들이 한자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 학자나 일반인의 입장에서 볼 때도 몹시 안타깝다. 한글이 우수한 글자임에는 틀림없지만 한국의 전통문화가 담긴 한자 공부를 병행할 때 한글의 우수성도 더욱 빛날 수 있다고 본다.

-- 한국학에 관심을 갖게된 배경은.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 주제인 구한말 외교사를 공부하던 1967년 서울대 규장각에 개항 당시와 관련된 풍부한 사료가 있다는 말을 듣고 처음 한국에 와 2년간 규장각 사료를 뒤적이며 공부했다. 1973년 다시 한국에 왔고 1975년 취리히대 한국학 교수로 임용됐다. 1988년 한국학 연구센터가 세워진 런던대로 자리를 옮긴 이후 거의 해마다 한국을 찾아왔다.

-- 1992년 출간된 저작 '한국의 유교적 변환: 사회와 이데올로기 연구'(하버드대 출판부)으로 각종 학술상을 휩쓸었는데.

▲한국학 전문가 소리를 듣기에는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고 본다.

-- '한국의 유교적..' 책의 한글판이 12년만인 2004년에야 나온 이유는.

▲역사학에는 특별한 이론이 필요없어서 문화인류학의 이론을 빌려 연구한 때문인지 여러 학문 분야에 관련된 각종 용어들이 몹시 어려운 편이다. 모 대학 교수들이 번역하다가 도중에 포기했다.

-- 한국학 진흥을 위한 주요 과제는.

▲한국정부의 재정 지원도 많이 늘고 좋은 시설도 갖추고 있는 등 과거에 비해 여건이 좋아졌지만 열정을 가진 연구 인력을 찾는 게 중요하다. 또, 어떤 작업이나 일정한 시간 과정이 필요하다. 조급한 마음으로 무언가 하루아침에 이루려 애쓰지말고 꾸준히 연구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다.

-- 한국학의 세계화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영어구사 인력 문제를 제기했는데.

▲한국의 학계가 당면한 큰 문제중 하나가 외국어 능력을 갖춘 인재가 크게 부족한 것이다. 해외에서 토론 등을 통해 좋은 아이디어들을 얻어야 하는데 한국의 학자들은 언어 문제 등으로 인해 이런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영어 뿐 아니라 한국어로도 충분한 논의를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학문의 발전을 위해 이처럼 의사소통 수단의 확보가 중요한데 영어는 '링구아 프랑카'(lingua franca 모국어를 달리하는 사람들이 상호이해를 위해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언어) 역할을 잘 해왔다.

-- 한.중.일 등 동아시아 연구에서 한자도 일종의 '링구아 프랑카'가 될 수 있나.

▲그렇다. 조선시대만해도 한.중.일 3국은 한자를 매개로 한 필담을 통해 의사소통을 하지 않았나. 다만, 최근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3개국 모두 옛날 한자(번체자) 대신 간체자를 배우는바람에 번체자와 간체자에 각각 익숙한 기성 세대와 젊은 세대간 소통에 어려움이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 현재 준비중인 연구 주제는.

▲유교사상이 조선시대의 사회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연구의 일환으로 빠르면 내년말까지 안동과 남원 등 향촌지역의 사족(士族) 연구를 할 계획이다.

duckhwa@yna.co.kr

(서울=연합뉴스) 홍덕화 기자

Séoul, la future capitale du design / Metro France 2008-12-02

Samsung, Daewoo, LG… La Corée a conquis le monde avec ses grandes marques technologiques. Mais pourriez-vous citer le nom d’un architecte ou d’un créateur coréen ? Alors que l’on désigne toujours Hong Kong, Tokyo ou Shanghai parmi les capitales asiatiques les plus influentes, Séoul sort de son sommeil et sort les grands moyens pour promouvoir ses jeunes talents. Préparez-vous au boom artistique du Pays du matin calme : Séoul a déjà été désignée capitale mondiale du design en 2010.

Des designers prometteurs
Le coup d’envoi a été donné cet automne. En octobre, le stade Jamsil (où se sont déroulés les JO de 1988) a abrité la Seoul Design Olympiad, gigantesque exposition de designers locaux, avec quelques grands noms étrangers invités (Newson, Matali Crasset). Pour l’occasion, l’extérieur du stade a été décoré de guirlandes constituées de bouteilles et autres déchets en plastique, pour allier l’aspect esthétique aux symboles : consommation, recyclage... A l’intérieur, l’expo “Design is Air” regorge de trouvailles surprenantes, amusantes, bourrées de talent. Une aile a été réservée à Zara Hadid : ses tables fuselées et ses étagères tracées comme un coup de couteau réconcilient la sensualité des lignes et la très haute conception technique.

Deux millions de visiteurs se sont pressés à cet événement culturel hors normes. Des conférences, un festival et une compétition ont été organisés en amont. Eun-Sook Kwon, directrice du SDO, précise : “Ecologie, sécurité et efficacité sont les valeurs de base de ces projets de design. Nous voulons montrer aux Coréens que le design fait partie de leur vie quotidienne, qu’il peut l’embellir. Ces projets ne sont pas réservés aux temps de prospérité.”

Young Se-Kim est un précurseur dans ce domaine : il a fondé Inno-Design en 1986, dans la Silicon Valley, et a vite connu un succès international. Son micro-ondes pour Samsung a été le premier de la marque a avoir été dessiné pour l’export. “Je veux créer un design facile à réaliser pour en fabriquer un très grand nombre et que les prix restent bas. Pour moi, c’est de la logique plus que du marketing : le design doit penser aux autres.” Les jeunes Coréens avaient l’air de beaucoup apprécier ses lecteurs MP3 en forme de poudrier Barbie et ses baskets dorées…

Un nouveau paysage urbain
Ce qui trahit de la façon la plus flagrante le déséquilibre entre développement technologique et développement culturel, c’est le paysage urbain. Séoul est une mégalopole de 10 millions d’habitants où les espaces verts sont plus que rares, même si la ville est entourée de magnifiques collines où l’on part randonner les week-end. Avec ses façades de rouille, ses néons, son verre et son béton, l’immeuble Wellcomm fait davantage penser à un bunker de Berlin-Est qu’à un bureau de création.

Son architecte, Seung Sang, n’a pourtant rien d’austère. L’un des plus grands architectes coréens reçoit sans façon, bienveillant derrière ses lunettes rondes. “Mon œuvre repose sur quatre principes : l’intégration dans la ville, la fonctionnalité, l’espace et la forme de l’immeuble. J’aime la simplicité, les matériaux peu onéreux, même si je pense à présent à utiliser des pierres volcaniques.” Quand on lui demande si un style architectural typiquement coréen commence à émerger, il répond humblement : “La nationalité de l’architecte ne compte pas, seul le lieu est important. Moi-même, je suis influencé par tant d’architectes étrangers, en permanence. Mais je trouve la jeune génération d’architectes très prometteuse.”

Espérons que l’un d’eux remportera le concours du Dream Hub, projet d’urbanisme visant à réaménager le quartier de Yongsan d’ici à 2013. La très belle tour en forme de goutte d’eau n’est qu’un exemple de ce futur quartier qui comprendra des bureaux, un centre culturel et des appartements dans un écrin plus vert et plus écolo. On doit connaître courant décembre le nom de celui qui dessinera la tour emblématique de Yongsan qui, à long terme, devrait évoquer Séoul comme l’Empire State Building à New York et la tour Eiffel à Paris.

Parallèlement, le Renais­sance Project souhaite revaloriser les berges de la rivière Hangang, qui coupe la ville en deux.

Beaux et stylés
Séoul, capitale de la mode ? Ça pourrait ne pas tarder, au vu de la Fashion Week qui s’est déroulée en même temps que les festivités du design. De la mode 100% coréenne, représentée par une quarantaine de stylistes. Les défilés ont montré des modèles inégaux, mais souvent intéressants. Sangbeg Ha aime les couleurs fluo. Ses mannequins, grands, maigres et boudeurs comme les Occidentaux, portent fièrement le tulle et le coton transparent. Ses influences ? Elles vont d’Alice au pays des merveilles à Dark Vador dans Star Wars…

Lee Seoktae, qui a étudié à Paris, jongle entre les basiques et les styles conceptuels. Ses pantalons sont aussi rigides que ses robes sont fluides. Quant à Lee Bomi, elle a gagné un concours de mode organisé par Air France en 1997 ; trois ans plus tard, elle a lancé sa marque, Veto by Leebomi. Professeur de stylisme à l’université de Sangmyung, elle a présenté une ligne où chaque pièce peut être coordonnée aux autres. Facile à porter, mais exigeante en matière de coupes. La crise économique ralentit mais ne stoppe pas l’élan que Séoul donne à sa culture moderne. En 2010, la ville devrait porter fièrement son étendard de capitale mondiale du design.

Et d’ici à 2015, parions qu’elle pourra égaler en influence Tokyo, sa rivale éternelle.

Jennifer Lesieur

"한국사회 이주여성 이중차별" / 경남일보 2008-11-26

“한국사회에서의 이주여성은 ‘외국인’과 ‘여성’이라는 이중차별을 받고 있는 실정이며 이를 위해 사회적 편견을 없애고 장기체류를 위한 법적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
 2008경남세계여성인권대회 이틀째인 26일 오전 11시부터 ‘이주여성의 인권보장’을 주제로 워크숍이 마련된 가운데 (사)외국인노동자 인권을 위한 모임 정귀순<사진> 대표는 ‘이주여성의 인권’을 주제로 한국사회에서의 이주여성의 인권 현실과 개선점에 대해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이날 정 대표는 “한국사회의 외국인 체류수가 지난해 8월 106만여명으로 100만명을 돌파했고 이중 결혼이민자가 11만명에 달하고 있으며, 한국사회에서의 이주여성은 취업을 위한 이주노동자가 33%, 결혼을 통한 정주자로서 이주여성이 67%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국 이주여성 현황을 밝혔다.
 그는 “지난 96년부터 인권상담을 해왔는데 노동자로서의 이주여성은 법에 의한 노동시간이 월평균 210.8시간, 급여가 114만4000원이지만 임금체불을 비롯해 작업장에서의 언어폭력, 성폭행 등을 당하고 있지만 이를 호소할 수 있는 장치조차 없다”고 지적했다.
 또 정 대표는 “결혼을 통한 이주여성의 경우 결혼중계업의 난립횡포를 비롯해 이혼 후 법제도 미미, 정보차단, 사회적 편견 등으로 차별을 받고 있다”며 “노동자 여성이주자가 장기체류할 수 있는 정주 허용을 기준 넓히고 제도 내 차별 금지, 비등록 노동자 문제 해결을 위해 제도 보완, 결혼 여성이주자의 안정적 체류를 위한 영주권을 보장, 이혼 후 피해여성에 대한 충분한 보상과 다문화가족의 자녀교육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이주여성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주여성들이 가장 힘든 점이 이주여성을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편향된 시각이며 한국에 살아도 한국인인지 외국인인지 혼란스럽다고 했다”며 “특히 법적 제도, 대안마련도 중요하지만 한국에서 사회적 인식으로 인해 차별을 받고 있는 이주여성들이 사회적 편견을 받지않고 한국인과 더불어 한국사회의 일원으로 자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좌장을 맡은 김은경 창원대 교수도 “지난 99년부터 이주노동자 상담교육을 지원하고 있지만 이주여성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여성차별과 이주민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었고 한국인의 인식전환의 필요성이 충분히 공감된다”고 말했다.

김정희 기자

‘삼강행실도’ 지배층의 백성훈육 교과서 / 한겨레 2008-11-28

고금변증설 /

국가라는 권력기구를 작동시키는 것은 사회의 지배세력이다. 지배세력은 자신들의 지배를 정당화·영속화하기 위해 국가권력의 강제력을 이용해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피지배층의 대뇌에 설치하려고 한다. 뉴라이트가 국사 교과서를 문제 삼고 나오는 것은, 스스로를 한국 사회의 지배자라고 자신하기 때문이다.

1432년 6월9일 집현전은 <삼강행실도>를 엮어 세종에게 올린다. 한 해 전 충·효·열을 실천한 신하와 자식, 아내의 사례를 뽑아 책으로 엮으라는 세종의 명을 따른 것이다. 세종은 책을 서울과 각 지방에 나누어 주어 우부우부(愚夫愚婦)들이 책에 실린 행위를 본받게 하라고 다시 명한다. 이 책은 2년 뒤인 1434년 11월24일 인쇄되어 여러 지방에 보급된다. 하지만 한문으로 쓰인 책이라 백성들은 읽을 수 없었다. 이 책에 그림이 붙어 있는 것은 이 때문이었다. 세종은 지방관과 지방의 지식층이 문맹의 백성들에게 그림을 보여주며 설명을 해 주라고 명했던 것이다. 한데 지방관과 지식층은 열심이었던 것 같지는 않다. 새로운 도구가 필요했다. 세종은 1443년에 백성을 가르치는 문자, 곧 한글을 만든다. <삼강행실도>는 한글 창제 이후인 성종 때 원본을 3분의 1로 축약한 국문번역본이 나오면서부터 백성들 사이에 스며들기 시작한다.

<삼강행실도>는 조악한 느낌이 들 정도로 볼품이 없어 보이지만, 이 책은 백성을 가르치기 위한 최초의 책이라는 점에서, 또 조선 사람들의 위계적 윤리의 실천지침이 되었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책이다. 즉 지배층이 백성을 가르치겠다는 생각을 실천에 옮긴 것은 한국 역사상 이 책이 최초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양반 체제는 한글로 된 책을 다양하게 인쇄해 백성들에게 공급하거나, 원하는 백성이면 모두 배울 수 있는 학교를 만들 생각은 전혀 없었다. 양반들은 되도록이면 백성을 무식하게 만들고, 자신들의 통치에 필요한 만큼 적은 지식만을 주입하면 그만이었다. 어떤 교육 내용을 어디서,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하는 것은 백성에게 묻지 않았다. 백성들 역시 일방적 교육에 비판과 저항의 목소리를 낼 길이 없었다.

모든 국민이 학교에서 교육을 받게 된 것은 1948년 이후의 일이다. 모든 국민이 교육을 받게 된 것을 사회 발전의 명백한 증거로 보기도 한다. 모든 국민에게 교육기회의 균등을 보장한다는 의무교육은, 외견상 선량한 의도를 띠고 있지만, 그 이면은 여간 복잡하지 않다. 무엇보다 교육하는 주체인 국가와 교육을 받는 국민의 관계가 권력적이라는 것이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학교에 다니지 않을 자유가 없다는 것이다. 의무교육 기간은 물론이고, 고등학교와 대학의 경우도 다니지 않을 수 없다. 국가는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학벌을 따지는 사회를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고등학교와 대학 진학을 거부하는 것은, 사회에서 도태되기를 자원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교육이 권력적 관계를 전제로 한다는 것을 한층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교과목의 구성과 평가다. 즉 피교육자인 학생은 교과목의 구성과 내용에 대해 어떤 비판도, 항의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수영에 능한 신체조건을 갖춘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에게 수영이란 과목을 필수과목으로 부여하고 평가한다고 상상해 보자. 수영은 후자에게 꼴찌를 담보하는 과목이 될 뿐이다. 결코 공평하지 않다. 교과목의 구성은 바로 이 수영처럼 일방적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아무도 그것에 대해 비판하거나 항의할 수 없다.

이런 예에서 보듯 근대국가의 교육제도가 갖는 일방적인 과목 구성과 평가는, 피교육자에게는 저항과 비판이 불가능한 일방적 권력 행사가 된다. 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균등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명분하에 일방적 권력 행사를 통해, 개인의 대뇌를 열고, 자신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강제적으로 설치한다. 조선조의 교육과 근대교육은 이런 점에서 동일한 속성을 갖는다. 즉 조선의 지배층인 양반들은 백성들을 교육에서 소외시키고, 자신의 지배에 꼭 필요한 만큼의 프로그램을 백성들의 대뇌에 설치함으로써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시키려 했다면, 현대 국가는 국민 전체에 교육기회를 균등하게 제공한다는 구실로, 자신에게 필요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국민의 대뇌에 설치하려고 하는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뉴라이트 세력의 역사 교과서 역시 이 점과 관련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뉴라이트 세력은 왜 자신들의 역사관을 일반 출판이 아니라 굳이 교과서를 통해 펼치려고 하는 것인가. 말할 것도 없이 국가 교육의 권력이 갖는 일방적인 강제력 때문이다. 이 강제력을 통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역사의식을 학생들의 대뇌에 일방적으로 설치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다른 교과서가 아닌, 국사 교과서에 집중하는 것인가.

국사는 수학처럼 부동의 진리를 가르치는 과목도, 인간 행위의 준칙에 대해 숙고하는 윤리를 가르치는 과목도 아니다. 국사는 대한민국의 국가권력이 행사되는 공간 안의 모든 개인을 세뇌하는 기본 도구다. 개인이 근원적으로 경험할 수 없는 사건을 동일하게 경험했다고 세뇌하거나, 일부 경험하였을 경우 그 경험의 의미를 단일한 것으로 확정하여 세뇌하는 것이다. 그 세뇌를 통해 동일한 기억을 공유하는 인간 개체, 곧 국민이 제작되는 것이다. 이렇게 제작된 국민은, 현실 속에서 차별받는 존재로서의 자신을 잊고, 자신이 다른 인간 개체들과 동등한 국민이라고 신념하게 된다. 차별성을 은폐하고 동일한 국민으로서의 환상을 심어주는 것이 국사의 목적이다.

국가라는 권력기구를 작동시키는 것은 사회의 지배세력이다. 지배세력은 자신들의 지배를 정당화·영속화하기 위해 국가권력의 강제력을 이용해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피지배층의 대뇌에 설치하려고 한다. 뉴라이트가 국사 교과서를 문제 삼고 나오는 것은, 바로 스스로를 한국 사회의 지배자라고 자신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방 저 옛날 <삼강행실도>를 엮고 뿌렸던 양반들이 부활하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강명관/부산대 교수(한문학)

근대 조선 왕조·민중 모습 담아 / 서울경제 2008-11-28

조선견문록 (릴리어스 호톤 언더우드 지음, 이숲 펴냄)

1888년 장로교 선교위원회의 요청으로 조선에 도착,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 서양 병원인 광혜원 부인과 책임자로 근무했던 릴리어스 호톤이 조선에서 보낸 삶을 기록했다. 개인적인 기록이기도 하지만 단발령, 아관파천, 민비의 시해사건, 을사조약 등 일본과 러시아 그리고 청나라가 팽팽히 맞서면서 조선을 삼키기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당시 조선의 불운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는 후에 연세학당 설립자인 언더우드와 결혼해 30년간 조선 머무르며 근대 한국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이들이 결혼 후 가마를 타고 한양에서 의주까지 조선 구석구석을 다녔던 신혼여행기에는 조선의 풍경과 평민들의 모습이 자세하다.

책은 제국주의 열강의 세력 다툼에 스러지는 조선 왕조의 모습, 초기 개신교 선교사들의 선교활동, 조선 민중의 삶 등 세가지 주제가 자연스럽게 섞여있다. 특히 그가 궁중 의사로 궁을 드나들며 가까워진 명성황후의 인간적인 면모에 대한 묘사, 고종과 세자를 비롯한 왕실과 주변 인물에 얽힌 이야기는 우리 근대 역사 자료로도 중요한 가치가 있다.

장선화 기자 india@sed.co.kr

저자권 없는 출판사 손목 비틀어 ‘책임 떠넘기기’ / 한겨레 2008-11-30

교과부, 집필자 반대 부딪히자 출판사에 압박
수정 항목마다 ‘구체적 문구’ 만들어 제시
‘직권수정’·저작권 둘러싸고 논란 뒤따를듯

올 한해 교육계를 뒤흔들었던 역사교과서 수정 논란은 결국 교육과학기술부가 의도한 대로 교과서를 고치는 것으로 끝을 맺게 됐다. 출판사가 교과서를 자체 수정하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지금까지의 과정을 돌이켜 볼 때 사실상 교과부가 직권 수정한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저작권을 둘러싼 법적 논란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교과부는 고교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수정 요구에 집필자들이 따라주지 않자, 저작권도 없는 출판사에 수정 압박을 가했다. 출판사들은 교과서 검정 승인 권한을 갖고 있는 교과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데다, 교과부가 검정 취소나 발행 정지 조처를 내릴 가능성도 있어 저작권 침해 논란을 감수하고 교과서 수정지시를 받아들였다. 금성출판사 쪽도 “지난 26일 공문으로 온 교과부의 ‘수정지시’를 ‘직권수정’으로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교과부 자료를 보면, 55개 수정권고 항목 가운데 26건의 수정·보완 내역이 제출됐다. 그러나 29건은 고스란히 남은데다 집필자들이 고치겠다고 한 26건도 교과부는 내용이 미흡하다고 판단했다. 교과부가 지난 26일 출판사에 ‘수정지시’한 내용은 모두 41건으로, 출판사별로 보면 금성출판사가 33건으로 가장 많고 법문사·중앙교육진흥연구소·천재교육 등 3곳이 각각 1건씩이다. 가장 논란이 된 금성출판사의 경우 수정권고 38건 가운데 5건만 해결된 셈이다.

금성교과서 대표 필자인 김한종 한국교원대 교수(역사교육)는 “교과부가 집필자들과 계속 대화를 하겠다고 했고, 지금까지 출판사에 직접 수정을 요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다”며 “교과서 수정이 급했던 교과부가 출판사에 책임을 떠넘긴 것”이라고 말했다. 김인호 금성출판사 대표도 “교과서 내용은 집필자의 몫이고, 출판사는 교과서를 발행할 책임만 있다는 것을 잘 알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도면회 한국역사연구회 회장은 “교과부의 행태는 야비하기까지 하다”며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가 누더기가 될 판”이라고 말했다.

저자의 동의 없이 출판사가 수정하는 것과 관련해 저작권 위반 논란도 일고 있다. 김기중 법무법인 동서파트너스 변호사는 “저작권법상 저작권을 갖고 있는 집필자의 허락 없이 저작물을 수정할 수 없다는 것은 가장 기본”이라며 “다만 출판사와 집필자가 계약을 맺을 때 이 부분에 대한 별도 언급이 있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한종 교수는 “저자 동의 없이 수정을 허락하는 내용의 계약을 맺진 않았다”며 “어쨌든 집필자들이 쓰지도 않은 교과서를 집필자들의 이름을 걸고 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 만큼, 법적인 검토를 준비 중”이라고 했다.

직권수정 문제도 논란거리다. 교과부가 26일 출판사에 통보한 ‘수정지시’에는 근·현대사 교과서 내용 중 수정을 해야 할 항목마다 ‘교과부 수정지시안’이 구체적인 문구로 적혀 있다. 윤종배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은 “교과부가 수정문구를 만들고, 출판사에 압력을 넣어 고치라고 했으니 직권수정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한국검정교과서협회 관계자는 “정부가 검정도서를 직권수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과부 관계자는 “이번 경우는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의 ‘교과부 장관은 검정도서의 경우 저작자 또는 발행자에게 수정을 명할 수 있다’(26조)는 조항을 근거로 수정을 명령해 출판사가 받아들였으니 직권수정이 아니다”라면서도 “법률 자문을 해본 결과 직권수정도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보수학자 안병직 교수 "현대사 보수·진보 시각 선택은 여러분 몫" - 세계일보 2008-12-01

보수 학자인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사진)가 1일 서울 송파구 보성고에서 열린 고교 현대사 특강 강사로 섰다. 안 교수는 평소 주창한 ‘식민지 근대화론’과 “위안부 강제동원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반발을 사고 있는 것을 의식해 발언 수위에 각별히 조심하는 모습이었다.

안 교수는 학생들에게 내재적 발전과 외재적 발전 등 근대화 과정을 해석하는 여러 시각을 설명하면서 “이는 관점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점을 수 차례 강조했다.

안 교수는 이어 “진보진영은 내재적 발전론 관점에서만 보기 때문에 한국 역사를 대외의존이 심한 실패한 역사라고 평가하며 이 주장이 극대화한 사례가 바로 북한 주체사상”이라면서 “굳이 주체사상을 욕하려는 게 아니라 주체사상 시각 자체가 그렇다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1960년대 이후 우리나라 경제 성장에 대해 그는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이 어느 정도 권위적인 방식을 택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면서도 “독재정권으로 인해 많은 사회문제가 생긴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양면을 고르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강연 후 “나름대로 객관적으로 얘기하려 했지만, 결국은 외재적 발전론 입장에서 설명하게 된 것 같다. 사람은 자기 시각을 버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면서 “지금 현대사를 둘러싸고 진보와 보수 갈등이 첨예한데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여러분 몫”이라고 말했다.

이날 학교 앞에서는 강연 시간 30분 전부터 민족반역자처단협회 회원 10여명이 시위를 벌였다.

장원주 기자 strum@segye.com

lundi 1 décembre 2008

경기도 땅이름 참모습, 조선지지자료 경기도편 발간 / 데일리안, 2008-11-15

경기문화재단(대표이사 권영빈)이 최근 일제에 의해 한자로 표기됐던 경기도 지명의 `본래 이름´을 추적할 수 있는 연구 결과서인 ´경기도 땅이름의 참모습 -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경기도편´(이하 조선지지자료 경기도편)을 출간, 지역 정체성을 확인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조선지지자료 경기도편´은 1911년 조선총독부가 펴낸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중 경기도편에 대해 2년간의 조사연구를 거쳐 펴냈다.

경기문화재단이 발간한 ´조선지지자료 경기도편´의 조사연구 대상이 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상자내용 참조)는 전국의 지명과 지지(地誌) 사항을 조사하여 작성한 지리(地理)정보를 집대성 놓은 책이다.

경기문화재단은 이번에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중 경기도편에 대해 지지에 수록된 고유지명에 관한 조사연구를 통하여 유관학문의 범위를 넓히고 누구나 손쉽게 원하는 지역 자료를 찾을 수 있도록 전통문화실에서 2년간 조사연구를 벌여왔다.

´조선지지자료 경기도편´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신종원교수를 비롯한 14명의 연구진이 원문 2371쪽에 걸쳐 실린 내용을 새로 입력하고 철저한 해석과 세세한 해주를 붙여 펴낸 것이다.

이 책에는 죽산・수원・남양・부평・연천・음죽・교하・적성・교동・안산・양천・가평・양성・통진・용인・마전・김포・삭령・양지・고양・포천・여주・개성・강화・ 안성・영평・장단・시흥・진위・풍덕・이천・파주・양평・광주・인천・과천을 수록! 하고 부록으로 과거 충청남도 영역이었던 평택을 담았으며, 총 37개 지역으로 총 1000페이지에 달한다.

이번 책 출간에 대해 경기문화재단 관계자는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는 일제가 통치를 위해 전국 지명을 조사한 후, 순우리말 지명을 일본식 지명으로 바꿔 기록한 책으로 국립중앙도서관에 54책으로 보관돼 있었으나 분량이 방대해 책으로 펴낼 엄두를 못 냈던 자료”라며 “100년전 사용되던 순우리말 지명과 일본식 지명을 비교하며 세세하게 살필 수 있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책을 소개했다.

따라서 ´조선지지자료 경기도편´은 우리의 지명이 오염되기 이전과 일제 강점기 행정구역구역 개편이 이뤄지던 1911년 당시의 지리정보를 살필 수 있는 소중한 사료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책 발간에 참여한 한국학중앙연구원 신종원교수는 “어이없게 왜곡돼 버린 지명들이 많았다”며 “전국에 무수히 많은 `국사봉´이나 `국수봉´같은 지명은 토속 신앙인 국사당(國師堂)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 분명하지만 `國士(국사)´ `國思(국사)´로 표기된 탓에 `선비들이 망국의 울분을 토로했던 곳’이라는 엉뚱한 해설이 생겨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또 “이 책에는 당시 주막이나 저수지 지명, 금석문의 내용, 역사고고학 등에 대한 자료를 실었으며 민속자료 등도 분석해 정리했다”고 밝혔다.

신 교수는 이와 함께 “우리가 현재 쓰고 있는 지명은 일제가 통치의 편의를 위해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라며 “엉터리 지명집이나 지명유래가 더이상 나오지 않게 하고, 국적불명의 지명을 바로잡고자 책을 펴내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 역사교과서 통제는 짜낸 치약 다시 넣는 격” ‘한국 근현대사 권위자’ 브루스 커밍스 지적 / 한겨레, 2008-11-25

“국가의 정통성은 국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통해 나오는 것이지, 교과서를 통제하거나 역사적 사실을 조작해서 얻어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한국 근현대사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브루스 커밍스(사진) 미국 시카고대 교수(역사학)는 25일 <한겨레>와 한 이메일 인터뷰에서, ‘좌편향된 교과서들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훼손하고 국가에 대한 자긍심을 약화시킨다’는 한국 정부와 보수 진영의 주장에 일침을 놨다.

<한국전쟁의 기원>의 저자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져 있는 커밍스 교수는 이달 초 정부의 역사교과서 수정 작업 중단을 요구하는 국내외 역사학자들의 서명운동에도 참여했다.

그는 “한국 정부는 ‘모래에 머리를 파묻은 타조’처럼 불편한 과거사에 대해 무작정 귀를 막으려 하고 있고, 이는 ‘국가적 자긍심’을 명분으로 역사 왜곡을 일삼는 일본 우익들의 행태와 다를 것이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오히려 한국 현대사의 고통스런 장면들을 정면으로 마주보는 일이 국가 정통성을 확보하는 데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고통스럽고 비극적인 과거의 일들을 재조명함으로써 역사의 희생자들과 그 반대편에 있던 사람들, 대립하는 관점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 남과 북 사이의 갈등을 풀어내는 일”이 국가의 정통성 차원에서도 훨씬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정부의 역사교과서 수정 압력에 대해서는 “정부가 역사교과서에 개입하는 것 자체가 상식적이지 않다”며 “정부가 나서서 역사를 호도하면 할수록 학생들은 국가에 대한 신뢰와 자긍심을 잃어갈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이명박 정부는 과거 박정희·전두환 정권 때나 있었을 법한 통제 일변도의 정책으로 지난 20여년 동안 한국 근현대사가 이룬 성과들을 모조리 부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역사 연구에서 새로운 성과들은 ‘치약 튜브에서 치약을 짜내는 것’처럼 만들어진다”며 “한국 정부는 짜낸 치약을 다시 치약 튜브에 밀어넣으려 하지만 그러한 시도는 결코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민영 기자 minyoung@hani.co.kr

외규장각도서 반환문제 공식 제기된다 /헤럴드경제, 2008-11-19

프랑스가 병인양요 때 약탈해간 우리 문화재인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문제를 비롯한 문화재 반환문제가 다시 논의의 테이블에 오른다.

문화재 반환촉진 정부간위원회(ICPRCP)의 설립 30주년을 기념하는 전문가회의와 정부간 특별회의가 문화재청과 유네스코 주최(후원 외교통상부)로 11월 26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개최된다.

이번 국제회의는 ICPRCP의 지난 30년 활동을 돌아보고, 향후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기획됐다. 회의에는 ICPRCP 위원국인 22개국 대표를 비롯해 유네스코 회원국, 국제기구, 비정부기구 등 약 30개국에서 200여명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오는 26일 열릴 ICPRCP 전문가 회의에서 신병주 건국대 교수는 “외규장각 도서는 한국역사 연구에 필수적인 국가기록물이므로 한국에 반환돼야 한다”고 촉구할 예정이다. 신 교수는 “외규장각 도서는 ‘감상용 미술작품’이라기 보다는 조선왕실 행사의 역사적 변천과정이 집대성된 연구자료”라며 2006년 일본 도쿄대가 보유하고 있던 조선왕조실록 오대산본을 한국역사 연구를 위해 기증 형식으로 반환한 사례를 들어 프랑스측에 반환을 촉구할 계획이다.

또한 이보아 추계예술대 교수는 일본이 북관대첩비(2005년 반환)를 야스쿠니 신사에 방치해 문화재 보호 의무를 저버린 사실 등을 환기시킬 예정이다. 전문가 회의에서는 불법 반출 문화재 보유 국가가 반환에 필요한 법적 수단과 문화재 목록을 공개해야 하며 그 반환 책임을 촉구하는 선언문이 채택된다.

ICPRCP는 원산국으로의 문화재 반환에 대한 국제적 협력을 촉진하기 위해 1978년 유네스코 제20차 총회에서 설립돼 지금까지 14차례 위원회를 개최했다. 위원국은 지리적 배분, 국가간 순환 및 문화재의 원산국 반환에 기여할 수 있는 대표성을 고려해 유네스코총회에서 선출된다. 우리나라는 1989년부터 5회 연속 피선돼 위원국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07년 제14차 정기총회에서 과테말라, 이집트, 탄자니아와 함께 부의장국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이번 서울에서 개최되는 ICPRCP 특별회의는 문화재반환에 대한 우리나라의 열망과 의지를 표명하는 계기가 될 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참여와 관심을 촉구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해외에 흩어져 있는 한국문화재는 2008년 9월말 현재 총7만6143건으로 이중 3만4369건이 일본에 소재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영란 기자(yrlee@heraldm.com)

억울하면 서울 시민이 돼라? /한겨레 21, 2008.11.21 제736호

[출판] 강준만의 <지방은 식민지다>, 대한민국 ‘내부식민지’는 오스터함멜의 ‘식민주의’와도 통하네

“지방이 지방주의를 내세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서울이 나라 전체를 생각하는 발상을 포기한 만큼 그 걱정도 지방이 해야 한다. 수도권의 고민도 헤아려가면서 좀더 정교한 대안을 제시하고 추진해나가는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을 지방이 책임지자.”

우리 시대의 논객 강준만 교수가 <지방은 식민지다>(개마고원 펴냄)에서 던지는 제안이다. 그가 이번에 한국 사회 변혁을 위한 화두로 삼은 것은 ‘지역 모순’이다. 경상도와 전라도 얘기가 아니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대개 모른 체하거나 불가피한 것으로 치부하는 문제, 곧 서울과 지방,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모순이 문제다. 그는 아예 ‘내부식민지’란 말까지 꺼내들었다. 대한민국은 식민주의 국가란 말인가?

독일의 중국학자 위르겐 오스터함멜의 <식민주의>(역사비평사 펴냄, 2006)를 참조하면 억지스런 주장만은 아니다. 그에 따르면, 식민주의는 먼저, 하나의 사회 전체가 자체의 역사 발전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타인에 의해 조종되며, 식민자의 경제적인 필요와 이해관계에 종속되는 것을 말한다. 말을 바꾸어, 지방이 자체의 발전 기회를 박탈당하고 중앙(서울)에 의해 조종되며 수도권 부유층의 이해관계에 종속된다면 바로 ‘식민주의’의 정의에 부합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우리가 남이가?’라고 말할 텐가? 하지만 유의할 것은 ‘서울 사람들’의 생각은 좀 다르다는 점.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렇게 말했다. “서울은 어떤 의미에서 대한민국보다 중요하다.” 억울하면 서울 시민이 되라는 뜻이겠다.

오스터함멜은 또 근대 식민주의는 무엇보다 ‘주변’ 사회를 ‘중심’의 필요에 종속시키려는 의지와 관련되며 역사적으로 유럽의 근대 식민주의자들은 종속민들에게 유럽의 가치와 관습을 이식하려고만 했지 그들의 문화에 적응·동화하려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 ‘중심’과 ‘주변’이란 말 대신에 ‘서울’과 ‘지방’을 대입해보면 바로 한국 사회 아닌가? 지방의 ‘서울 따라하기’는 있어도 서울의 ‘지방 따라하기’는 없다는 점도 말하자면 식민주의의 징후다.

거기에 식민주의의 ‘이데올로기적 구성’이라고 부를 만한 특정한 의식이나 태도도 덧붙일 수 있다. 가령 16세기 이래 이베리아 국가들과 영국의 식민지 이론가들은 유럽의 팽창 과정을 보편적인 사명의 달성으로 표현하고, 자신들의 문화적 우월성을 전제로 하여 이교도 전도, 야만인·미개인의 문명화, 특권을 수반한 ‘백인의 부담’ 등을 식민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한 구실로 내세웠다. 서울이 잘돼야 지방도 잘된다는 논리는 그런 ‘식민주의 이데올로기’와 무관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정이 이러하므로, 비록 내부식민지론이 1970년대 남미의 국가 간 종속이론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이론이라 하더라도 한국 사회의 지역 간 불평등과 경제적 격차에 적용하는 것이 무리는 아니다(영국의 경우 잉글랜드와 웨일스·스코틀랜드·아일랜드의 관계가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런 내부식민지의 사례로 거론될 수 있다). 사실 한국적 현실의 ‘특수성’은 얼마나 자주 상식적 판단을 빗나가게 만드는가. 그 ‘특수한’ 현실은 강 교수가 반복해서 제시하는 간단한 인구통계만 보아도 알 수 있다. “2007년 10월 말 현재 주민등록상 인구 4919만4085명 중 서울·인천·경기 세 곳의 인구는 2390만3785명으로 48.6%를 점하고 있다. 국토 면적 11.8%인 수도권의 인구 비중은 1960년 20.8%에서 1980년 38.4%, 2000년 46.3%, 2002년 47.2%, 2004년 48.0%, 2007년 48.6%로 증가했다.”

그렇게 수도권 인구가 증가하는 만큼 감소하는 것이 비수도권 인구다. 강 교수가 거주하는 전북의 경우엔 사정이 심각해 매일 60명꼴로 감소하고 있다 한다. 대부분은 전북에서 먹고살 길이 없거나 희망이 없어서 떠나는 것이며 이런 현실은 정도의 문제일 뿐 다른 지방들도 예외가 아니다. 과연 이러한 추세가 역전될 수 있을까? 무엇이 달라져야 할까?

강 교수는 진정한 지방분권과 자치를 위해서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방으로 대폭 이양하는 ‘발상의 대전환’, 그리고 지방 내부의 개혁과 함께 한국 사회의 아킬레스건인 교육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방신문과 지방방송, 지방문화 육성을 위한 관심과 지원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지만, ‘내부식민지’의 토대가 되는 것은 역시나 ‘교육’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구의 과잉 집중을 억제하고 지역 간 균형발전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즉 ‘내부적 식민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교육 분산’이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간단히 말하면 서울에 편중된 대학들을 지방으로 분산시키자는 ‘대학의 지방분산론’이다. 혹은 차별적인 지원정책으로 명문대학을 수십 개로 늘려 ‘경쟁의 병목현상’을 타개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란 의구심이 바로 들 만큼 현실적으론 많은 난관을 극복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어떤 난관들인가? 먼저 기존 명문대의 반발을 극복해야 한다. 정책결정자들의 다수가 명문대 출신이란 점도 장애물이다. 게다가 단기간에 효과를 낼 수 없다는 점도 대안으로서의 매력을 떨어뜨린다. 그래서 학자들이나 시민단체들도 관심을 끌지 못한다. 그러는 사이에 명문대 입학을 위한 사교육 수요는 점점 늘어만 가고 해마다 대입제도 개선안이 발표돼도 학생들의 고통은 줄어들지 않는다.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도외시한 탓에 올바른 방향을 잡지 못해서다. 강 교수는 이런 점에서는 “이명박 정권이나 노무현 정권이나 전교조나 모두 다 한통속”이라고까지 질타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사대문 밖으로 이사 가지 말고 버텨라. 멀리 서울을 벗어나는 순간 기회는 사라지며 사회적으로 재기하기 어렵다.” 다산 정약용이 자녀들에게 남긴 유언이라 한다. 정조시대에 서울 인구는 전국 인구의 2.55%에 불과했지만, 서울이 문과 급제자의 43%를 차지했다고 하니 서울 중심의 집중화와 출세를 위한 교육의 연계는 오랜 뿌리를 갖고 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제 우리의 과제는 그 ‘뿌리’를 뽑는 것이다. 지방을 볼모로 한 ‘우리 안의 식민주의’를 청산하는 일에 서울 시민도 동참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로쟈 인터넷 서평꾼 blog.aladdin.co.kr/mramor

“한국 여성차별 여전… 제한된 분야에서만 평등” /서울신문, 2008-11-26

“한국 여성들은 상당한 교육수준과 발전에도 불구,남성에 비해 여전히 많은 차별을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엔여성인권차별철폐위원 3명이 25일 경남 창원에서 개막된 ‘2008 경남세계여성인권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이들은 가나의 도르카스 코커 아피아,포르투갈의 레지나 타바레스 다 실바,말레이시아의 메리 샨티 다리암 위원이다.

●‘열악한 상황에서의 평등´ 이 현실

 이들은 세계여성차별철폐위원회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 사회는 아직도 여성 차별적인 부분이 많다고 한 목소리로 지적했다.

도르카스 코커 아피아 위원은 “한국은 여성폭력 문제를 다루기 위한 관련 법을 갖추긴 했지만 충분히 법을 지키고 여성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메리 샨티 다리암 위원은 “지난해 7월 한국 여성인권차별철폐에 대한 심의를 할 때 취업문제에서 굉장히 많은 문제점이 노출됐다.”면서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고위직이나 높은 임금에서 많은 제약을 받고 있으며,특히 한국 여성들은 제한된 분야에서 평등하기 때문에 ‘열악한 상황에서의 평등’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레지나 타바레스 다 실바 위원도 “한국 여성 인권 심의 때 여성들의 정치참여와 정책결정의 자리에서 제대로 평등한 지위를 갖지 못한 점 때문에 결과가 별로 좋지 않았다.한국도 모든 나라에 공통된 성에 대한 보편적 제약이 있다.”고 지적했다.

●“사회 인식 바뀌어야 여성차별 해소”

이들은 한국 사회의 이같은 여성차별 문제 해소를 위한 방안도 함께 제시했다.

 메리 샨티 다리암 위원은 “비록 여성차별을 금지하는 법을 갖고 있다하더라도 여성차별문제에 대한 사회 전체의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결국 여성 평등은 올 수 없다.”고 강조했다.

도르카스 코커 아피아 위원은 “여성차별문제 해소는 여러 방면에서 해결책이 나와야 한다.”면서 “법을 고치고,법을 집행하는 사람의 생각과 여성들의 의식도 함께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27 일까지 계속될 2008년 경남세계여성인권대회는 창원컨벤션센터에서 30여개국 여성인권운동가 등 20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여성인권과 상생의 공동체’를 주제로 폭력과 성 착취 근절 등 6개 주제를 놓고 주제발표와 토론을 갖는다.

창원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자본주의는 재난을 먹고 성장했다"/서울경제, 2008-11-21

지난 2003년 미국 정부는 대량살상무기를 감추고 있다고 단정짓고 이라크를 향해 미사일의 단추를 눌렀다. 6년째 끔찍한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미 정부는 다국적 석유회사인 BP와 쉘이 이라크의 석유 시추권을 30년간 유지할 수 있는 새로운 법안을 통과했으며, 외국 투자자들이 이라크에 새로운 공장과 소매점 건설에 참여할 수 있도록 법을 제정했다. 많은 사람들이 재난으로 고통받는 동안 정부는 소수의 부자들을 위한 정책 수립에 바빴던 것이다.

사회적인 충격이 터지면 대중은 갈팡질팡 이성을 잃게 된다. 이를 틈타 정부 혹은 글로벌 자본주의는 소수 부자들을 위한 정책을 쏟아 내고 이를 슬그머니 통과시키는 일을 지금도 벌이고 있다.

자본주의는 재난을 바탕으로 성장했다는 이론을 펼치는 미국의 저널리스트 나오미 클라인은 이를 '쇼크 독트린'이라고 부른다. 이때 쇼크란 천재지변, 전쟁, 쿠테타, 국가 재정위기 등이다.

그는 고문 이론을 바탕으로 쇼크 독트린을 설명한다. 잠시 고문실로 장면을 바꿔보자. 캄캄한 방에 눈을 가린 한 죄수가 묶인 채 앉아 있다. 어디인지 어떤 일이 벌어질지 죄수는 알 수 없다. 곧 이어 물 젖은 천이 몸을 덮더니 몽둥이 세례가 시작됐다. 전기 충격도 가해졌다. 이틀간 고문을 당한 죄수는 이성적으로 자신을 방어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고, 정보든 고백이든 과거 신념에 대한 비난이든 심문관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털어논다.

죄수에게 충격적인 쇼크를 가하면 심신이 약해져 무엇이든 받아들이듯 사회적인 쇼크가 터지면 대중들이 방향감각을 잃게 되는데 정부는 이를 틈타 그 동안 반대에 직면했던 사안들을 경제적인 쇼크 요법으로 밀어붙인다. 차이점은 심문실에서 일대일로 고문해서 얻어낼 수 있는 것을 충격에 휩싸인 대중으로부터 더 큰 규모로 얻어낸다는 점이다.

경제적인 쇼크요법 전문가로 저자는 미국을 대표하는 시장주의 경제학자로 시카고 학파를 이끌었던 밀턴 프리드먼을 꼽았다. 정부규제, 무역장벽, 이익집단 등의 방해요소를 제거함으로써 순수한 자본주의로 돌아가려 했던 프리드먼은 절망적 상황에 처한 국가들이 일부 배짱 두둑한 정치인들에게 쇼크요법 구사를 종용했다고 구체적인 사례를 들면서 설명한다.

책 은 1973년 피노체트의 쿠테타부터 1989년 텐안문(天安文)사태, 1991년 소련의 붕괴, 1997년 아시아의 금융위기, 2003년 이라크전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격변에서 경험한 재난의 현장 이면에서 벌어졌던 자본주의의 또 다른 얼굴을 비춘다.

저자는 쇼크 독트린이 위력을 발휘한 사건으로 1997~1998년 아시아의 금융위기도 놓치지 않았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이 내 건 구조조정 요구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이는 아시아 호랑이들이 시장 문을 활짝 여는 계기가 됐다는 것.

책은 극소수가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과정이 평화롭지도 합법적이지도 않았다는 것을 논리정연하면서도 강력하게 경고한다. 저자는 책을 통해 번영을 누리는 사람은 누구이며, 어디서 그런 번영이 오는지 등 번영의 본질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문제는 현재 진행중인 세계 금융위기도 어떤 부자와 지배 엘리트에게는 호기가 될 수 있다는 것. 저자는 쇼크 독트린을 이겨내는 방법으로 정보 공유와 대화를 제시했다. 이를 통해 새롭게 닥쳐올 경제 쇼크에 미리 저항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장선화 기자 india@sed.co.kr

조평통 “북침 전쟁을 ‘최후 목표’로 선포한 것”‥대북결의안 통과로 긴장 고조 / 쿠키뉴스, 2008-11-23

[쿠키 정치] 북한이 다음달 1일로 예고한 군사분계선 통행 제한·차단 조치를 일주일 남겨놓은 가운데 남북관계 긴장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22일 "이제는 반공화국(반북) 대결 광증이 골수에 배길대로 배긴 이명박 패당과는 북남관계와 통일문제를 논할 추호의 여지도 없다는 것이 입증됐다"면서 "우리는 이미 선포한대로 단호히 대처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조평통이 내놓은 대변인 담화는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방미 중 기자간담회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통일하는 게 최후의 궁극 목표"라고 밝힌 발언을 문제삼은 것이다. 조평통은 또 "(이 대통령의 발언은) 북침 전쟁을 '최후 목표'로 선포한 것"이라며 엄중히 대처하겠다고 했다.

조평통의 담화는 북측의 육로통행 제한 조치 이후 정부의 통신 자재·장비 지원 입장과 민간 단체의 대북 전단지(삐라) 살포 중단 요청 등 잇따른 상황 관리 조치에도 불구하고 남측의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을 거두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더욱이 유엔에서 21일(현지 시간) 대북 인권결의안이 통과된 것도 남북관계의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공동제안국에 참여한 이번 결의안은 찬성 95, 반대 24, 기권 62표로 인권문제를 다루는 제3위원회에서 가결됐다. 북한은 결의안을 전면 거부한다고 즉각 밝혔다.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의 박덕훈 차석대사는 "한국이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한 것은 무분별한 반민족적 반통일적 행위이고, 북한의 존엄성과 체제에 대한 도발"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북측은 앞으로 개성공단의 운영과 직결된 육로통행 제한 조치를 실행에 옮기며 남측을 강하게 압박할 것으로 우려된다.

북측은 지난 12일 육로 통행 제한 조치를 발표한 이후 판문점 적십자 직통전화선을 차단한 것 외에는 아무런 후속 조치가 없는 상황이다.

다만 북측은 공언한 대로 다음달 1일을 전후해 준당국자의 추방, 통행·통관·통신 절차의 엄격한 집행 등 단계적으로 수위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남북경협시민연대'도 23일 북측이 개성공단 관리위원회와 한국토지공사 간부급 상근자를 1차적으로 추방하는 조치를 취할 것으로 예상했다.

김규철 대표는 "북측은 관리위와 토공 상근자를 준공무원 성격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안의근 기자 pr4pp@kmib.co.kr

실학은 과거회귀적 학문이었나? / 조선일보, 2008-11-26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장을 지낸 ‘미국의 한국학 대부(代父)’ 제임스 팔레(Palais·1934~2006) 전 워싱턴대 명예교수의 대표 저서인 《유교적 경세론(經世論)과 조선의 제도들(Confucian Statecraft and Korean Institutions)》(전2권·산처럼 刊)이 24일 완역 출간됐다.

1996년 원서가 발간됐던 이 책은 “11세기부터 18세기 중반까지 고려·조선 700년은 노비의 비중이 30%를 넘어섰던 노예제 사회”라고 규정해 학계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팔레 교수는 이 맥락에서 “조선 후기의 자본주의 발전이 한국의 근대화와 연결됐다는 ‘내재적 발전론’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버드대에서 대원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카터 에커트, 존 던컨, 브루스 커밍스 등 미국의 대표적 한국학자들을 길러 낸 인물이었기에 파장은 만만치 않았다.

번역본 분량만 1500쪽이 넘는 이 ‘문제의 책’을 우리말로 옮긴 김범(金範) 박사(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는 “그런 관점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팔레 교수의 초점은 좀 다른 데 있다”고 말했다. 조선 후기 제도개혁을 다룬 보기 드문 저서였던 실학자 반계 유형원(柳馨遠·1622~1673)의 《반계수록(磻溪隨錄)》을 중심으로 조선 후기의 정치·경제·사회를 포괄적으로 분석한 책이라는 것이다.

김 박사는 “팔레 교수의 시각은, 기존 한국 학계의 생각처럼 실학(實學)이 근대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던 사상이 아니라는 데 있다. 오히려 과거회귀적이고 퇴영적인 사상에 가깝다고 봤다”고 말했다. 팔레 교수는 반계가 대중은 물론 조정의 관원들에게도 알려지지 않았던 관념적인 학자였지만, 자신이 살던 제도들과 그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획기적인 연구를 한 것은 분명하다고 평가했다. 토지 국유화와 재분배 직업군인제도 시행 공립학교 부흥과 도덕적 관원 양성 소액 동전만 발행하는 화폐제도 등이 반계가 제시한 개혁안이었다.

그러나 반계의 개혁안은 군사·화폐제도 등 그 뒤로 전개된 조정에서의 실제 정책보다 오히려 뒤쳐진 면을 보이고 있었다고 팔레 교수는 지적했다. 반계를 비롯한 유학자들의 경세사상은 정전제(井田制) 등 중국 고전에 서술된 ‘중국 고대의 제도’에 머물러 있었으며, 농업 생산의 주요한 원천을 장악한 양반 권력을 변화시키지도 못했다. 그 때문에 조선왕조가 멸망할 때까지도 끝내 상업과 산업경제는 중농적(重農的) 농업경제를 크게 바꾸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 박사는 “팔레 교수의 책은 방대한 사료를 철저하게 분석한 매우 중요한 연구지만, 지나치게 엄격하고 경직된 기준을 적용했기 때문에 많은 부분에서 부정적인 해석을 낳았다는 근본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유석재 기자 karma@chosun.com

Nucléaire nord-coréen: les Etats-Unis réclament de nouvelles discussions / AFP, 2008-11-21

A BORD D'AIR FORCE ONE (AFP) — Les Etats-Unis vont insister ce week-end auprès de la Chine pour qu'elle organise une nouvelle réunion de négociations à Six pays sur le programme nucléaire nord-coréen, a indiqué vendredi la Maison Blanche.

Les Etats-Unis cherchent avant tout à revenir à la table des négociations pour mettre en place les procédures de vérification qui doivent être discutées avec les Nord-Coréens, a expliqué Dennis Wilder, directeur des affaires asiatiques au sein du conseil national de sécurité de la Maison Blanche.

"Ce sont les Chinois, évidemment, qui accueillent les négociations à Six. Il faut qu'ils convoquent cette réunion. Nous espérons très fort que lors de notre rencontre dans le cadre de l'Apec nous obtiendrons (...) une date pour cette réunion", a-t-il dit.

M. Wilder s'exprimait à bord de l'avion présidentiel qui emmenait vendredi le président américain George W. Bush à Lima où se tiendra ce week-end un sommet des dirigeants du Forum de coopération économique Asie-Pacifique (Apec).

Les négociations à Six sur le nucléaire nord-coréen regroupent, outre les Etats-Unis, la Chine, la Corée du Nord, la Corée du Sud, le Japon et la Russie.

M. Bush devait rencontrer dès vendredi le président chinois Hu Jintao. Il devrait aussi avoir en marge de ce sommet des entretiens bilatéraux avec ses homologues russe Dmitri Medvedev et sud-coréen Lee Myung-Bak, ainsi qu'avec le Premier ministre japonais Taro Aso.

M. Wilder a estimé que début décembre serait le meilleur moment pour la tenue de nouvelles négociations à Six. "Espérons que cette rencontre nous permettra de terminer pour de bon la deuxième phase des négociations à Six et de commencer à penser à la troisième phase", a-t-il dit.

Le département d'Etat a de son côté annoncé qu'un haut responsable américain se rendrait la semaine prochaine en Corée du Sud et au Japon, où il discutera des négociations sur la dénucléarisation de la Corée du Nord.

Sung Kim, directeur aux affaires coréennes du département d'Etat, sera en Corée du Sud de lundi à mercredi pour une conférence sur le désarmement en marge de laquelle il rencontrera des responsables sud-coréens, avant d'aller au Japon le 27 novembre pour des consultations avec les dirigeants nippons, a indiqué Sean McCormack, porte-parole du département d'Etat.

Le Japon et la Corée du Sud tentent de convaincre Pyongyang de fournir un programme en vue de mettre fin à son programme nucléaire. Le ministre japonais des Affaires étrangères Hirofumi Nakasone, qui a pris ses fonctions en septembre, s'est entretenu vendredi pour la première fois à Lima avec son homologue sud-coréen Yu Myung-Hwan.

"La Corée du Nord devrait fournir un document solide permettant de vérifier le cadre de sa dénucléarisation conformément aux négociations à Six", a-t-il dit à la presse, ajoutant que M. Yu "partageait entièrement" ses vues.

Washington a retiré le 11 octobre la Corée du Nord de sa liste noire d'Etat soutenant le terrorisme après un accord sur un processus de vérification du programme nucléaire nord-coréen.

En échange, le régime communiste s'est engagé à poursuivre le démantèlement de ses installations atomiques et à accepter le retour des inspecteurs de l'Agence internationale pour l'énergie atomique (AIEA) expulsés plus tôt.

Mais Pyongyang a ralenti le processus de démantèlement, contestant les termes de l'accord sur les vérifications, et afin de protester contre le retard dans la livraison de l'aide énergétique promise.

Les relations continuent de se dégrader entre les deux Corées / Les echos, 2008-11-24

La Corée du Nord a annoncé hier sa volonté de refermer davantage sa frontière avec la Corée du Sud, et de suspendre notamment les liaisons ferroviaires à partir du 1er décembre, un an seulement après leur reprise. Elle menace d'« expulser de façon ponctuelle » des Sud-Coréens travaillant dans un complexe industriel et un site touristique, situés au nord de la frontière, mais gérés conjointement par les deux pays. Les passages à la frontière vont être restreints. Le 12 novembre, Pyongyang avait déjà menacé de fermer partiellement sa frontière terrestre. Malgré cet avertissement, la Corée du Nord se plaint de la politique « de confrontation dangereuse et anti-réunification » de Séoul, selon l'agence nord-coréenne KCNA. Les relations entre les deux pays s'étaient dégradées après l'élection à la présidence sud-coréenne de Lee Myung-bak, prônant une ligne dure avec Pyongyang. Le ministère sud-coréen de l'Unification a appelé au dialogue dans un communiqué.